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왕이면 재밌게 걸어가기까지.
-항상 결정권을 내리던 내가 철부지로 다시 시작한 건에 대하여
스타트업 경력을 바탕으로 일본계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을 때, 분명 경력직을 뽑는다고 하여 입사했지만, 막상 입사 첫날 스타트업은 경력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신입사원의 연봉을 나에게 제시했다. 그리고 1년이라는 수습기간을 거쳐 만약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약해지. 하지만 백수생활이 너무나도 무기력했던 나는 한마디 항의도 하지 못한채 싸인을 하게 되었다.
매일 정장을 입고 출근한 첫 직장에서 특히 일본회사 특유의 위계질서 분위기는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굉장히 무거운 분위기에 업무 자체가 처음이라 하나하나 혼나가며 배워나갔다. 항상 말많고 행동하기 좋아했던 내게, 주위의 눈치를 보는 회사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일본인인 부장은 나보다 7년차 높은 선배와 나를 비교하여 능력을 나무라기 시작했고, 나는 신입사원 월급을 받으며 경력직의 능력을 수행하지 못하는 이상한 위치로 몰아갔다. 집에서 왕복 4시간 30분이 걸리는 출퇴근 시간과 상사의 가스라이팅에 나는 점점 우울해하고 지쳐갔다. 너무 힘든날은 가족들에게 힘든 감정을 괜스레 분출하기도 하고, 바로 자괴감이 드는 하루가 반복 되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적응하고 조금씩 인정받고 업무를 늘려가게 되었다. 마감서류만 만들던 시간에서, 각 매장 판매사원을 위한 교육자료를 만들고 조금씩 지표가 오르는 걸 보며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수습기간을 마치고 정사원으로서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인정받았다 생각했는데, 결국 편한 부품이었던 것에 대하여
정사원이 되고 딱 한달. 코로나가 발생하게 되었다. 난생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모두가 대응하지 못했고, 특히 오프라인 업무가 많았던 우리팀의 업무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전화 상담원과 다름 없는 업무가 계속되던 나날.
전국 화상회의를 준비해보라는 내용을 전달받게 되었고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다행히 잘 마무리하고 사장님을 포함한 업무 보고 미팅을 들어가게되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갑자기 팀 이동을 발령받았다.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고, 왜 내가 이동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된 건, 회사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고 회사는 그 일을 최소화 하기 위해 인사이동을 진행했고, 그 과정중에 너무나 막연하게 인원을 채우기 위한 용도로 나를 그 사람 자리에 대신 배치하였다.
내가 해왔던 업무와 능력과 전혀 상관없이.
그냥 말 잘 듣는 사람이라서
누가 뭐라해도 아무말도 안하고 시키는대로 하니까
-나의 한계가 아닌 새로운 가능성을 본 것에 대하여
그러던 와중에 다른 일본계 기업의 공고를 보게 되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와는 전혀다른, 좀 더 크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회사였다.
여기서 나를 뽑아 줄까?
내가 어디까지 몰라갈 수 있을까?
1차 면접을 거쳐
떨어질 것 같았던 2차 영어면접 피티,
그리고 최종 사장님 영어면접.
막상 최종까지 올라가니
욕심도 생겼고,
나름 자신있었고,
나쁘지 않게 면접을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탈락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실패가 오히려 나의 포트폴리오 제대로 정리할 수 있게 하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오히려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꼭 이곳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구나.
마음을 먹으면 더 좋은 곳으로 언제든지 갈 수 있구나.
지금 내가 더 노력한다면 그 이상의 다른 곳으로도 갈 수 있겠구나하는
새로운 희망.
떨어졌지만,
오히려 최종 면접까지 올라갈때 들었던 질문들을 차근차근 곱씹으면서
내가 나의 가치를 더 인정받기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게 무엇일지 생각했다.
누군가가 시킨 일이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더라도 내가 나의 가치를 더 올리기 위해서 오히려 회사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가치를 찾아 움직이기로 했다.
-그리고 곽용신은 하는 일이 다시 즐거워졌다.
회사 내부에 콘텐츠가 필요한 업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제품을 어떻게 찍고 전달해야 고객들이 더 좋아할지,
고객들이 어떤 리뷰를 보고 제품을 구입하고자 하는지,
그런 부분들을 최소한의 예산으로 최대의 효과를 구현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직접 카메라를 들고 다양한 광고회사와 인플루엔서들을 직접 연락하고 만나면서 보다 많은 콘텐츠를, 정확히는 효과적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내부적으로 “안돼”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다시 한 번 나의 방향성을 검증해보고 이게 정말 의미가 없어서 안되는 것인지,
아니면 해보지 않아서, 비용이 많이 들어서 안되는 것인지 확인해보고
내부적으로 프로세스를 최대한 이해하고 활용해서 최대한 가능한 방향으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사내에서 비공식 사진사이자, 콘텐츠 제작하는 담당자로 이미지가 생기게 되었고,
다른 의미로는 다른팀들이 하는 큰 외부 행사 지원등에도 많이 나가게 되었다.
단순히 한 팀의 담당자로서는 할 수 없었던 일들도, 내부의 다양한 도움을 통해 더 많은 경험과 포트폴리오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지난번 떨어진 회사의 공고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합격통보를 받게 되었다.
-퇴사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끝까지 그리고 지금도 열심히 하는 나
스타트업을 마무리 하면서, 인연이 끊어진다는 것, 마지막도 잘 정리해야한다는 걸 깨달은 나는 퇴사 발표가 나는 그 오전까지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열심히 움직이며 근무하고 있었다.
곽용신의 퇴사 발표
모두가 웅성거렸다.
그 전의 퇴사는 어느정도 알고 있는 분위기, 혹은 그 사람의 태도가 보였다면
나는 나 스스로가 매 순간 열심히 즐겁게 일했다는 것에 또 다시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 즐거웠다.
조례가 끝나고 왜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 안 좋은일 있는거냐고 다들 다가와 걱정해주었다.
정말 좋아하는 분야로 이직하는 걸 알았을때, 다들 아쉽지만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이직 후 가장 놀랐던 사실은, 나는 아직도 부족했고 배울점이 더 많이 남아있었다는 점이다. 이제 이직한지 2년이 조금 안되는 시간, 나는 계속 성장하고 있고 계속해서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세상을 잘 몰랐고 겁이 없던 20대의 나는 막연히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이 최고인 줄 알고, 그걸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현실을 깨닫는데 30살이 되었다.
그리고 30대의 절반이라는 시간을 통해 내가 일을 통해 얼마나 성장하고 즐거울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30대는 아직 절반이나 남았다.
나는 더 성장하고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사람이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