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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hyu Sep 26. 2019

"너도 죽고 싶니?"

조연출의 자살, 그 이후


"야, 너도 죽고 싶니?"


10년 차 남짓 되는 메인 피디급 선배 두 명이 나를 조그만 편십실로 호출했다. 컴퓨터 2대가 겨우 들어가 숨 가쁜 열기를 뿜어내는 그 방에서 쏟아지는 시선. 예상치 못한 질문에 말문이 턱 막힌 내 앞에서 선배 둘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솔직히 나는 이 일하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봤는데."

"야, 말해봐. 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


바로 그 날 아침 기사에서 본 내용이 떠올랐다. 피디가 된 후 며칠 쉬지 못한 채 젊은 삶을 마감한 조연출.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채 며칠 쉬지도 못하고 폭언과 불합리한 지시를 이행해야 했던 그. 그리고 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던 나.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힘들어 상처로 매일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을 느꼈던 시기였다.


"죽고 싶은 건 아니고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솔직히 말해도 되는 걸까? 힘들다고. 그래도 들어주고 싶어서 나를 부른 게 아닐까? 내가 우물쭈물하던 새에 메인 선배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야,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싶으면 말해. 하루 쉬게 해 줄게.


내 귀를 의심하며 올려다본 선배들은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들은 안타깝게 져버린 조연출의 삶을 조롱하듯 비꼬았다. 그리곤 제대로 된 답을 듣기도 전에 내가 괜찮다고 판단했는지 나를 내보냈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곧 동기 카톡방에 비슷한 면담의 후기가 올라왔다. 회사 상부에서 어린 연차의 조연출들을 1:1로 면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나 보다-하는 추측과 함께. 아, 프로세스의 일부였나. 체크리스트 중의 하나였구나.


그 후 팀 내에선 '그 일'과 관련된 추가 면담은 없었다.


돌아가신 조연출의 동기들이 모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 모임에 참여한 모든 조연출이 한 명씩 고위 임원직에게 호출당했다는 소식도. 곧 인사팀과의 의례적 면담이 잡혔으나, 그 자리에 참여한 피디들은 조연출들과 공감을 못하겠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아니, 우리 때보다 훨씬 나아졌는데, 뭘 더 원하는 거야? 그럴 거면 애초에 피디가 되지 말았어야지."라는 식의 발언들. 생각 없이 던져졌을지도 모르는 그 말들은 조연출 사이에서 돌고 돌아


이제 조연출은 함부로 죽어서도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몇 주 뒤, 회사에서 주최한 죽은 조연출의 추모식이 열렸다. 이 소식은 오롯이 그 조연출의 동기, 측근에게만 이메일로 전달이 되어 대부분의 조연출은 추모식의 존재 여부조차도 몰랐고, 알았더라도 스케줄을 조정해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 또한 우연히 화장실을 가던 길, 추모식 10분 전에 소식을 듣고 제대로 옷도 못 갖춰 입고 무작정 찾아갔다.


그의 아버지가 단상 위로 묵묵히 올라가 그의 이름을 외쳤다.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는 그의 얼굴이 흰 꽃다발 위 화면에 지나갔다. 눈물이 났다.


비단 남의 일 같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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