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서랍에 묵혀두었던 교육 이야기 3
작가는 1986년 생으로 미국 아이다호에서 7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나 강성 몰몬교도의 부모 아래 홈스쿨링으로 성장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조울증 혹은 정신분열을 방불케하는 행동과 양육태도를 가지고 있고 극단적인 종교심으로 온 가족을 사상의 낭떠러지에 세워 둔다. 어머니는 종교관에 근거를 두고 성심성의껏 살아가는 뚝심있는 여자로 묘사되어 있다. 특히 산파로 시작해서 민간 진료 관련 사업에 성공을 거두어 가정의 사상적 기반을 유지하는 지원병이 된다. 7명의 남매들은 강력한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성장한다. 작가는 3명의 박사 학위자와 4명의 고등학교 졸업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들의 선택과 삶의 양식에 격차를 여러 각도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역사학을 전공했고 캠브리지와 하버드에서 수학했으며 상당히 주목받는 연구 결과를 도출한다. 이 책은 그녀의 자전적 에세이다
읽는 맛
엄청나게 빠르게 읽힌다. 봉준호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라는 ' 급작스럽지만 엄청 자연스럽다는 그 장르 변모'를 책 전체에서 얼마나 화려하게 시연하는지.... 호러, 고어, 재난, 성장기록, 아카데믹, 페미니즘까지.
거의 반 미치갱이인 아버지 아래서 하버드대학 박사 수료까지 한 발 한 발 내밀어가는 과정이 영화 같았다. 현실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기가 막히는 장면도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저자를 고난을 딛고 화려하게 성공한 모습으로만 오해하면 안된다. 저자는 마지막까지 번민하고 있었다. 그 번민이 얼마나 진하게 다가오는지.....
전반적으로 저자의 삶은 굉장히 긴장도가 높고, 공포와 번민이 상당하다. 읽는 내내 눈쌀이 찌푸려지고 입이 떠억 벌어지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읽고 나서도 두려움의 여운이 남을 정도였다.
교육에 대한 2가지 접근과 미.국.냄.새.
내가 인식하고 있는 교육이란 크게 두 가지 개념으로 구분 되어 있다.
1. 사회화의 과정 및 조건
2. 자아와 세계에 대한 이해 및 발견
개인적으로 교육에 대한 환상과 기대가 가득한 교사의 입장에서 2번을 주구장창 외치고 싶지만 현실은 1번의 교육 구조가 더욱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사회화로서의 교육이 나름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초등학교 교사이니까 더 그럴 것이다. 사회화로서의 교육과 자아 탐색으로서의 교육이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라 순차적인 개념일 수도 있으니까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할 필요도 있겠다.
어쨌든 이 책에선 1번과 2번의 교육 개념을 두루 보여주고 있다.
먼저 몰사회적인 인물인 아버지에게서 튕겨나와 구조를 이해하고 사회 문화적 차이를 받아들이는 치열한 과정이 세밀하게 드러난다. 인간이 사회화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똑똑해지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닐 거다. 사회적 성공을 얻는 것도 아니다. 사회와 구조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며 좀 과하게 표현하면 [똑같아지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인간들을 비슷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다르게 만드는 것]이 교육이라는 걸 보여준다. 나를 찾는 것, 나의 판단 기준을 성립해 가는 과정이 교육이라고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책의 말미에서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이 교육"이라고 한 대목이 바로 그 정점이겠다.
두 가지의 교육관을 교묘히 줄타기하며 이야기가 전개 된다. 그리고 종국에는 미!쿡!적인 향기가 물씬 나는 책이 완성 된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극대!! 압제된 의식의 해방, 그리고 유명 대학의 성!공!신!화! "까지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같은 결론이어서 미국 출판계에서 관심과 사랑받게 된 것은 아닐까 살짝 의심해보았다. 미국은 교육을 다소 영화처럼 다루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성을 지키는 보루라는 뉘앙스.....
하지만 한국은 교육을 시장으로 인식하고 분해하고 분석부터 하는 기조가 강하다. 교육은 상품이며 좋은 상품이 되려면 경쟁과 독특성을 유지해야한다는 담론과 도서가 엄청나지 않은가? 유행하는 교육 상품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즐비한가! 교육 관련 대표 드라마 " 스카이캐슬"을 생각해보면 그러한 현상을 알 수 있다. 낭만적이고 감동적인 드라마나 현장 이야기는 에세이 정도로만 소비되는 것 같다.
