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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아영 Jan 01. 2017

누가 '전업맘' '워킹맘'을 구분하나

5월 육아휴직했을 때 만삭의 몸으로 첫째 유치원이 끝나면 데리러갔다. 아이는 엄마가 데리러온다며 매일 신나했지만 난 늘 우울했다. 유치원 현관 앞에는 하원하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들이 한가득이었다. 두진이는 병설유치원에 다녀서 오후 1시30분이면 끝난다. 처음 하원할 때 기다리면서 ‘아니, 도대체 이 시간에 어떻게 엄마들이 이렇게 많지. 목동 집값을 버티며 외벌이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다 금수저인가’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엄마들을 하나도 모르니까 이렇게 워킹맘은 소외당하는가 싶은 생각까지 덮쳐 더 울적했다. 여름방학을 하던 날 두진이 같은 반 꼬마친구들이 “두진아 같이 놀자. 우리 집에 초대할게”라고 하자 두진이는 신나서 따라갔는데 내가 그 엄마들과 잘 몰라서 민망해졌던 순간. 엄마들이 초대해주지 않는 이상 갈 수 없는데. “두진아 어디가~”하며 집에 데려오는데 두진이는 친구 집에 가고 싶었다고 투정. 집에 왔는데 과연 내가 일하며 아이 둘을 기를 수 있는가 우울 또 우울. 나는 무슨 배짱으로 둘을 낳았는가 더 우울.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유치원 친구 엄마들과도 친해졌다. 매일 얼굴을 보고 유치원 끝나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것을 괜히 걱정한 셈. 


그리고 알고보니 다들 ‘전업맘’도 아니었다. 방학식날 두진일 초대해준다며 날 곤란하게 했던 꼬마친구 엄마도 나랑 같은 ‘육아휴직자’였고 주말 근무가 많아 평일에는 휴무가 많은 직종도 있었고 오전에만 일하는 엄마 등등 다양했다.


그때 깨달았다. 정책 설계하는 정부와 언론이 함부로 지칭한 ‘전업맘’, ‘워킹맘’은 잘못된 구분이라는 걸. 5~6시면 퇴근하는 초등학교 선생님과 8~9시(일 터지면 11~12시)에 겨우 퇴근하는 나, 밤 12시에 겨우 퇴근해 돌아오는 모 대기업 직원이 같은가. 워킹맘도 수만 가지 종류가 있다. 또 집에서 창업을 꿈꾸며 오전에만 일하는 엄마는 전업맘인가, 워킹맘인가. 아마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를 전업맘이라 부를 것이다. 소속이 없으니까.


한때 아무것도 모를 때 ‘다들 전업맘인가’ 했던 유치원 엄마들은 선생님, 간호사, 한복 디자이너, 승무원, 경찰 등 다양한 직업군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우리끼리 농담처럼 말한다. “이렇게 육아와 일이 병행하기 힘들고 결국 기댈 수 있는 친정엄마, 시엄마 없으면 ‘경단녀’된다”고. 


“우리 언니는 그러던데요? 아직 애가 다섯 살이면 겨우겨우 회사에 붙어있을 때라고. 이제 애가 초등학교 가면 떨어져나가는 사람 더 늘어난다고요. 그래서 우리 언니도 그만뒀잖아요.”


엄마들과 친해지며 깨달았다. 다들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다들 자기 일을 좋아한다.’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에(그리고 그 이후에) 태어난 내 주변 여자들은 다들 그렇게 컸다. 남자랑 똑같이 공부하고 경쟁했고, 반장선거에도 나가서 당선됐고 전교 회장도 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학 때까지는 똑같았다. 취직하면서부터 ‘성별’이 장애가 된다는 걸 깨달았지만(결국 이것도 여성 노동력을 육아 전담자라고 사회가 편하게 규정하면서 생기는 일). 그래도 일을 하며 사는 삶을 꿈꾼 것은 다들 똑같았을 것이다. 좋은 직장, 좋아하는 일... 지금은 부르기 민망한 이름이지만 한 때는 ‘꿈’이라고 불렸을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들 아이를 낳아보니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맞닥뜨렸다. (조직 생활이라는 게 힘들지만 그래도) 일을 참 좋아하는데 육아와 병행이 힘들다는 것, 게다가 이 사회는 여자에게 육아를 떠넘기는 사회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 아니 조금은 알긴 했는데 이 정도인 줄을 몰랐.....


“이제 가늘고 길게 가야죠. 다행히 친정엄마가 도와주셔서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그래도 은행 빚 생각하면 일을 놓을 수가 없어요. 그 사이 방치되는 우리 애 생각하면...”


