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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웅 Apr 13. 2022

최근 몇달간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정치의 생활화를 시작하자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46%로 유권자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총선과 대선뿐 아니라 지방선거를 합해 역대 전국단위 선거를 통틀어 사상 최저의 투표율이었다. 총선 역사상 처음으로 투표율이 30%대로 추락한 선거구도 속출해, 모두 20개 선거구가 40% 선을 넘어서지 못했다. 대표성 시비는 물론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가장 많이 들리는 해석은 '도대체 찍어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표란에 '기권'이라는 항목을 아예 처음부터 넣어주면 투표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올 정도다.


 정치 혐오증이 한층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요 정당의 공천 과정이 철저히 정치 엘리트들의 독과점으로 진행돼 국민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고, 그때문에 유권자의 소외감이 커져 정치 무관심을 불렀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쟁점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안정'과 '견제'라는 추상적인 표현만 들먹였을 뿐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한다라는 말이 하나도 없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것은 통합민주당 등 야당세력이 제 구실을 거의 하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정책이 없고, 전략이 없고, 리더십이 없고 무엇보다 반성이 없는 4무 정당이라는 비판이 설득력있게 들리기도 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여야 어디에 갖다 붙여도 꽤나 어울리는 말이기도 하다. 문제는 여야가 모두 그래서 현상이 유지되면 여당한테는 아주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설명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이 답들이 모두 '최근 몇달간 무엇을 잘못했나?'에 대한 진술이라는 것이다. 묘하게도 이런 접근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국제 경기에 지고 나면 나오는 지적들과 꽤 비슷하게 들린다. 선수를 잘못 뽑아서, 훈련 기간이 짧아서, 감독이 융통성없이 고집을 부려서, 쓰리 백이라는 낡은 전술 탓에 또는 선수들의 포 백 소화능력이 떨어져서, 고질적인 해결능력 부족으로…

이 질문과 답들의 공통전제는 이런 문제들이 모두 최근 몇 달간에 생겼고 이런저런 조처들로 해결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문제들이 모두 최근 몇 달간의 잘못에서 오는 것일까?


  축구계의 교훈이 참고가 될지도 모른다. 축구계가 대개 정답으로 꼽는 것들이 있다. '즐기면서 축구를 하게 해야 한다'라는 것이 그것이다. 유럽의 축구는 유소년 클럽을 양성하는데서 시작한다. 학교 수업을 정상적으로 다 받고, 남는 시간에 동네의 유소년 클럽에 들어가 즐겁게 축구를 한다. 당연히 어릴 적부터 합숙까지 해가며 이기는 방법만 죽으라고 배우는게 아니라, 패스, 드리블, 슛의 기본기를 착실히 다지게 된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런데도 막상 성인이 되고 나면, 합숙까지 해가며 축구만 해온 한국 축구와, 즐기며 쉬엄쉬엄 공을 찬 유럽 축구가 하늘과 땅 차이가 나버리고 만다.


 유소년 부분에 있어서 축구와 정치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희한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은 박노자 교수의 지적이다. "한국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교사와 함께 그룹으로 서로 토론할 때, 자신들의 독자적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참석자들을 설득하기가 어렵고, 반론을 받았을 때 주장을 펼쳐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토론 능력, 독자적 논리력을 개발시키자면 기존의 권위가 부정될 가능성을 허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한국 청소년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부정되는 것이다. 유럽의 많은 고등학교에서는 물론 중학교에서까지도 학생회 대표자들이 학교 운영위원회 회의에 교사·학부모 대표자들과 함께 참석해 학교 운영과 관련된 제반 사항을 자유롭게 토론하고, 교사·교장과도 설전을 벌이면서 자신들의 토론 능력을 적극적으로 키워 나간다. 곧, 교육 환경은 제도화된 권위 부정, 제도화된 '반란'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이를 장려하기까지 한다."


  유소년 축구가 필요하듯 정치의 생활화도 필요하다. 이것은 적어도 10년은 걸릴 일이다. 유소년부터 시작하자. 정치 무관심을 없애고, 진정한 선진화를 원한다면 청소년도 학교와 나아가서 사회·정치의 공론의 장에서 동등한 주체가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노력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축구 선진화가 '즐기는 축구', '생활 축구'에서 시작한다면 정치라고 무에가 다르겠는가. 박 교수의 말처럼 고등학생이 교장에게 필요할 때 "당신은 이 점이 틀렸다"라고 주저 없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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