이런 다른 부분 때문에 미쿡냄새 나는 책으로 느껴졌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 끄집어 올리기
- 기저 의식에서 독립할 때의 인간 심리
저자를 통해 기저 의식 (몰몬교리와 근본주의적인 종교과)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느끼는 죄책감과 불안, 공포를 엿보았다.
나 역시 그런 공포와 불안을 꽤 많이 느끼는 사람이다. 기독교 세계관, 기독교 교육, 강한 애착, 성장론이란 다소 아름다운 이름 아래 뿌리 내린 모순된 의식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정말 힘들고 어렵다. 생각이 습관이 되어 있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여전히 크다. 하지만 하루 하루 성실하게 의식과 싸우고 발버둥치며 노력해야지 싶다.
" 하나님 지난 1년동안 제 기도 들어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러나 더욱 더 감사하옵기는 나의 기도를 기각해주신 것입니다." 김교신 선생의 일기 중에서
- 멘붕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시간과 방법
저자는 신경 쇠약 상태에서 벗어나는데 무려 2년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불안과 공포에서 빠져 나오는 것은 이성과 의지로 되지 않는 영역 같다. 이 영역은 생각의 습관과 굉장히 밀접하다고 여겨진다. 건강한 생각의 습관을 가지며 나이가 들어갈 수록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 발췌
◆ 대학 진학 준비
나는 매일 아침 새벽 6시에 일어나 공부를 했다. 폐철 처리장에서 일해서 지치기 전인 아침에 집중이 더 잘됐기 때문이다. 여전히 신의 분노가 두렵기는 했지만 내가 ACT 시험에 통과할 가능성이 아주 낮으니, 만일에 통과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뜻이라고 나 자신을 합리화했다. 그리고 주님의 뜻으로 시험에 통과한다면 대학에 가는 것이 주님이 원하는 바라는 놀리도 만들어 냈다. 334p
◆ 대학 시험
시험이 시작됐다. 나는 한 번도 사람들로 가득 찬 방에 있는 책상에 4시간 동안 앉아 있어 본 적이 없었다. 소음이 믿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 소음을 듣는 사람은 나 뿐인 것 같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종잇장을 넘기는 소리, 종이에 연필이 사각거리는 소리에 주의를 빼앗기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336p
◆ 시험 현장에서
나 자신이 멍청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멍청하다는 느낌보다 말도 안된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다른 학생들을 보고 나니 -그들이 단정하게 줄을 맞춰 교실로 들어가서, 각자 책상에 앉아 차분하게 답지를 채우는 것, 그 모든 일을 익숙하게 해내는 것을 보고 나니 - 그 중에서 내가 상위 15퍼센트의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여겨졌다. 337p
◆ 가족들의 신앙과 사상
다른 사람들은 겸양을 < 믿었지만 > 우리는 겸양을 실천했다. 다른 사람들은 주님의 치유를 <믿었지만> 우리는 주님의 손에 치유를 맡겼다. 다른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믿었지만> 우리는 실제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 393p
◆ 비숍이 내게 해준 설명을 에밀리에게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비숍의 언어였지 내 언어가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내 언어로 설명할 단어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말을 하기 위해 80킬로미터를 달려 왔지만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547p
◆ 그러나 그 말들은 내 입술을 떠나는 순간 생명이 없는 말들이 되어 있었다. 확신에서 나온 말들이었지만 그 말들에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548p
◆ 의식의 굴레
그곳은 나를 놔주지 않아. 거기서 어쩌면 절대 해방되지 못할 것 같아.하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만 말했어도 문제의 핵심은 알려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시간 뒤에 숨고 말았다. 털어놓기에는 너무 늦었고, 내가 가는 곳에 그가 동행하기에도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별 인사를 했다.553p
◆ 케임브리지 교환학생
[ 계속 도전을 해보세요. 그렇게 하면서 어떤 일 이 벌어지는지 보는 거예요.]
