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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날로 간다

윤석열 탄핵에 부쳐

4월 초인데도 이상하게 추웠다. 어디선가 눈이 내린다고 했고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다시 꺼내 읽었다. 두 작품 모두 눈이 나온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눈은 여리고 아픈 것, 천천히 내려오다 속눈썹 끝에 맺혀 눈물이 되는 무엇이다. <순이삼촌>에서 눈은 순이삼촌이 누운 자리에만 쌓이지 않았던 것, 고통받은 한 인간을 땅이 기억하는 방식이다.


12월3일, 그날도 추웠고 눈이 내렸다. 윤석열이 계엄령을 내렸다. 계엄군이 국회에 들이닥쳤다. 한가하게 게임하고 있던 나는 소식을 듣고 얼빠진 채로, 쓸 수 있는 기사를 밤새 계속 썼다. 날이 밝으면 회사로 달려가야 하나 출입처인 민주노총으로 가서 침탈을 기록해야 하나 고민했다. 국회가 계엄을 해제했다. 몇시간 눈 붙이고 바로 출입처로 나갔다. 그 겨울 내내 눈이 많이 내렸다.


딱 4달. 유독 이 땅에만 아프게 돌아오는 4월. 4.3을 다룬 두 책을 읽으며 동백을 떠올렸다. 아내의 고향 제주의 꽃은 동백이다. 아버지의 고향 남도에 흐드러지게 피는 꽃도 동백이다. 피맺힌 곳마다 피는 꽃. 총칼의 반대편에 너무 선명한 채도로 피어 있던 꽃. 오늘 나는 가족과 남도에 간다.


한 법학자의 글을 읽었다. ‘국헌문란목적’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소개하면서, “죽은 5.18 희생자들이 남긴 이 판결 법리가 윤석열을 잡는다“고 그는 썼다. 4.3과 5.18을 쓴 한강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물었다. 사람이 죽은 자리마다, 슬프고 억울하게 누운 곳마다 피었던 동백꽃. 그 꽃을 짓밟은 자. 오늘 그를 심판했다. 날이 풀린다. 점심시간 스쳐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묘하게 밝다. 이 결정 하나로 좋은 세상이 올 리 없다. 다만 가야 하는 것이겠지, 우리는.


앞서서 나갔다. 산 자가 따랐다. 우리는 새날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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