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레 서점의 오랜 팬으로서 아이부키에 리브랜딩 제안하기
장한평 역 근처에 위치한 무아레 서점을 자주 방문한다. 서가에 좋은 책이 큐레이션 되어있고, 인테리어가 예뻐서 머물기 좋아서다. 무아레 서점이 시작할 때부터 방문했으니, 어느덧 2년이 넘은 셈이다. 서점과 함께 여러 일들을 기획하기도 했고, 또 북토크, 독서모임, 일주년 모임, 네트워킹, 야간근로조 등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무아레 서점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한 번 살펴보았다. 새삼 돌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이벤트를 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다 가지고 오기 어려울 만큼 무아레 서점에서 많은 경험들을 쌓고, 함께 성장해 왔다. 서점에 대한 애정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최근에 무아레 서점 운영진 중 한 분이 무아레를 떠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서점의 다른 운영진이 나에게 감사하게도 함께 일할 생각이 있냐고 제안을 주었고, 나는 참여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무아레 서점의 특징이라 하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사회적 기업의 본사 안에 위치한다는 점일 것이다. 장한평에 위치한 장안 생활이라는 건물 2층에 무아레 서점이 있고, 3층에 아이부키 본사가 있다. 나는 무아레 서점에 방문한 적은 많았지만 아이부키에 가본 적은 없었는데 면접을 기회로 아이부키 본사에 방문할 수 있었다.
내가 아이부키 대표와 면접을 하기 전 전해 들었던 사항은 무아레 서점만 담당하기보다 아이부키 자체에서 브랜딩을 함께 할 사람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아이부키 내 주택의 브랜딩인지 아이부키의 브랜딩인지 혹은 주택 내의 BX 인지 정확한 정보는 알지 못했지만, 나는 원래 브랜딩에도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여겨졌다. 이력서를 인쇄하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대표와의 미팅에 들어갔다.
아이부키는 주택 사업을 하는 기업답게 사무실이 개방적이고 멋진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무아레 서점 운영진들도 함께 면접에 들어가 주었다. 대표는 내 이력서를 훑어보고서 두어 가지 질문을 던지더니 나와 무아레 운영진에게 말했다.
무아레가 자립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떡해야 할까?
무아레 서점을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면접은 십여 분 만에 마무리되었고, 대표는 무아레 서점이 자립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일주일의 시간을 주겠다고, 방안을 가지고 다시 만나자고 했다. 나는 곧바로 무아레 서점 미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아레 서점 리브랜딩 전략을 세우기 위해 우선 다른 독립서점들을 조사해 보았다. 서울 내에만 해도 생각보다 많은 독립서점들이 있었고, 저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대표는 무아레 서점이 회사의 도움 없이 자립하는 것을 원한다고 했고, 그러려면 매출 증진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해서 매출 분석도 진행해 보았다. 사실 나는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어서 재무 관련 분석을 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서툴고 어려웠지만, 무아레의 성장을 숫자로 살펴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매출 분석을 통해서 매출 증진 계획과 동시에 서점이 앞으로 어떤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면 좋을지 무아레 운영진과 회의를 거듭했다.
일주일 동안, 다른 생업이나 외주 작업들을 모두 미루어 두고 무아레 서점의 미래에 집중하여 리브랜딩 전략 프레젠테이션을 제작하였다. 서점의 오랜 팬으로서, 보여주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모두 담으려고 노력했다.
발표날 아침, 발표 준비로 두 시간 정도만 자고서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부키로 향했다. 대표와의 미팅자리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회의실에는 두 사람이 더 있어서 더 떨렸다. 무아레 서점 운영자가 미팅 며칠 전 회사 브랜딩 관련한 분들이 오실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그 사람들인 것으로 짐작했다. 그 사람들은 본인들 소개를 하지 않았고 대표도 따로 소개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소개하고서 바로 발표를 시작했다.
발표를 하다 보니 발표 중간에 대표가 아이부키의 다른 직원 다섯 명을 더 불러서 발표를 함께 들었다. 마침내 발표가 끝나고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 돌아왔다. 나는 대표와 처음 보는 일곱 명에게 발표에 대한 피드백을 들었다.
발표가 끝나고 다음 날, 서점 운영진에게 대표가 함께 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나는 아쉬웠지만 좋아하는 브랜드에 역제안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만으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또 후회가 없을 만큼 열심히 했기 때문에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도 언젠가는 내 사업을 가지는 것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이번 경험을 통해 배운 점들을 기록해두고자 한다.
