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시초(일 수도 있음)
두 번째 챕터는 제나라의 안영 (안자)
관중 이후 재상.
철기의 발견 및 농업생산력 향상으로
신진 세력들이 성장해 사회에 진출하는 가운데
기존의 통치체제 및 사회질서를 합리적으로 지켜내기 위해 많이 노력한 사람이라고 함.
그 합리적인 사회유지를 위해 그가 제시한 아이디어는,
인본주의.
‘보수’라는 이념을 단순하게 말하면,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지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 구성원들이 계층이나 신분, 경제력 등의 격차와 관계없이,
각자 자기 자리에서 맡은 바에 충실하게 임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안정된 사회를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이렇게 좋은 ‘보수’가 왜(가끔?) 욕을 먹지.
글쎄, 그 얘기를 지금부터 해보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가진 것이 좀 있는 사람들,
즉 ‘상류층’들은 보수적일 가능성이 높다.
(상류층 = 기득권자, 엘리트, 부자, 뭐 등등 이런 뜻으로 보면 될 듯)
당연히, 자기 재산이든 지위든 유지되며 사는 게 좋으니까.
그리고 당연히, 자신이 노력해 쌓아놓은 것이 사라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사람의 능력은 모두 제각각인데,
어떤 사람은 능력이 좋든 운이 좋든 해서 돈과 지위를 얻게 되고,
반대인 사람은 돈과 지위를 얻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계층(상류층과 아닌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아무리 뭔 평등이니 뭐니 해도, 눈에 보이는 격차(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당연한 이치다.
다만 이러한 격차가 심해지면, 계층 간의 긴장감이 형성되고, 그 긴장감이 극에 달하면 사회가 불안정해질 수 있기 때문에, 지위를 가진 상류층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위와 힘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 유명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것이 있어야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해외의 경우, 특히 소위 말하는 선진국의 경우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예를 찾아보기 쉬운데.
영국 왕족의 왕위 계승자들이 전쟁에 참전하는 이야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하면 맨날 따라다니는 이야기라 아주 익숙한데, 그런 것들이 쇼든 아니든 겁나 감동적인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예가 있을까?
여기서부터 슬슬 머리가 아픈데...
근래 우리나라의 상류층들은 어떻게 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주고 있는가?
최근 벌어진 한진그룹 ‘노블’들의 행태를 굳이 예시로 들지 않아도 대략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 뭐냐, 그 노블레스 오블리주인가 하는 그런 걸 보는 건 쉽지 않다는 것.
(없다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에서 잘 안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고, 진짜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 독립운동사에서도 그렇고 찾아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례가 많다. 찾기가 쉽지 않을 뿐)
일단 미디어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니라 노블레스 무법자 수준이다.
어찌 보면 이게 앞서 말한 ‘보수주의’가 억울하게 욕을 먹는 이유일 수도 있다.
자신이 가진 권위와 힘을 유지시키려면 밑에 있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는 다독여줘야 좀 마음대로 해도 참고 넘어가는 건데, 선을 넘으면 좀...
기득권 VS 비기득권
그래도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기득권'은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권위든, 권력이든 타인에게 어떤 형태의 영향력을 갖고자 한다.
때문에 어느 지역, 어느 사회든 기득권과 비기득권은 존재한다.
그저 권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쁘다고 하는 것은 진짜 개답답(개노답)한 생각이다.
기득권자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결국 기득권을 얻기 위해 이런저런 투쟁을 하는 것 아닌가.
다만, 일부 기득권자들은 권위에 책임이 함께 따른다는 것을 많이들 까먹는 것 같다.
(반대로 비기득권자는 권위에 따르는 책임을 아예 모를 수도 있다. 안 가져봤으니까)
여민동락 & 측은지심
여하튼 이러한 가운데, 안영은 상류층(엘리트)의 책임을 강조한 사람이다.
안영은 제나라 당시의 어른으로 추앙받아, 어느 누구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고 한다. 전편에 이야기한 사회의 ‘심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보수 이념의 시조로 보이는 그는,
왕을 포함한 권력자들에게 ’ 여민동락’과 ’ 측은지심’을 강조했다고 한다.
백성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약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밑바탕이 된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결국 백성을 단순히 부국강병의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닌,
목적으로 보았다는 점이 챕터 1에서 나온 관중과의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책리뷰]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1 - 관중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