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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11. 2024

법은 법조인만 알면 되나 (3)

취지만 파악되면 문법에 어긋나도 그만인가

민법 총칙의 제3장은 법인이다. 사람이 아니라 법인도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은 주무관청의 허가를 얻어서 설립할 수 있다. 법인은 설립등기를 함으로써 성립한다. 법인에는 이사를 두어야 하고 감사는 둘 수 있다. 제3장 제4절은 해산에 관해 규정한다. 제4절의 첫 조인 제77조는 다음과 같다. 


제77조(해산사유) 

①법인은 존립기간의 만료, 법인의 목적의 달성 또는 달성의 불능 기타 정관에 정한 해산사유의 발생, 파산 또는 설립허가의 취소로 해산한다.

②사단법인은 사원이 없게 되거나 총회의 결의로도 해산한다.


제77조 제1항에서 다양한 해산 사유를 들고 있다. 존립기간이 끝났을 때 해산하는 것은 당연하다.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도 해산한다. 목적 달성이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도 같다. 존재할 이유가 없다. 파산하는 경우에도 해산한다. 주무관청이 설립허가를 취소했을 때도 역시 해산한다. 이상 제1항의 해산 사유는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제2항이 또 있다.


제2항은 "사단법인은 사원이 없게 되거나 총회의 결의로도 해산한다."이다. 법인을 구성하는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와 총회가 해산하기로 결의했을 때도 해산한다는 뜻 같다. 필자는 몇 해 전 이 문장을 읽고 눈을 의심했다. 조금 과장하면, 기절할 뻔했다. 대한민국의 민법 조문에 이런 문장이 있다니! "사단법인은 사원이 없게 되거나 총회의 결의로도 해산한다."는 가당한 문장인가. 이게 말이 되는 문장인가. 초등학생도 쓰지 않을 이런 문장이 민법 제정 때부터 들어앉아 70년이 가깝도록 고쳐지지 않고 남아 있음은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사단법인은 사원이 없게 되거나 총회의 결의로도 해산한다."는 왜 말이 안 되는가. '사원이 없게 되거나'는 동사구인데 접속 어미 '-거나'가 쓰인 이상 이어서 동사구가 나와야 한다. 그게 문법이다. 그런데 '총회의 결의로도'라는 명사구가 나왔다. '총회가 결의할 때도'나 '총회가 결의할 경우에도'나 '총회의 결의가 있을 때도'와 같이 동사구가 나와야 하는데 말이다. 이는 마치 "비가 오거나 강설에도 경기는 열렸다."와 같은 문장으로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경기는 열렸다."라야 문법에 맞다. 그리고 문법에 맞을 때 뜻이 선명하게 이해된다.


법조문은 문법적으로 흠이 없는 모범적인 문장이어야 함은 그 누구도 이를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사단법인은 사원이 없게 되거나 총회의 결의로도 해산한다."는 문법적으로 '꽝'이다. 그래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게 무슨 말이지 하는 의문을 느끼게 한다. 민법 제77조 제2항을 읽는 마음이 몹시 거북하다. 엉터리 법조문을 방치하고 있음은 왜인가. 법의 취지가 파악되면 문법적으로 틀렸건 말건 상관이 없나. 우리는 기본을 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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