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 일기
1989년, 내 유년기의 ASMR을 듣게 된다면 24시간이 시끄러울 것이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은 공항과 매우 가까워서 비행기가 이 착륙할 때마다 유리창들이 일제히 흔들리곤 했다. 그 소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예를 들면 바로 옆에서 바닥을 뚫는 공사 같은 걸 하면 그런 소리가 나지 싶다.
그 시절에는 지금의 샷시 같은 것도 없어서 동네의 창이란 창은 몽땅 흔들렸고 학교는 공항 바로 옆에 있어 소리가 더 컸다. 한 마디로 하루 종일 소음에 시달렸다는 사실.
그때에는 그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못했다. 태어날 때부터 줄곧 그래 왔으니까. 나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었다. 공항에서 학교에 이런저런 행사를 해주고(견학인데 비행기 조정석에도 들어가 보았다.) 아이들에게 선물도 주고 했던 것들이 어른이 되어서야 이해가 되었다.
부모님에게도 선택지는 없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자리 잡은 터전이었고 오랫동안 사셨던 분들도 시위 같은 것은 해본 적도 없는 시골 어르신 들이었다. 그렇지만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하셨을까.
어린 나에게는 그 소리가 마냥 재미있었다. 온 동네에 매일같이 울리는 이벤트 폭죽 같은 소리.
소리가 펄럭댄다
그 소리는 그렇게 내 눈에 보였다. 오래된 알루미늄 창틀이 마구 덜컹 거리며 유리가 깨어질 듯 말 듯 앞 뒤로 휘어지는 소리. 그게 바람도, 충격도 아닌 단지 비행기가 가까이 날아서 그렇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비행기가 바로 내 머리 위에서 땅으로 내려가는 풍경은 분명 압도적이었고 무서웠지만 그 소리만큼은 싫지가 않았다.
공항에서 세뇌당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저 크고 웅장한 기계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던 것 같다. 농촌에서 들리는 소리라곤 경운기와 개 짖는 소리, 소와 닭 울음소리뿐인데 미래에서 온 것만 같은 첨단의 동체가 엔진 소리를 있는 대로 끌어내며 온 동네에 존재감을 뽐내주니 그저 특별하기만 했다.
2020년, 오늘의 소리는 맑았다.
주변에 큰 도로도 없는, 소음 청정지대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지금, 오늘 아침 내가 들었던 소리는
그저 맑았다.
바로 아들의 소변 누는 소리다.
작은 발이 마루를 디디며 걷는 소리와 화장실 문을 삐꺽 열고는 잠시 후 들리는 졸졸 물 내려가는 소리.
미혼의 청년들이라면 기겁할지도 모르겠지만, 단연코 나의 최애 힐링 모닝 ASMR이다.
쾅 변기 뚜껑을 야물지 못하게 닫고는 물을 내리고 빠른 뜀박질로 내 침대로 뛰어오는 소리까지. 그리고 내 귀에다 대고 세상 그 어떤 고품질 오디오보다도 생생하게 속삭이는 소리까지.
비행기 소리에 두근거리던 나는 어느새 그때의 내 나이만큼 자란 내 아들의 오줌 소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상하게 들릴 것 같아 덧붙이자면 아주 조용한 아침의 오줌 소리만이다. 더 설명해도 이상해 보이긴 하네요.)
평소의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자연의 소리를 좋아한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심 한복판의 집을 피한 것도 그 이유다. 내 아들이 매일 듣는 소리들은 어떠할지 신경을 쓰게 된다. 사람마다 청각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소리는 생각보다 기억에서 오래 살아남는 것 같다.
내 아들의 오늘 소리는 어땠는지 물어봐야겠다. 현대에서 우리가 흔히 듣는 소리들.
앰뷸런스, 인터폰, 아파트 방송, 각종 영상매체들 등등.
어쩌면 비행기보다 시끄럽지는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