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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g Jul 04. 2018

32. 육아템

출산을 앞두고 아기와 관련된 준비물을 준비하면서 생각보다 꽤나 놀랐던 기억이 난다. 육아의 세계는 넓고 무궁무진했으니. 출산 후 아기를 낳아 기르면서 한 번씩 '아, 이런 게 좀 불편한데' 라거나 '이런 걸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라고 생각했던 부분들 역시 어지간한 용품들은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을 만나면서 '육아템의 끝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어느 날 문득 H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H, 당신이 생각할 때 이건 없어서는 안 될 육아템이야!! 하는 건 뭐가 있어? 유모차나 아기띠, 바운서 같은 기본적인 아이템들을 제외한다면"

H의 얼굴에 잠깐 고뇌가 스쳤다. 꽤 어려운 질문인 듯 물었다.

"흠, 어려운데? 그럼 넌 뭐라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우리는 나름의 타당한 이유를 대며 서로 몇 가지의 아이템을 말했다. 필수템이다 아니다를 놓고 나름 설전 아닌 설전을 벌이며 내놓은 아이템을 몇 가지 소개한다. 아, 물론 미드미의 특성에 맞춰진 매우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보편적이지 않은 아이템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한다. 하하.

첫 번째 육아템. [타*니 러브 모빌]

H와 나는 첫 번째 육아템으로 모빌을 꼽았다. 노래가 나오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능이 있는 모빌은 우리에게 커피 한잔의 여유를 줄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물론 모빌조차도 씨알도 안맥히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꽤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효자였다. 처음엔 눈만 껌뻑이며 바라만 보던 미드미는 점점 커가며 돌아가는 모빌의 코끼리와 원숭이를 사냥하듯 잡아채면서 신이 나 소리를 꺄르르 질러대기도 했다. 모빌을 치운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H와 나는 지금도 가끔 모빌에서 나오던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두 번째 육아템. [정수기]

최근 수돗물 사태를 보면 사실 정수기도 믿을게 못된다고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분유에서부터 이유식, 그리고 유아식에 이르기까지 정수기가 없었더라면 꽤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둘이 살 땐 물을 사다 먹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물 소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매번 버려지는 페트병을 보며 절로 한숨을 내쉬곤 했다. H는 이주에 한 번씩 물을 사러 다녀올 때마다 페트병을 차곡차곡 내려놓으며 땀을 뻘뻘 흘린 모습으로 꼭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번 주에 정수기 사자!"


세 번째 육아템. [인공지능 스피커]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둘이 살 때는 사실 TV의 위력을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중요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패드를 이용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미드미가 태어나고, 24시간을 함께 집에서 생활하다 보니 무언가 활력을 줄만한 요소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cd를 틀어주기도 하고 라디오를 듣기도 했지만 하루 이틀 지나다 보면 답답해지기는 매한가지였다. 인공지능 스피커를 처음 집에 들여온 날, H에게 이런 걸 왜 사느냐며 타박했던 나이지만 요즘은 누구보다 가장 잘 사용하는 아이템 중 하나로 그것을 꼽을 만큼 꽤나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동요도, 클래식도, 가요도 다양하게 들을 수 있고 가끔은 동화책에 나오는 동물 울음소리도 듣곤 한다.


네 번째 육아템. [탄산수]

하하, 이건 사실 육아템은 아니다. 다만 미드미의 탄생과 동시에 우리 집에 함께 자리 잡은 공기 같은 존재랄까. 육아를 할 때면 답답할 때가 많다. 엄마인 나도, 아빠인 H도 육아에 대해선 처음이라 모든 게 어렵고 생소했으며 불금 대신 불육을 하며 내 홀몸만 간수하면 됐던 자유로운 옛날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도 많았다. 가끔은 '문 앞에 두고 가주세요!! 식어도 괜찮아요!!'라는 문구를 강조하며 주문한 후라이드 치킨과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행여 미드미가 깰까봐 조용히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지만 부모가 매일 음주를 할 순 없으니.. 우리가 찾아낸 대체제는 탄산수였다. 얼음 가득 넣은 잔에 탄산수를 꼴꼴 들이붓고 오미자액을 약간 첨가하면, 크- 속이 뚫리는 시원함이 잠시나마 행복을 주었다. 더위가 시작되는 요즘, 8시 반에 미드미가 잠들고 나면 슬며시 오미자 탄산수 두 잔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그날의 수다를 시작한다. 퇴근 후 동료와 먹는 맥주 한 잔이 그립지 않을 만큼 즐거운 시간이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초보 부모인 우리는 모든 게 다 어려웠다. 자고로 육아템이란 있으면 있을수록 육아가 편한 건 맞지만 너무 짧은 시간을 사용하고, 마련하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으며,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또 크게 쓸모없어지는 물건들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는 꼭 있어야 하는 아이템이라며 강조했던 물건들이 나에게는 크게 사용되지 못한 물건들도 있고, 반면에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아이템들이 나에겐 필수가 되기도 했다. 모든 게 사용하기 나름이니.


모쪼록 좋은 육아템과 함께, 조금이나마 편한 육아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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