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 깬 아들의 작은 목소리
일하는 엄마를 둔 6세 꼬맹이는 엄마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 진 알 수 없다.
나는 아이가 하원 할 때는 곁에 없고 등원할 때만
얼굴을 본다.
아이의 오후 네시부터 밤 여덟 시까지의 시간을
전혀 알 수 없는 샘이다.
그런 아들이 새벽에 날 불러주면 은근 뭉클하다.
고맙기도 하도 미안하기도 한 마음이 교차하는 것 같다.
속이 더부룩해 새벽에 문득 잘 일어나서 책을 읽거나
휴대전화를 보는 나에게 “ 엄마 들어와” 하고 없어진 나를 찾는 작은 목소리는,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야 라고 알려주는, 난 아직 엄마가 필요해,라고 만드는, 나를 고쳐 앉게 하는 신호 같다.
훗날 아이가 자라면 내가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올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스케줄과 친구들과의 즐거움으로 나에게 더 이상 들어오라는 신호보다 나가라는 신호를 낼 것이다. 그때 더 서운해지지 않게 지금의 시그널을 잘 받아들이고 감사해야겠다.
마음이 말랑해지는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