     엄마가 복직하면 할머니와 하원해야 하는 첫째. 하원하는 길 자꾸 길에 앉아있어서 데려오기 힘들....;;


‘전업맘’, ‘워킹맘’, ‘경단녀’는 같은 이름이다. 여자들도 좋아하는 일하며 살 수 있다고 제도 교육은 가르쳤지만 실제 사회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달라지는 이름일 뿐이다. 친정엄마나 시엄마가 어릴 때 애를 돌봐줄 수 있으면 ‘워킹맘’,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전업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다 버티다 떨어져 나가버리면 ‘경단녀’가 되는 것인데 감히 누가 우리를 이렇게 구분하나.


문제는 그 사이 아이들이 방치된다는 것이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야 할 우리 사회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못 받고 큰다는 것. 육아는 양보다 질이라고 모든 육아서가 말하지만 그것도 최소한의 양이 담보될 때 가능한 말이다. 최소한 아이가 혼자 먹고 혼자 자고 혼자 길거리를 걸어다닐 수 있을 때까지 ‘어른’이 돌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할머니’가 아니라 ‘부모’여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왜 우리 사회는 체력이 충분한 젊은 부모들이 아이를 돌보게 하지 않고 늙은 조부모들에게 떠넘기는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동동거리는 엄마들을 ‘맘충’이라고 싸잡아 욕하는가. 아 쓰다보니 격해진다. 


또 꿈은커녕 경제적 이유로 일하는 수많은 엄마들에게도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은 누가 돌보고 있을까. 슬프다.


사회가 부모에게 조금만 시간을 주면 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금방 큰다. 돌 때까지는 엄마, 두돌 때까지는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게 해주고 그 이후 몇 년간은 유연근무제를 늘리면 된다. 회사에서 일도 안 하면서 주구장창 앉아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할 텐데. 세계 최장을 자랑하는 노동 시간을 줄이지 않는 한 이 육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요즘 애들은 초등학교 3~4학년만 돼도 엄마아빠를 찾지 않는단다.


어린이집 늘리고 맞춤형 보육한다고? 정말 코웃음이 난다. 정책 설계를 50대 아저씨들에게 맡기는 이 사회는 답이 없다. 예산을 그렇게 쓰고도 이렇게밖에 못하는 건 정말 중요한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고 건드릴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남녀 다 할 수 있게 해주고 육아휴직급여를 많이 줘야 한다. 육아휴직을 해도 경제적 손실을 많이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회사 후배들은 물어본다. “선배 남편도 육아휴직을 하면 안돼요?” 내 대답은 똑같다. “빚 갚아야 해서 안 돼.” 그리고 헐값에 친정엄마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불효녀가 되고 만다. 남녀가 육아휴직을 동등하게 하면 여성 취업자를 차별할 이유도 사라진다. 이 사회는 모든 걸 여성 돌봄 노동에 의지하고 그걸 공짜로 퉁치려 한다.


육아휴직급여를 신청하려고 고용센터에 갔을 때였다. 남성 육아휴직을 독려하는 전단을 만들어 놓았길래 살펴봤다. 상사한테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조심스럽게 말 꺼내는 방법부터 육아휴직 때 자기계발(일과 멀어지지 않는 법?)하는 법까지 써놨던데 그걸 보다가 집어던질 뻔했다. 여자 육아휴직도 하기 힘들고 심지어 한다 해도 눈치 주는 사회에서 남성 육아휴직? 제발 육아휴직 안 시켜주는 회사에 벌금이나 수천만원씩 때려라. 그럼 육아휴직을 못하게 할 수 없을 텐데.


아 유치원 엄마들 이야기하다가 길어졌다. 유치원 친구 엄마 중에 아기 낳기 전에 했던 일을 놓지 않으려고 오전에 열심히 한복 디자인을 해서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엄마가 있다. 블로그에 올라온 한복 디자인을 보고 너무 예뻐서 반했다. 그다음엔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최선을 다해 디자인하고 바느질하는지 설명하는 표정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오후 1시30분에 아이 둘을 데리러 오니까 ‘전업주부’구나 생각하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말하는 그 표정은 나와 똑같을 것이다. 


‘일을 준비하는 전업맘’, ‘친정엄마(시엄마)에게 미안해하며 종종거리며 회사를 다니는 워킹맘’, ‘어쩔수 없이 그만뒀지만 애들 크기만 하면 다시 일하고 말거야 되뇌이는 경단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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