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내면 성찰로 깨달음에 가까이 가다
인간은 하나의 작은 우주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도 자연의 순리대로 흐른다. 누군가는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또 다른 누군가는 인생의 흐름을 거스르고 싶어서 애쓰며, 또 이 책의 주인공처럼 누군가는 순리를 따르면서도 치열한 내적 성찰과 함께 산다. 우리는 주인공 싯다르타의 삶의 여정을 통해 나는 인생의 사계절 중 어디쯤 지나고 있는지, 또 나는 어떤 계절에 가장 오래 머무르고 싶은지, 그리고 죽음 직전 나의 계절은 어디에서 멈추고 싶을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싯다르타의 유년기는 누구나 반기는 봄으로 비유할 수 있다. 고운 얼굴과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주위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환대받는 벚꽃 같은 그의 내면은 정작 기쁘지만은 않다. 그래서 그는 봄꽃 같은 생활을 저버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수행자들과 함께 고행길을 나선다. 늦봄 꽃잎이 나무에서 제 몸을 바닥으로 던지듯. 그리고 수행길에서도 마음의 고뇌가 끊이지 않던 그는 이번엔 인간의 세속에 강력하게 젖어보기로 한다. 스스로 소낙비와 천둥 번개를 맞을 각오를 하며 여름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그곳에서 그는 창부를 만나 성적 쾌락의 극치를 경험하기도 하고 성공한 상인이 되어 주색잡기, 육욕의 달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득 그는 오감에 닿는 극한의 쾌락과 최정상의 부를 지녔다는 만족감조차 자신의 삶을 허무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함을 깨닫고 모든 것을 버린 채 또 길을 떠난다. 마치 여름 지나 나뭇잎이 빛바랜 모습으로 제 몸을 던져 낙엽이 되는 가을처럼.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는 과거에 자신으로 인해 임신한 여인을 만나게 되고 아들을 얻게 된다. 아들 또한 어쩌면 가을의 열매 같기도 하다. 그러나 싯다르타가 그동안 얻은 지혜와 애정과 관심으로 아들에게 최선을 다해도 양육은 쉽지 않았고 결국 아들은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고리타분하다고 느끼고 그의 곁을 떠나고 만다. 그리고 그의 생의 겨울, 그가 강물을 바라보며 쓸쓸해하던 어느 날, 그는 마침내 삶과 죽음의 두 세계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그동안 자신이 구분 지었던 모든 것들이 사실 대립쌍이 아닌 단일한 존재로 이루어져 있다는 궁극적인 깨달음에 이른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와 모든 관념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싯다르타의 겨울, 모든 것을 사랑하고 경이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그를 보며 마음 한 구석에 찌르르 감동이 오는 걸 보니 아마 내 인생의 흐름의 막바지는 겨울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든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았을 때, 땅이 텅 비어보일 때 우리는 마치 모든 것이 비워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이 시기가 가장 내적으로는 풍성한 시기이다. 나무와 땅 속으로 파고드는 온갖 동물들과 씨앗들 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감정도 더 깊어진다. 눈앞을 어지럽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추운 날씨에 밖을 돌아다니기보다는 자신을 움츠리는 이 계절이 주는 선물이다. 그리고 이 겨울이 지나면 가을이 남겼던 열매 속 씨앗이 다시 싹을 틔우고 고개를 내밀며 다시 봄이 시작된다. 그렇게 삶이, 인생이, 인류가, 우주가 순환한다.
사계절에 우열이 없는 것처럼 사실 인생의 모습에도 우열이 없다. 모든 순간이 아름다움이다. 싯다르타의 깨달음처럼 대상들을 비교하고, 자신의 고정관념으로 세상을 구분하고 경계 짓는 태도만 조심한다면, 그리고 모든 존재에 대해 사랑과 이해의 마음을 가지려 노력한다면 우리는 모든 이의 인생을 경이롭게 보며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스럽고 인정받고 보호받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이 같은 순수함의 시기, 큰 꿈을 품고 배우고 성장하고 탁월해지고 싶어 하는 열정의 시기, 자신의 것을 내어주며 누군가를 돌보고 주변을 풍성하게 하는 사랑의 시기, 성찰을 통해 자연과 세계와 연결감을 느끼게 되는 초월의 시기. 지금 당신의 때는 어디쯤일까.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최선의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