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아이폰을 쓰며 사진첩도, 배경화면도 늘 그대로 옮겨왔다.
내 휴대폰 사진첩의 가장 첫 사진은 2010년 8월 24일로 저장된 8월의 크리스마스 스틸 사진이다.
2010년 <씨네 21>에서 주최했던 사진전에서 찍은 사진을 아이폰을 처음 쓸 때 옮겨놓았다.
이후 10여 년 간 사진첩을 지우고, 비우는 동안에도 첫 번째 사진으로 머물러 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오랜 시간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그 시절의 한국영화에서만 찾을 수 있는 풋풋하고 더운 빛깔이 좋았고, 여전히 좋다.
십 대 시절 처음 보았던 이 영화를 서른이 훌쩍 넘어 2022년 여름에 다시 보는 경험은 묘했다.
옛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늘 시간 여행을 체험하지만, 이 영화는 유독 시간의 거리가 멀고도 가까웠다.
그때는 몰랐던 영화의 구겨진 표정, 씁쓸한 현실이 더 가깝게 다가와서,
영화를 보는 나도 마냥 맑은 얼굴일 수 없었다.
사실 영화는 이미 저만치 가 있었는데 내가 이제 겨우 어른이 되어 따라잡은 듯한 멀고도 가까운 느낌.
눈앞의 죽음을 끌어안고 사는 주인공 정원의 얼굴에서
예전엔 보이지 않던 깊은 주름과 날카로운 슬픔 같은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 또한 많은 죽음을 지나쳐오고, 우는 법과 잊는 법을 익히고 나서야
정원의 얼굴에 새겨진 흔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반면 해사하고 맑은 다림의 얼굴은 그때에도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정원을 더 이해하게 되는 바람에 나는 다림과 더 멀어져 버렸지만
그래서, 그럼에도 다림을 사랑하게 되는 정원의 마음을 더 제대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사랑은 이름 붙여지거나,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정원은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대신,
자신이 죽고 난 뒤에 아버지가 비디오를 잘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사용법을 적고,
다림은 정원에게 다가가지만 그것이 무엇이라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녀가 정원에게 놓고 간 편지를 관객은 함께 읽지 못한다.
반면 정원의 답장은 관객들에게만 읽히고 다림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모를 수 없다.
사랑은 이름 붙이거나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사랑에는 해피엔딩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통과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지나고 나서 사랑으로 추억되는 순간들에게 더 넉넉한 시간을 주어야 했을까.
어쩌면 그 텅 빈 시간까지 포함한 것이 사랑인 걸까.
어렴풋이 답을 알게 할 만큼 넉넉한 시간들이 내 뒤로 흘러갔다.
하필 이 영화의 주인공이 사진관 주인이었다는 것에 의미 부여를 하고 싶어졌다.
이제 사진은 필름도, 인화 과정도, 시간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 되었고,
이 영화의 사진을 폰으로 옮겨 담던 순간에도 깨닫지 못했지만.
12년의 시간이 흘러서야 사진 위로 피어오른 새로운 표정이 있었다.
영화도 사진도 다른 시간을 지나면 또 새로운 사진으로 새롭게 인화되는 것 같다.
8월이 끝났고, 가을이 바로 문 앞에 있다.
시간은 지나고 나서야 새삼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