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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5고개 라이딩

서울 경기 라이딩 코스 '원픽'


동부 5고개


'쫌 탄다~' 하는 로드바이크 라이더들 사이에 알려진 유명세 높은 '업힐 묶음 코스'다. 경기도 양평군과 가평군에 걸쳐 다섯 고개를 넘는다 하여 "5고개", 경기도 동편에 위치했다 해서 "동부", 그래서 "동부 5고개"인듯싶다.


그 다섯 고개는 벗고개(양평 청계산), 서후 고개(옥산 자락인 듯), 명달리의 이름 모를 고개(화서로에 위치해있다), 다락재(어느 산 소속인지는 모호^^), 마지막으로 선어치 고개(유명산)다.


그 시작과 끝은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벗고개로 이어지는 경의 중앙선 양수역과 유명산 자락의 아신역이 기차를 이용하는 라이더들 관점에서 볼 땐, 동부 5고개 코스의 기점일 수 있다. 이 두 역을 기점으로 따져보면 동부 5고개 총거리는 54킬로미터 정도다. 획고는 약 1,200-1,300미터 정도.


남양주의 시그니처 자전거 교량. 양수철교 옆 보행교. 토욜 아침 양수역으로 가는 중 ^^


주요 도시에 거주하는 라이더들 마다 최애 코스가 있기 마련일 텐데, 내게도 늘상 가는 루틴 (예전엔 남북, 지금은 하여말) 있고,  '원픽'이 있다. 그 원픽 코스는 바로 동부 5고개. 두 번밖엔 안 가봤지만. ㅋ

친구들은 동부 5고개는 가을에 타야 한단다. 그도 그럴 것이 꽤 단련된 체력과 근력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긴 겨울잠을 잔 두 다리와 불어난 체중으로는 무리란 얘기.


양수역 라이더들의 성지로 알려진 봄카페. 양수역 앞 조그만 가건물 가페여서 자리 얻기가 쉽진 않다.


너무 공감이 가는 얘기지만, 딱 일주일 전이다.

친한 후배가, 그것도 최소 1년 동안은 '일'에 심취한 나머지 근손실은 필연일 듯한 그 불쌍한 후배가, "선배님, 동부 5고개가 그렇게 좋다면서요. 같이 가요!!!  저 이제 자전거 열심히 타려고요."


ㅠㅠ


이 친구를 살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이른 봄날 아침, 다섯 명이 양수역에 모였다.


벗고개 전 목왕로.


제1고개 벗고개


"선배님, 언제부터 시작이에요?"


요즘은 사라졌지만, 라이딩을 시작하고 처음 몇 년 동안은 특이한 심리적 현상을 겪었다. 처음 접하는 (유명 고개) 업힐 앞에서는 여지없이 가슴이 조여 오는...  일종의 공포감이나 긴장감이겠지만, 가슴에서 명치를 지나 아랫배까지 나비가 한 마리 날갯짓을 하는 듯한 요상하기 이를 데가 없는 그런 느낌인데, 느낌이야 그러려니 하면 되지만, 문제는 이것 때문에 다리 근육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게 함정이다.


후배건 선배건 친구건, 업힐 라이딩을 같이 하면 꼭 이렇게, 어디부터가 시작이냐고 묻는 한 명이 꼭 있다.


"곧 알게 돼~ (will know it soon enough.)"

'불쌍한 넘 ㅠㅠ '


벗고개 정상, 벗고개 터널. 끌바 안 했으면 됐지머 ㅎ


벗고개는 5고개 중 체감 난이도 1등 고개다. 양수역에서 시작한 후 웜업이 덜 된 탓이기도 하고, 고각은 아니지만 한눈에 보이는 쭉 뻗은 업힐이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주기 때문일 거다. 이럴 땐 고개 푹 숙이고 앞바퀴만 보는 게 상책이다.



벗고개 내리막 시작 지점. 동부 5고개를 처음 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벗고개를 힘들어한다.
벗고개 터널. 라이더 여러분!!! 버리지 맙시다. 고갯길에 버려진 젤/단백질 바/플라스틱 물통 쓰레기 너무 많아요 ㅠㅠ  (사진 속 이분들이 그랬단 얘기는 아닙니다. ㅎ)


제2고개 서후 고개


벗고개(1.4킬로미터)보다는 좀 더 긴 서후 고개 업힐(1.9킬로미터).

