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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재 Jun 04. 2023

오늘의집 입사 한달차때 썼던 글

지금은 다니지 않습니다. 


오늘의집 입사 한달 차. 

느낀 점들.


1. 

슬랙, 위키, 구글오피스로 회사가 돌아간다. 법무검토, 비용처리, 법카정산 등을 할 때 다른 스타트업의 앱이나 소소한 시스템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슬랙월드라고 봐야한다. 처음에 메일을 안 쓰고 일하는 것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슬랙을 메일처럼 쓰는데, ‘모름지기 메일이란’ 이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던 나로썬, 써머리도 없고, 문단나누기도 거의 없이 폭포처럼 써 내려가는 슬랙 글을 전부 받아치는데 시간이 걸리더라. 아마 지금 내가 쓰는 슬랙을 보면서 ‘아이고. 어르신이 왔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슬랙이든 메일이든 나는 정확한 문단 나누기, 전달하는 내용의 핵심정리, 상단의 결과 써머리 등등을 지키고 있으니까. 


2. 

‘수습 3개월’이 ‘온보딩’이라는 단어로 바뀌어 이루어지고 있는데, 한 달 단위로 정확한 원오원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원오원 피드백은 정확히 ‘오늘의집의 철학’을 기준으로 이야기한다. 이 점이 조금 감탄스러웠다. 철학은 철학대로. 평가는 평가대로. 일은 일대로 하는 회사가 대부분이고, 이렇게 해야 하는건 알지만, 정말 이렇게 하고 있는 회사는 잘 없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리더들은 죽도록 바쁘게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꾸역 꾸역 이걸 하고 있다. (물론 그렇더라도 미션과 목표는 계속 바뀐다.) 


3.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여 파트너 회사를 빠르게 선정 할 때, 믿고 맡긴다. (대신 사고나면 다 책임져야겠지.) 비딩이랄지 골치아픈 프로세스가 없다. 아직 큰 돈을 안 써서 그럴 수도 있겠으나, 본능적으로 3개월짜리 지출 플랜을 짜고 있던 나로서는, 움직임이 자연스레 빨라졌다. 나랑 비슷하게 다른 회사에서 넘어온지 얼마 안되는 친구들에게 “자료를 만들지 말고, 비용, 퀄러티, 결과물 레퍼를 들고와서 나랑 같이 정하고 바로 진도빼자.” 라고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망하면 다 책임져야겠지.)


4.

대표가 사려깊다. 물론 이 세상 대표님(파운더)들은 다 존경한다. 적어도 내가 다닌 회사 모든 대표들이 그 회사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고 있었고. 가장 깊이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오늘의집 대표님과는 대화를 할 때 굉장히 사려깊다- 는 감각이었다. 한 달 단위로 신규입사한 멤버들을 대상으로 비젼 세션을 갖는데. 근 세시간 동안 이 회사를 왜 만들었는지, 언제 망할뻔 했는지, 어디까지 갈건지- 에 대해서 조근조근 이야기해 주는데, 이게 상당한 뽕을 놔준다.(얼마나 갈지는 두고봐야겠으나) 우리팀 멤버들은 나한테 와서 ‘저희 노브랜드정도는 해야죠.’ 라고 사장님 처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놈들. 얼마나 갈지 두고보겠어. 


5.

리더들끼리도 정치공학적 대화는 거의 없다. (아직 나한테는 안하는건지도 모르겠으나) 은재님. 누구누구는 조심하세요. 홍길동은 누구누구 사람입니다. 와 같은 류의 이야기를 던진 사람은 없었다. 회사 성장 따라가기 빡세기도 하고, 거의 모든 영역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밥그릇 싸움을 할 구조적인 명분도 별로 없다. 300명대의 회사이고. 내부에 들어와보니 금방 더 커질 듯 하다. 


6.

일은. 많다. 목표도. 높다.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복잡도도. 높다. 환경도 계속. 바뀐다. (머리가 빠개지기 시작함.) 나이 생각을 안하고 일하려고 하는데, 지금 보다 조금 더 늙어서 조인했으면 적응하기 쉽지 않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도 온라인 커머스 조직에 들어와보니, 오고 가는 대화들의 절반은 못 알아듣겠다. 그때그때 물어보는 것도 한계가 와서 일부는 포기하고, 일부는 저녁에 스터디를 해서 꾸역꾸역 씹어 삼킨다. 적당히 이해하고, 적당히 하고 싶진 않으니까. 


7.

한 4-5년전이었다면, 스트레스가 훨씬 컸을거 같다. 잘하고 싶으니까. 물론 지금도 잘하고 싶지만, 미묘하게 다른 부분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잘 하고. 그만큼의 결과물을 만들면 되는거고. 그게 먹히면 이곳에 기여할 수 있을테고. 그게 안 먹히면 얼른 나가서 민폐를 끼치지 말자- 는 마음이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스트레스와는 다른 감각이 크다. (물론 골치 아픈 일이야 어디나 마찬가지일테지만) 스트레스에 대한 역치도 높아진 듯 하다. 이게 나이듬의 장점이 아닐까? 


8. 

강남빌딩 27층의 뷰가 정말 좋다. 저녁 노을은 정말 예쁘다. 요샌 뭉게뭉게 제주도에서 볼 법한 구름이 매일 보인다. 어머니께서 지나가던 꽃들을 보며 “정말 예쁘지 않니-“ 라는 이야기를 하는게 이해되기 시작한다. 정말 예쁜 것들이 많은 세상이다.


+

지금은 나왔습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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