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에세이> 기고글, 2017년 11월호 통권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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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을 통해 결제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은행을 언제 갔는지 까마득하다. 색깔 별로 사두었던 카드 지갑도 곧 사용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실제의 돈을 만져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500원을 들고 신호등 사탕을 사먹었던 어린 날의 추억이 그들에게는 존재할까.
<빅 쇼트 Big Short>라는 영화를 봤다. 돈이 만들어낸 욕망의 탑이 흔들렸다.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돈의 환상에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가차 없이 내달렸다. 결과는 참담했다. 돈이 주는 달콤함에 나도 가끔은 허황한 상상을 하곤 한다. 그것이 돈이다. 얼마 전 친구가 비트코인 사업을 준비하는 중이며 거래소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가상화폐라는 것이 신기하고 이해도 잘 안 되고 해서 썩 믿을 만하지 않은 것 같다며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문득 ‘돈’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졌다.
우리가 흔히 돈이라고 부르는 것은 화폐라는 이름으로도 대체할 수 있다. 역사 속 화폐들은 다양한 형태와 이야기로 박제된다. 애초에 돈은 수확한 쌀로 저녁에 먹을 닭을 교환하는 형태로 시작됐을 것이다. 그러다 사람들은 더욱 견고하고 분명한 가치 기준을 찾았다. 그리고 더 이상 소를 그 해의 수확량이나 품질 등에 따라 가치가 들쑥날쑥한 쌀이 아닌 현금 100만원을 주고 사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화폐를 통해 사람들은 오늘의 소비를 내일로 미룰 수 있게되었고, 저장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으며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돈은 이런 기능적인 이야기를 넘어 과시와 권력의 상징으로 흥미를 자극한다. 오늘날에는 동전과 같은 금속화폐, 지폐와 같은 명목화폐를 주로 사용하지만, 역사적으로 황금은 가장 오랫동안 돈이자 권력의 상징으로서 추앙 받아왔다.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담아뒀던 금을 입힌 언약궤, IMF 때 나라를 살린 금반지, 영화 속 미자가 옥자를 죽음에서 구해내는 황금돼지는 모두 같은 금이다. 하지만 금은 때론 성스럽기도, 때론 탐욕의 분신처럼 허영스럽기도 해서 야누스의 두 모습을 띠곤 한다. 몇몇 황제들은 동전에 자신들의 얼굴을 새겼지만 모두 처참한 비극을 맞이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신이나 신화 또는 국가의 상징을 새겨 넣는 전통을 무시하고 자신의 권능을금화로 보여주고자 했다. 그 권능의 무자비한 폭주는 암살로 끝이 났다. 반면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얼굴을 화폐에 새겨 넣고 본인은 신의 아들로서 오랫동안 왕위를 영위했다. 금의 사라지지 않는 광채, 높은 밀도와 유연성은 다른 종류의 화폐들이 등장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금을 부와 가치의 척도로써 존재하게 한다.
동화 <오즈의 마법사 The Wizard of OZ>는 원래 <온스의 마법사 Wizard of Ounce> 즉, ‘금의 마법사’였다고 한다. 소설의 배경에는 금의 갈등과 관련된 이야기가 숨어있다. 당시 미국은 금본위제와 복본위제 채택에 대한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프랭크 바움은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를 신문에 연재하여 ‘금은 복본위제(gold and silver bimetallism)’을 지지했다. 도로시는 ‘은화’를 상징하는 ‘은색 구두’를 신고, ‘금권주의’를 의미하는 ‘노란 벽돌길’을 걸으며 ‘금권정치’를 묘사한 ‘에메랄드 시’를 향해 걸어간다. 이 여정은 당시의 정치상황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소원을 성취시켜주는 도로시의 은색 구두를 통해 은화의 가치를 얘기하면서 금은 복본위제를 대중에게 설득하려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숨어있다.
돈은 사람들로 하여금 법전을 만들게 했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게 했고, 죽음에 이르게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돈이 가진 이 다양한 능력 중에서 부의 과시, 투기에 대해서만 맹목적으로 집착한다. 돈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행복에 집중하기보다는 돈을 버는 것,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 글을 쓰며 자연스럽게 ‘나에게 돈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봤다. 부풀어오르는 시다모 향기를 맡을 수 있게 해주는 것, 오랜 친구를 만나러 로마에 갈 수 있게 해주는 것, 훗날 바질과 강아지를 키우며 살 수 있게 해주는 것. 아직은 이 정도의 돈이면 나에겐 충분하다. 그리스의 왕 미다스에게 디오니소스가 준 황금을 만들어내는 축복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돈은 다스릴 수 있는 자에게 권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김이한,김희재,송인창,양원호,유창연,정여진,황희정. 『화폐이야기』. 부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