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무러칠뻔했다
민법 제920조의2는 친권의 효력에 관한 한 조항이다. 1990년에 신설된 조이다. 조문은 다음과 같다.
이 조문은 일반인이 이해하기가 대단히 까다롭다. '공동명의로 자를 대리하거나 자의 법률행위에 동의한'이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법률가가 아니므로 이 조문의 법리에 대해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조의 단서 부분에 참으로 놀라운 어법의 오류가 있음을 지적할 뿐이다.
이 조의 단서는 "그러나 상대방이 악의인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이다. '악의인 때에는'은 법률 조문에서 흔히 쓰는 표현으로서 일상에서는 "몰랐을 때에는"이다. "상대방이 악의인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는 상대방이 몰랐을 때에는 효력이 없다는 뜻이다. 놀라운 대목은 '그러하지 아니한다'이다.
필자는 이 조문을 읽고 거의 까무러칠뻔했다. 왜냐하면 우리말에는 '그렇지 않다'나 '그러지 않는다'는 있어도 '그렇지 않는다'라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형용사이고 '그러다'는 동사로서 부정을 할 때 각각 '그렇지 않다(그러하지 아니하다)', '그러지 않는다(그러지 아니한다)'가 된다. 그런데 민법 제920조의2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라 되어 있다. 그것은 곧 '그렇지 않는다'와 같다.
민법 제920조의 2에 나오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의 잘못이다. 우리나라 법률 조문에 무수한 '그러하지 아니하다'가 나온다. '그렇지 않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민법 제920조의2에 유일하게 '그러하지 아니한다'가 발견된다. 단순한 오타일 뿐이다. 1990년에 신설될 때 이런 오타가 법조문에 들어간 것도 놀랍지만 30년이 넘도록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은 더 놀랍다. 법조문은 오타가 그렇게 사소하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