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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별 May 19. 2023

누가 그러라고 말한 게 아닌데도

 누가 그러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 책임감이나 무게감을 느끼는 일들이 있다. 예를 들면 우리 엄마는 언니와 내게 아파트 한 채를 물려주지 못하는 상황을 매우 슬프게 이야기하곤 했다. 내가 요청한 일이 아닌데도 미안한 마음을 크게 가진 것을 보고 '엄마의 마음'이란 무엇일까? 싶더라. 


 엄마가 모든 일에서 나에게 뭔가를 더 해주고 싶은데 해주지 못해서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인 건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아파트 이야기는 '부모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엄마의 기준으로 이야기한 게 아닐까 싶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크게 느끼고 그 점에 대해서 자주 말했던 걸 보면, 엄마가 생각하는 부모의 중요한 역할 안에는 경제적 불안이라는 짐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게 있었던 것 같다.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해주는 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대신 진로 선택과 커리어 개발, 인간관계 측면에서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엄마가 나에게 해주는 엄마로서의 역할은 어린 시절의 부모님과의 관계 속에서 엄마가 부모님께(나에게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바라던 것들을 나에게 투영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을 해보곤 한다. 


 나는 엄마에게 요즘 시대에 아파트를 자식에게 사줄 수 있는 부모는 몇 없고, 대기업에 다녀도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세상이라서 시대적인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일본처럼 지진이 심한 나라에서는 내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게 비용적인 측면에서 손해일 수도 있다고. 그러니 그리 마음의 무게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어차피 노후에 죽을 때는 요양원에 가야 해서 내 집에서 죽을 수도 없는데, 어마어마한 빚을 지면서 무리해서 내 집 마련을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다. 실버타운과 요양원 입주할 비용을 모으는 게 맞을 수도 있다. 어떤 것이 현명한 선택인지는 내 인생을 살아보아야 알 것이다. 내 집 마련은 안정성 때문에, 목표로 두기는 하겠지만 그 짐을 엄마 보고 지라고 할 생각은 없다. 


 중학생 때, 아빠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된 이후로 엄마에게 외박하고 오는 날에는 반드시 외박 여부에 대해서 연락해 달라고 부탁한 일이 있었는데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성인이 돼서 그 일에 대해 물으니 어린 나를 집에 홀로 두는 것이 미안해서 회피한 거라고 했지만, 나는 엄마가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도 나의 부탁을 들어주지도 않았던 게 더 상처였다고 말했다. 나중에 엄마는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가능하면 그 일에 대해서는 다시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엄마가 악의적으로 그런 건 아니었고 그 시절엔 엄마도 도망치고 싶은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엄마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되고 내 아픔도 이해가 되는데 그 이야기를 꺼내면 서로에게 또 상처가 되니까 현재 일어나는 일들과 앞으로의 일들을 얘기하는 것으로 나름의 방침을 정했다. 


 물론 나에게는 그 사건이 큰 상처로 남았기 때문에 회피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경계하고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문제를 마주할 때 회피하는 방법보다 돌파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연락이 오지 않아도 어떤 사연이 있어서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여기고 기다리는 마음도 가지게 되었다. 그 시절 엄마와 연락이 되지 않아서 불안했던 건 일종의 PTSD였으므로. 엄마도 아빠처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하지?라는 커다란 불안을 안고 있었으니까. 연락이 되지 않으면 사고라도 났을까 봐 걱정하는 자동 사고로 이어져서 매우 불안했기 때문에 그 시절 나에게는 연락이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도 물론 연락은 의미가 있는 중요한 일 중 하나지만, 그때처럼 크게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사람들을 대할 때,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는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겪은 인간관계에서의 경험과 관계와 나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투영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에게 그렇게 행동해 달라고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하는 행동들이 있는 듯하다. 반대의 일도 있다. 내가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하는 행동들. 그런 과정에서 고마움과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는 듯하다. 


 내가 아마 엄마가 되면 아이와 시간을 최대한 함께 보내는 방식을 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엄마가 될지 아닐지도 알 수 없지만 (웃음) 어느 정도는 예측이 가능하다. 내가 가장 바라던 것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이었으니까. 정말 아이가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기 전까지는 내가 받고 싶었던 대로 대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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