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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15. 2024

효력을 발생한다?

잘못 꿴 단추는 새로 꿰야 한다.

농업협동조합법이란 법이 있다. 1957년에 제정되었으니 민법보다도 1년 빨리 제정되었다. 그러나 1948년에 제정된 헌법보다는 약 9년 늦었다. 왜 헌법을 언급하는가? 농업협동조합법 제35조 제1항, 제73조 제2항에 '효력을 발생하지 아니한다'라는 표현이 들어 있는데 그 뿌리가 헌법에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제35조(총회의결사항 등)

② 제1항제1호ㆍ제2호 및 제4호의 사항은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의 인가를 받지 아니하면 효력을 발생하지 아니한다. 다만, 제1항제1호의 사항을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한 정관례에 따라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73조(출자감소에 대한 채권자의 이의) 

② 채권자가 이의를 진술한 경우에는 지역농협이 이를 변제하거나 상당한 담보를 제공하지 아니하면 그 의결은 효력을 발생하지 아니한다[전문개정 2009. 6. 9.]


'효력이 없다' 하면 될 것을 '효력을 발생하지 아니한다'라고 했다. '효력 발생하지 아니한다'라고 해도 문제 없다. '효력이 생기지 아니한다'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아닌 '효력 발생하지 아니한다'가 쓰였다. 그 뿌리가 헌법에 있다고 생각된다.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대한민국헌법 제40조는 다음과 같았다.


제40조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로 이송되어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 단, 이의가 있는 때에는 대통령은 이의서를 부하여 국회로 환부하고 국회는 재의에 부한다. 재의의 결과 국회의 재적의원 3분지 2이상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지 2이상의 찬성으로 전과 동일한 의결을 한 때에는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 법률안이 정부로 이송된 후 15일이내에 공포 또는 환부되지 아니하는 때에도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 대통령은 본조에 의하여 확정된 법률을 지체없이 공포하여야 한다. 법률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공포일로부터 20일을 경과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한다.


지금까지 아홉 번이나 헌법은 개정되었고 1988년에 공포된 현행 헌법에도 이 '효력을 발생한다'는 그대로 있다.(헌법 제53조 제7항) '효력을 발생한다'는 헌법에 들어 있다 보니 강력한 힘을 발휘해 법률 종사자들은 그만 의문을 느끼지 않게 된 듯하다. 말이 안 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에게는 '말이 되는' 표현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1957년 제정된 농업협동조합법에도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금도 그대로 있다. 


그러나 농업협동조합법 제49조 제3항의 '효력을 상실하지 아니한다'는 정상적인 국어 표현이지만 '효력을 발생하지 아니한다'는 틀린 표현이다.


제49조(임원의 결격사유) 

③ 제2항에 따라 퇴직한 임원이 퇴직 전에 관여한 행위는 그 효력을 상실하지 아니한다.


'효력이 발생하다'이지 '효력을 발생하다'가 아니다. 너무 귀에 익은 나머지 법률 여기저기에 '효력을 발생하다'가  들어가 있다. '사고가 발생하다'지 '사고를 발생하다'라는 말은 없지 않은가. 


민법, 형법 등 우리나라 6법은 문법에 대해 유난히 둔감하다. 법은 문법의 치외법권 지대에 있는 걸로 아는 듯하다. 그럴 리가 없다. 문법에 예외는 없다. 법조문이야말로 문법을 가장 엄격하게 지켜야 하지 않나. '효력을 발생하다'는 법조문에서 바로잡아야 하고 헌법 제53조 제7항에서도 물론 마찬가지다. 단추를 잘못 꿰었다면 풀고 새로 꿰야 한다. 그걸 주저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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