한국의 고갯길답게, 고개 마지막 500미터 정도가 다소 고각(12-13%)이긴 하지만 이제 두 번째 고갯길인데 약한 모습 보여줄 순 없지 ㅎ


벗고개는 한눈에 쭉 뻗은 당당한 모습에 기가 죽는다지만, 그래도 서후 고개는 모습을 조금 감춰놓은 수줍음이 있다. 벗고개를 넘고 나서 어느 정도 엔진 시동도 된 데다 아직은 초반이니 체력이 남아있어서인지 다들 웃음끼를 잃지 않는다. 동부 5고개가 가을의 코스라고는 하지만 오늘 서후 고개를 와보니 라이더들로 가득하다. 물론, 서후 고개까지는 동부 5고개와 동부 3고개가 공유하는 구간이어서 이들 모두가 5고개로 향하진 않을 것이다.

  

서후 고개. 좁고 터널로 이루어진 벗고개와는 달리 넉넉하다. 차량도 뜸하고 도로도 넓은 데다 사방이 뚫려있어 상쾌함도 있다.


서후 고개를 지나 내리막을 한 참 달려 내려가면 곧 삼거리를 만난다. 'T' 자형인데, 그 중앙에 "농부네 쉼터" 편의점이 있다. 편의점이긴 하지만, 가게 앞 공터에 쉴 수 있는 공간이 널찍해서 이곳에선 동부 5고개와 3고개를 찾는 라이더 모두가 쉬어간다. 옛날엔 농부님들의 쉼 터였거나, 이곳 사장님께서 농부셨거나... 암튼 사장님께서 좋은 자리에 쉼터를 마련해주신 것 만큼은 분명한 듯.


농부의 쉼터 앞 동부 3고개로 향하는 길 조형물. 동부 5고개는 반대편으로~


"농부의 쉼터"엔 초보 라이더는 없는 듯하다. 나 역시도 로드 4년 차가 지난 다음에야 선배라이더들 틈에 끼어 올 수 있었으니 동부 3, 5고개는 어느 정도 숙련로드 라이딩을 위한 코스인 듯. 물론, 많진 않지만 MTB도 더러 만날 수 있다.


쉼터를 나서자마자 3고개와 5고개 코스가 하나의 길을 두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나뉜다. 농부의 쉼터를 등지고 오른쪽은 5고개 라이더, 왼쪽(무지갯빛 조형물 아래를 지난다.)은 3고개 코스 라이더들을 위한 길이다. 참고로, 당연한 거 아닌가 싶겠지만 3고개는 5고개 보다는 짧고 쉽다.


그래서인지, 동부 5고개의 진정한 시작점은 이곳 쉼터일 것 같기도 하다. 포토존으로 유명한 명달리 헤어핀이 다음 코스이기도 하고, 우르르 몰려든 라이더들이 모여들었다가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라이딩을 위해 흩어지는 극적인 씬(Scene)도 연출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명달리 헤어핀. 배우가 훌륭한 것도 있겠지만, 내가 찍었지만 쫌 잘 찍은 듯 ㅎㅎ


제3고개 명달리(명달고개)


명달리 화서로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업힐(2.5킬로미터, 경사도 6.8%)이다. 그리고는 고개 정상에 다다를 즈음, 포토존으로 유명한 명달리 헤어핀을 만난다. 모두가 쉬어가는 타이밍이다.  라이딩 인생 컷을 남겨보려면 지나치지 말고 시도해볼 만한 곳이다.

명달리 헤어핀은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이 명달리의 녹음을 가운데 낀 채, 아스팔트 길과 어루어지는 그런 씬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면서,

멋지다.


동부 5고개에 대하여 기억에 남겨진 두 개의 강열한 이미지 중, 그 첫 번째이기도 하다.




제4고개 다락재


국토종주에서 만나게 되는 "다람재"와 비슷한 어휘의 뉘앙스 때문에 내겐 특별하다. 하지만, 동부 5고개 중에선 고개 정상이라기엔 모호한 지점이기도 한데, 또 한편으로는 아까 그 '불쌍한 후배'가 가장 좋아했던 구간이기도 하다. "왜 좋으냐"고 물으니, 숲 속의 업힐로 유명한 "호명산"이 떠오른단다.


아직 정신줄 부여잡고 있는걸 보니, 큰 걱정은 덜었다. ^^


정말이다. 꼬불꼬불한 깊은 숲길의 특징을 잘 가지고 있으면서도 경사는 험하지도 평지도 아닌, 피톤치트향 가득한 라이딩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이곳 "다락재로"이다.  


가슴 아프지만, "노문 삼거리"에선 우회전!!!  