열심히 달리고 나서, 내가 겪은 것들을 톺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보면 나는 내부 직원 추천을 통하여 아이부키의 채용 과정을 겪은 셈인데, 채용 과정 내내 어떤 포지션으로 제안을 받은 건지, 채용 과정, 채용 조건은 어떻게 되는지 아무런 정보도 알 수 없었다. 우선 나를 추천한 운영진이 이런 정보를 전혀 모르는 상태였고, 나는 서점 운영진을 통해서만 회사와 소통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원자 입장에서 물불 가리지 않고 무아레 서점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뛰어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만약 내가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이라면 이런 방법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추천을 통해 지원하였더라도 회사에 입사지원을 한 것이지 추천을 한 사람에게 지원한 것이 아니므로, 회사 측에서 지원자와 소통 창구를 마련하고, 면접에서는 최소한 지원하는 자리가 어떤 일을 하는 포지션인지에 관한 정보를 주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회사에서도 그것을 정하지 못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도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혹은 새로운 사람이 필요한지 아닌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일단 일을 시켜보고 지원자 스스로 포지션을 제안하기를 바랐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점 리브랜딩 발표 후 아이부키 대표가 나와 서점 운영진에게 피드백을 반영하여 다음에 다시 보자,라는 말을 했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이것이 채용 프로세스 중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프로젝트나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채용 프로세스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떠한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막연히 이것으로 프로세스가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원이 아닌 지원자에게 다음에 발전시켜서 가지고 오라는 말을 하지는 않을 것 같았고, 대표는 이것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면 나는 노동에 대해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은 상황이었다. 면접 과제비조차 전혀 받지 않았다. 더 이상 생업인 외주의 마감을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대표에게 언제까지 이 프로세스를 밟아야 하는지 물어보았고, 대표는 그 생각을 미처 해보지 못했다는 듯 그제야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도 소통에 무언가 큰 구멍이 있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내 프레젠테이션은 열심히 준비하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대표가 원하는 방향성과 맞지 않았고, 회사에서도 지원자인 나의 입장에서도 쓸모없는 시간을 낭비한 셈이 되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누군가 추천을 받으면 좋은 사람이겠거니 생각하고 일단 한번 보자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 것 같다. 하지만 회사가 현재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정립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원자를 받게 되면, 프로세스가 꼬이고 회사와 지원자 양측에서 쓰지 않아도 될 시간과 노력을 써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만약 내가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면, 누군가 인재를 추천한 경우 회사에 필요한 포지션을 정리해서 본격적인 채용 프로세스가 진행되기 전 서로의 니즈가 맞는지 점검하고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추천과 공개 채용의 경우 둘 다, 모든 지원자가 같은 채용 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정해진 과정을 확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랜드의 리브랜딩은 큰 결정 중 하나이다. 브랜드의 미래 비즈니스를 결정하는 일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아레 서점의 단골손님으로서 리브랜딩 피티를 준비해 본 것은 다양한 것을 배운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외부인으로서 서점의 미래 전략을 일주일 안에 생각해 낸다는 것이 한계점이 많은 방식이라는 것을 느꼈다. 일주일은 서점이 이때까지 해온 것을 겉핥기식으로만 살피는 데에도 모자란 시간이었던 것이다. 나를 믿고 큰 주제를 맡겨준 점은 감사했지만, 효율적인 의사결정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 이번 일을 겪으면서 스쿼드 조직의 R&R(Role and Responsibilities)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내부자가 아니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겪어본 바로는 아이부키의 조직 구성은 위계 조직보다는 역할 조직으로 보였다. 역할 조직은 조직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얼마나 높은 직급인지에 상관없이 역할에 따라 맡은 일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구조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에게나 일단 일을 맡기고 보자 라는 방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회사에서 업무 분담을 할 때, 구성원에게 어떤 일을 맡겨야 좋은 퍼포먼스가 나올 것인지 고려하지 못하는 사람이 업무를 맡기는 위치에 있으면 회사가 좋은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 역시 배울 수 있었다. 결국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일에 매진하고 나니 누구나 아는 단순한 사실이 더 깊이 느껴졌다. 스쿼드 조직에도 PO가 필요하고 트라이브에도 트라이브 리더가 존재하는 것처럼, 좋은 리더의 존재는 위계 조직과 역할 조직을 가리지 않고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 년에 1000달러를 지불하는 100명의 팬만 있어도 성공한 비즈니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그만큼 브랜드가 가지는 팬의 존재가 브랜드의 가치를 대변하는 시대가 되었다. 현대의 독립 서점 역시 서점이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닌 지역 기반 커뮤니티 역할을 하게 된 만큼, 서점 브랜드를 사랑하고 아끼는 팬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아레의 팬으로서 이번 발표를 준비했다. 내가 회사 대표라면 누군가 우리 회사와 회사가 가진 브랜드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관심으로 비전에 대한 발표자료를 제작해 와서 발표를 한 상황이라면, 내용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지라도 발표가 끝나고 비판을 하기 전에 "잘 들었습니다." 한 마디 정도는 할 것 같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그 노력에 대해 아무런 대가도 지불할 수 없고 핏이 맞지 않아 채용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내린 결정과 그 결정을 내리게 된 사유를 지원자에게 직접 통보할 것 같다. 나는 서점 운영진을 통해 불합격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물론 내용 없는 치하의 말처럼 의미 없는 것이 없다고 나도 생각한다. 시간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미 함께하지 않기로 한 사람을 챙기는 것도 불필요한 일일 것이다. 나도 회사 대표가 되면 시간이 지금보다 더 소중해질 것이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전부 생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내 비즈니스를 하게 되었을 때 잊지 않기 위해 지금 이 글에 나의 배움을 기록해두려 한다. 케빈 캘리가 말한 것처럼, 성공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을 때 오는 것이고, 미래를 함께 꿈꾸는 팬이야말로 브랜드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자산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