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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Designeer Aug 10. 2021

게임에서 인생을 배워요

[신문연재]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2021년 8월호-인생단상#15

작년의 일입니다. 딸아이가 한밤중에 아빠와 주사위 게임을 하다가 자신이 졌다고 30분을 울었지요. 주사위 게임은 말 그대로 '운'입니다. 1에서부터 6까지의 숫자 중에서 어떤 숫자가 나올지는 정확히 확률에 따라 진행되며, 나의 의도와 목표와 열정과는 완전히 무관하게 결정된다는 걸 어른들은 이해하지만, 아이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게임을 하는 내내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는 아이를 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주사위 게임은 확률 게임인데 어떻게 져 줘야 할까? 이제 지는 것도 배워야 할 나이 아닌가? 패배를 인정하는 능력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모노폴리’라는 부동산 보드게임을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일곱 살이니 작년보다는 주사위 게임에 대해 좀 더 잘 받아들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규칙을 알려 주었습니다. 의외로 땅을 사고 임대료를 지불하는 등 경제관념이 들어있는 게임의 규칙을 잘 이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돈 계산은 엄마, 아빠의 몫이 되었지만요. 하지만 그 어떤 게임보다 재미있다고 극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주사위의 확률 싸움뿐만 아니라 보드 게임 곳곳에 널려있는 ‘운의 지뢰밭’을 어떻게 소화해 내느냐 였습니다. 제가 주사위를 던지는 족족 ‘감옥으로 가시오’에 걸리고, 딸아이는 제 땅에 걸려 계속 돈을 지불해야만 했지요. 남편은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좋은 땅을 몽땅 사들여 건물을 짓고 엄청난 임대료를 받아냈습니다. 이기고 싶었지만 생각대로 잘 안되었던 아이는 아빠가 돈을 쓸어 모으니 씩씩대다가 점점 울먹였습니다. 작년의 악몽이 떠오르기 시작하더군요.


‘게임에서 대부분의 요소가 운으로 결정되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까?’


작년과 똑같은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게임의 모든 결정은 겉으로는 참여자 선택에 좌우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숫자가 얼마 나올지, 지령은 어떤 것이 나올지 등 대부분 ‘운’이 선행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운으로 결정되는 게임의 판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할까요? 인생은 게임과 달리 ‘리셋’ 버튼이 없습니다. 문득 몇 달 전에 읽은 <운의 힘> 책이 생각이 났습니다. 책 내용 중 ‘쓸데없는 일들에 힘쓰지 말아야 한다. 맥 빠지는 상황을 자꾸 만들면 망조가 든다. 자신의 에너지를 응집시키고 힘을 비축하는 충분한 시간을 가진 후에 그 힘을 온전한 곳에 분명하게 써야 한다.’라는 글귀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종종 잘 안 풀리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쓸데없이 안 되는 일들에 힘을 뺀 건 아닌지 생각이 듭니다. ‘운이 좋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믿는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다. 저절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은 운이 좋다는 절대적인 긍정적인 마인드를 품게 되었다는 데에서 참 의미가 있다.’ 이 글귀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게임 도중 결과가 안 좋을 때마다 운이 없다는 둥 이번엔 망했다는 둥 부정어를 남발했던 제 자신을 떠올렸습니다. 다음번에는 생각대로 되지 않아 운이 좋지 않아 보일 때에도, 운이 좋다고 받아들이는 역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는 어떤 반응을 하게 될까요? 무척 궁금해집니다.


게임은 한 번 지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한 판의 게임과 같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운의 결과를 넘어서기 위해, 운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우리는 매일 전투적으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요? 아이와 함께 했기 때문에 게임과 우리 삶에 녹아있는 ‘운’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본 글은 지역신문 <행복한 동네문화이야기> 2021년 8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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