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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g May 30. 2019

39. 말하기

알고 보니 너, 굉장히 수다스러웠구나!

남들보다 훨씬 걷는 속도가 느렸던 미드미는 대근육 발달에 있어서 간간히 애를 태우곤 했다. 다른 친구들이 걷고 뛸 때쯤 미드미는 기기만 했고, 걷기 시작했을 때도 손을 잡고 걷는 것을 선호해서 꽤 오랜 기간 동안 집안에서든 바깥에서든 손을 꼭 잡고 다녔다. 천성적으로 겁이 많은 성격이었고, 그 성격이야 엄마와 아빠에게서 반반씩 물려받은 것이었겠지만 가끔은 좀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미드미에게도 강점이 있었으니, 말하기였다. 언제부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18개월쯤엔 문장을 말하기 시작했다. 가족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주변 승객들에게 아이가 몇 개월이냐, 언제부터 저렇게 말을 했느냐 등등의 질문을 받았고, 그때 미드미가 다른 아이들보다 말이 빠르구나..를 알았다. 첫 아이였고, 기대가 컸던 나는 그런 말들을 들으며 내심 기분이 좋았다. 마치 걷기에서 받았던 발달 스트레스를 보상받는 것 같은 뿌듯함과, 내가 세심하게 잘 키워냈다는 자신감(?) 같은 게 있었달까.


그리고 몇달 후, 미드미의 폭풍 질문과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이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건 뭔지 왜 그러는지를 물었다. 아빠는 왜 학교에 가고 몇 시에 오는 건지를 물었다. 동물원에 다녀온 날에는 사자랑 호랑이는 봤는데 사슴하고 메(양)는 못 봤다며 다시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식물원에 가서는 모든 꽃들과 돌들에게 인사를 하고 부채질을 해주는 통에 세 시간을 예상하고 출발했다. 겁 많고 소심한 미드미는 알고 보니 꽤 수다쟁이였다.

"공아 안녕? 너는 여기가 집이야?"



요즘, 미드미와의 대화 속에서 나는 내 언어습관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쓰고 있던 꽤 많은 은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부끄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헐!', '이건 대박이야', '엄마 개뿔이야!' 같은 문장들을 미드미 입을 통해 들을 때면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반면에 '엄마랑 같이 있어서 행복해', '아빠가 수련회에 가서 안 와서 마음이 슬펐어', '이거 아빠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 같은 문장들을 들을 때면 덩달아 행복해지기도 했다. 말이 가진 힘과 전파력이 얼마나 큰지 몸소 느끼고 체험하는 중이다.




며칠 전, 사람 많은 영아 부실에서 갑자기 미드미가 외쳤다. '엄마, 오늘 스피킹맥스 했어?' '엄마 아침에 넷플릭스 봤지?'


덕분에 나의 영어공부를 응원하는 사람이 백 명쯤은 더 생긴 것 같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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