[도전을 하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케임브리지라고 들어봤어요?][영국에 있는 대학이에요]
[세계에서 가장 좋은 대학 중 하나지요. 내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굉장히 경쟁률이 높고, 엄청나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 돼요. 합격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만일 학격을 하면 그건 학생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거예요][먼저 학생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본 후, 학생이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세요]558p
◆ 아버지의 화상과 환상
아버지의 화상 이야기는 일종의 건국 신화가 됐다. 새로 온 사람은 물론 오래전부터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 이야기는 계속 반복되며 회자됐다. 사실 집에 오후 한나절만 있어도 그 기적에 관한 이야기를 어떤 형태로든 한 번도 듣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대부분 정확하지 않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563p
◆ 케임브리지에서의 연구
브리검 영 대학교의 어느 교수도 스타인버그 교수처럼 내 글을 이 잡듯 읽지 않았다.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 형용사나 동사 하나까지도 그의 관심을 끌지 않는 것은 없었다. 그는 문법과 뜻, 형식과 내용을 구분하지 않았다. 허술한 문장은 허술하게 쌓아진 논리이고, 문법적 놀리도 틀리면 수정을 받아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이 교수의 시작이었다. [말해 봐요. 이 쉼표는 왜 여기에 찍었지요? 이 두 구문 사이에 어떤 관계를 정립하려고 한 것이지요?] 그는 그렇게 묻곤 했다. 내 가 설명을 하면 어떨 때는 < 맞는 말이군 >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길게 구문론 설명에 들어가기도 했다.580p
◆ 그들의 책은 어떻게 스스로 생각하는지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생각할지를 배우기 위해서 읽었다. 581p
◆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는 믿음
책에 쓰인 말들을 나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읽는 것은 전율이 흐를 정도로 기쁜 일이었다. 그와 동일한 전율을 매디슨, 해밀턴, 제이의 글을 읽을 때도 느꼈다. 특히 그들의 결론보다 버크의 결론에 나 스스로 동조하게 될 때, 혹은 그들의 생각이 내용 면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고 단지 형식적으로만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 기쁨은 더욱 컸다. 이런 방식으로 책을 읽는 것에는 대단한 가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바로 책들은 사람을 속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나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가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582p
◆ 가족과 신경 쇠약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읽는 문장들에서 아무 의미도 찾을 수가 없었다. 문장들을 엮어서 생각의 가닥을 만들고, 그 가닥들을 엮어서 아이디어로 짜내는 과정을 견뎌 낼 수가 없었다. 아이디어들은 생각과 너무 가까웠고, 생각을 하면 어김없이 나를 두고 떠나 버리기 직전 화상의 흉터로 엉망이 된 아버지의 얼굴에서 봤던 표정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신경쇠약은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는 너무나 분명해 보이지만 자신은 모른다는 것이 특징이다 < 난 괜찮아 > 본인은 그렇게 생각한다. <어제 한시도 쉬지 않고 24시간 내리 텔레비넝르 봤다고 이상한 건 아니잖아. 그게 내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증거는 전혀 아니지. 난 그저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뿐이야.> 자신이 정신적인 어려운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편이 왜 더 쉬운지 나도 모르겠다.그러나 내게는 그게 더 편했다. 아니 편한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걸 정도로 중요했다.737p
◆ 결별
[드라이브하고 올게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면서 엄마에게 말했다. 그리고 엄마를 한 번 안아주고, 벅스피크를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모든 선과 그림자를 기억 속에 담았다. 엄마는 내가 일기장들을 차로 나르는 것을 봤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고, 거기 담긴 작별의 의미를 느낀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를 불러 왔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나를 어색하게 한 번 안아 주고 말했다. [사랑한다. 알지?] [알죠.] 내가 말핬다. [그게 문제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 말들은 내가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 됐다.746P
◆ 의식 해방
그동안 공부하고, 책을 읽고, 생각하고, 여행하면서 얻은 경험들이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버린 것일까? 나는 폐철 처리장과 자기가 사는 산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던 그 소녀가 이상하게 생긴 하얀 기둥에 비행기 두 대가 가서 부딪히는 것을 뚤허져라 쳐다보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녀의 교실은 폐철 더미였고, 그녀의 교과서는 폐철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녀는 -내게 주어진 그 모든 기회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 모든 기회 때문에 - 나는 가지지 못한 그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751P
◆ 연구
던지는 질문들의 범위를 줄이고, 더 학국적이고 정확한 질문으로 다듬었다. 결국 나는 19세기에 벌어진 네 개의 지적 움직임을 선택해서 가족에 대한 의무라는 문제를 두고 그들이 어떤 고민을 했는지를 고찰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선택한 움직임 중 하나가 19세기 모르몬주의였다. 1년을 꼬박 연구한 끝에 박사 논문 초고를 완성했다 [ 영미 협동조합 사상에 나타난 가족, 도덕성, 사회과학: 1813년~1890년]763P
◆ 교육 = 배움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 = 배움이라 부른다.78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