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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기자의 긁적끄적 Mar 17. 2024

국가공인 MZ 자격증 기초반 강의록(녹취)

당신도 될 수 있다, MZ세대!


(2023년 어느 날, 'OOO MZ학원' 기초반)


‘MZ 자격증 전문학원’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요즘 ‘MZ세대’가 엄청난 인기죠. 대통령부터 장관, 실세 국회의원들까지 ‘MZ세대’를 찾고 있습니다. 특히 노동 분야에서는 완전히 대세입니다. TV를 틀면 ‘노동부 장관, MZ 노동자들과 간담회’ ‘대통령, MZ 노동자 의견 청취 지시’ 같은 뉴스가 쏟아집니다.

 

아쉽게도 이 ‘MZ세대’라는 훈장은 나이가 젊다고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MZ세대’란 엄격한 시험을 통과하고 정부의 인증을 받은 청년들에게만 수여되는 ‘국가공인 자격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MZ 자격증 ‘1타 강사’인 제 강의만 잘 따라오시면 당신도 ‘MZ세대’가 될 수 있습니다.

     

첫째, 먼저 입시 성적 상위 10% 정도의 서울시내 명문대학을 나와야 합니다. 매년 치솟는 사교육비는 무시하세요. 지난해 월 소득 200만원대 가구와 800만원대 이상 가구의 사교육비 격차가 44만3000원으로 2019년 36만9000원보다 더 벌어지는 등 양극화도 심각하지만, 알 바인가요? 수도권 4년제 대학 신입생 가구소득이 계속 상승 중이라는 것도 신경쓰지 마세요. ‘노오력’ 하면 다 되니까요. 여기서 팁! 이런 구조에 신경쓰기보다는 ‘내 노력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다’ ‘능력에 따른 차별은 옳다’ 같은 문장들을 외워가시면 가산점이 나오니 잊지 마세요.

ⓒGettyimage


둘째, 대기업 또는 공기업의 사무직·정규직으로 취업하세요.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를 보면 청년의 33.4%가 졸업 후 첫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63.9%는 첫 직장 규모가 ‘30인 미만’입니다. 첫 회사 규모가 500인 이상 기업인 청년은 행운의 ‘7.7%’뿐! 바늘구멍 같지만 조금 전 말씀드린 ‘학력’이 여기서 빛을 발하죠. 물론 MZ 자격증 면접에서는 100% 당신이 노력한 결과라고, 즉 ‘공정’하다고 말해야 가산점을 챙길 수 있습니다. 앗, 벌써부터 이번 정부가 당신을 애타게 찾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요! 다만 현장직·생산직은 정부가 좋아하지 않으니 꼭 사무직이어야 합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마세요! 특히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같은 ‘불순한’ 단체와 어울리면 무조건 ‘MZ세대’에서 탈락입니다. 사장님이 아무리 괴롭혀도 파업이나 쟁의 같은 단어는 상상조차 하지 마세요. 목소리를 너무 크게 내지 마시고, 윗분들이 곤란해하지 않는 것만 요구하세요. 최근에 3단계까지 그럭저럭 잘 마친 어떤 청년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뒤로 정부와의 만남이 크게 줄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충실히 따라오신다면, 미리 축하합니다! 당신도 ‘MZ세대’ 노동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MZ 자격증’ 하나로 당신은 한국의 모든 청년세대를 대표한다는 명예와 자부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대통령과 장관, 유명인사들이 매일 당신들과 ‘치맥 간담회’를 열기 위해 줄을 설 것입니다!


질문 있으신가요? 아 네, 거기 앉으신 분. 이 조건에 다 해당되는 청년이 얼마나 되겠냐고요? 정부가 말하는 ‘MZ세대 노동자’는 저임금과 과로에 시달리는 수많은 청년들을 대표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요? 어찌 그런 불순한… 당신 ‘순수한 청년 노동자’가 아니군요! 안 되겠어요. 누가 경찰 좀 불러 주세요!


이 글은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노보 <공공노동자> 12호(2023.07)에도 실렸습니다.

(메인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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