팩 라이딩에서 한 두 명은 뒤에 처지게 마련인데, 명달리에서 이어지는 화서로에서 다락재로 가기 위해서는 다락재로를 만나는 "노문 삼거리"를 지나야 한다. 헌데, 동부 5고개 후반부에 이르러 홀로 뒤처진 라이더들은 이 노문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선택하기 십상이다. 왜냐면, 명달리를 지나오는 내리막에서 다락재로 착각할 만한 업 앤 다운이 나오기에 힘이 쭉 빠져버린 라이더는 본능? 적으로 내려가버릴 수 있나 보다.  슬프지만, 노문 삼거리에선 곧바로 업힐을 만나는 "우회전"이다.



노문 삼거리에서 다락재로 약 300미터 지점. 노문 삼거리에서 반대방향으로 내려가버린 후배를 기다리는 ㅠㅠ



제5고개 유명산 (선어치 고개)


동부 5고개들의 이름의 유래를 찾아보기가 쉽진 않은데, 게 중에 제일 높은 고개인 선어치 고개는 그나마 옛 선조들의 문헌에 등장하는 고개 중의 하나라고 한다. 가평군과 양평군을 직접 잇는 고갯길로, 새까맣게 포장된 길 위로 선명하게 늘어선 흰색과 노란색의 라인이 굽이굽이 돌아 오르는 업힐의 이미지로 남는 구간이기도 하다.


동부 5고개의 강열했던 그 두 번째 이미지  


체력도, 근력도 떨어져 버릴 즈음 만나는 유명산의 호기에 지쳐버리기 십상인 곳이다. 12킬로미터의 총 구간 평균 경사도는 4%에, 후반부 4.4킬로미터 구간은 6.6% 정도이지만, 고개정상에 다가갈 수록 경사는 급해지는데다 길의 분위기조차 사뭇 달라져 버린다. 빠르게 오고 가는 차량들과 왕복 3-4차선을 넘나드는 잘 다듬어진 아스팔트 도로에 쉽사리 위축되어버릴 만한 그런.


유명로 평지 구간. 휴식 중



마지막 제5고개 유명산 선어치 고개로 향하는 유명로. 네이버 지도 거리뷰 참조. 네이버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런 이곳이 좋다.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봄이나 가을녁에 달려 오르다 보면, 뿜어져 나오는 땀과 거친 호흡을 한껏 즐길 수 있는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아직 겨울잠에서 완연히 깨어나지 못한 오른 쪽 장단지에 경련이 조금씩 오는 것 같은데, 급할 것도 없고 굉음으로 오가는 차들에 쫄을 것도 없이 끊어질 듯 체인을 두 다리로 밟아 오르다 보면 마무리가 된다.




푸른 녹음을 사이에 낀 채 파란 하늘과 새까만 아스팔트의 선명한 희고 노란 라인의 끝에서 만나는 선어치 고개 정상.
후배님 무사히 도착!!! @유명산 선어치 고개



오늘 라이딩을 표현하는 페르소나,  그 후배가 좀 전에 도착했다. 긴 라이딩 휴지기 끝에, 다른 이 같으면 엄두도 못 내었을 코스를 기어이 해내고야 만다. 건강미야 그 누구에도 양보하지 않을 친구지만, 갑작스런 1,300미터 획득 고도의 5고개 라이딩은 그리 만만한 코스가 아니다.


하지만, 한마디 했다.


"이 코스 니가 골랐다."  ㅎㅎㅎㅎㅎ

가을에 또 오자구~~



외전_아신역까지


선어치 고개에서 아신역까지는 약 12킬로미터 거리다. 물론, 이어지는 내리막이어서 어렵진 않지만, 처음 이곳을 달려 내려가기가 쉽진 않았다. "마유산로"인데, 약 7킬로미터의 꽤 긴 다운힐인 데다, 차량들이 꽤 많이 오가는 커브길로 이루어진 특성 때문이다. 그나마, 낡았던 아스팔트는 구간구간 새로 포장이 되어서 노면이 부드러워지긴 했다.


차분하게 무리하지 않고, 차량들에 대해선 애써 무신경한 채 오른쪽으로 붙어서 내려가면 된다.  과거 처음 이 내리막을 달렸을때, 비로소 자전거 공학의 놀라움과 오랜 시간 동안 이런 물건을 다듬어온 이름 모를 엔지니어들에게 감탄했었던 기억이 있다.


옥천을 지나 아신역까지 달리고, 아신역에 다달아 맛집을 한 곳 골라, 허기진 배를 위해 수육과 곰탕 한 그릇으로 동물성 단백질의 첫술을 뜰 때, 동부 5고개 레퍼토리의 마지막 환희를 만끽하게 된다.


동부 5고개 라이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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