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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멀미 May 20. 2021

동전의 힘

네팔 여행기

어린 시절 나는 병약한 아이였습니다. 내게 세상은 회전그네처럼 어지러운 곳이었습니다. 흔들리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넘어지곤 했습니다. 겨우 붙잡고 세상에 서 있었습니다. 가장 힘겨웠던 것은 멀미였습니다. 통학을 위해 타고 가야했던 버스는 도로 위에서 무당의 방울처럼 나를 무참히 흔들어댔습니다. 어지러워서 몇 번이고 중간에 내려야 했습니다. 


내가 힘들어하지 어머니가 알려준 방법이 있습니다. 동전 하나를 손가락 마디 안쪽에 끼우고 주먹을 꼭 쥐는 것입니다. 지압의 효과였을까요. 신기하게도 그 이후 멀미가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내가 손에 쥐고 있던 것은 작은 동전 하나였을 뿐이지만, 그 동전을 쥐며 나는 세상 그 무엇보다 견곤한 지지대 하나를 꼭 붙잡고 있다 믿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 믿음이 내게서 오래도록 나를 힘겹게 했던 그 흔들림과 멀미를 가져간 것. 그 투명한 지지대는 무엇이었을까. 가끔 생각하게 됩니다. 


고르카로 가는 길. 직통버스가 없어 환승을 이어가며 무작정 길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멀리서 버스가 다가오면 앞 유리에 네팔어로 적혀있는 행선지를 보고 승차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나는 그 문자를 읽을 수 없었기에 모든 버스마다 달려가서 물어야 했습니다. 


“고르카. 고르카. 고르카에 가십니까?”


그렇게 몇 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고 뜨거운 햇살 아래 허망하게 서 있었습니다. 언제 버스가 오는지 알 수 없는 일. 아니, 고르카로 가는 버스가 있기는 한 걸까, 의심까지 일었습니다. 그때 어떤 소년이 내게 다가와 말합니다.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짧게 ‘고르카’라고 말합니다. 


나도 고르카에 가니 내가 타는 버스를 타면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지도를 만난 것과 같았습니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호의로 소통되던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그 소년에게 마음으로 기댄 채 잠시 서 있다가 함께 버스에 올랐습니다. 


고르카로 들어가는 길은 좁고, 높고, 험했습니다. 작은 버스는 쉽게 휘청였고 덜컹거렸습니다. 소년과 옆자리에 함께 앉아 가는데, 의외의 일, 그 아이가 멀미를 하며 힘들어합니다. 여행객인 나는 말짱한데, 그곳에 사는 소년은 힘들어하는 것. 그 흔들리는 길이 내게는 여행이지만, 소년에게는 일상의 일인 것입니다. 여행자는 덜컹거리는 경험을 즐거워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소년에게 그 일상의 흔들림은 힘겹습니다. 소년을 위해 창문을 열어주고, 마침 갖고 있던 한국 동전 하나를 꺼내 손바닥을 지압해줬습니다. 내가 어머니께 배웠던 방법 그대로 알려줬습니다. 소년은 처음에 동전을 신기해하다가, 이내 그 동전을 손에 꼭 쥔 채 멀미를 견뎌내는 듯 보입니다. 조금 괜찮아졌는지, 놀랍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습니다. 

고르카는 산 아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낮은 지붕들 사이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어디서 아이들 뛰는 소리, 오토바이의 작은 경적소리, 속옷 가게의 철제 셔터 내려오는 소리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 풍경을 하나하나 승차시키듯 천천히 달리던 버스가 종점에 다다랐을 때, 소년은 나보다 먼저 버스에서 내리더니 어느 골목으로 말없이 사라져갑니다. 나도 숙소를 찾아 길을 걸어야했습니다. 이미 늦은 밤이었습니다. 

아침에 다시 본 고르카는, 어제와 같은 희미함 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소리들 속에서, 모든 것이 아름다웠습니다. 저 멀리 산의 허리까지 안개가 있고, 안개 위로는 가벼운 햇살이 투명하게 반짝였습니다. 붉은 꽃 군락이 능선에 흐르고, 그 사이로 부지런한 아침의 사람들이 이미 걷고 있었습니다. 저 산으로 오르자. 작은 카메라 하나만 챙겨서 숙소를 나섰습니다. 


그 길에 마을이 있고, 마을엔 빨래 너는 여인과 아이들이 있고, 느린 소와 수염 긴 염소, 어린 병아리가 있었습니다. 바람에게 말걸 듯, 지붕마다 점자처럼 돌멩이들이 얹혀있고, 아침이 그 돌들에 닿아 반짝였습니다. 잠깐 멈춰서 그 풍경을 바라봤습니다. 나도 어딘가 저 돌처럼 머물며 살아도 좋겠다. 여기여도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좀 더 걸어 오르니 오른쪽으로 울창한 숲입니다. 그 안쪽 어디선가 후룩후룩 소리가 들려옵니다. 무슨일일까, 조금 빠르게 걸어가 소리 쪽을 올려다보니 거기 노란 원숭이 수십 마리가 나무 사이로 뛰고 있습니다. 그 원숭이들이 내는 소리였습니다. 원숭이들은, 나무와 나무 사이로 뛰며 그 나무의 열매를 골라서 먹고 있었습니다. 가장 잘 익은 열매의 과육을 한 입 베어 물고는, 남은 열매를 바닥에 그대로 던지는 것입니다. 그 아래 소년들이 뛰며, 원숭이가 버린 열매를 경쟁적으로 줍고 있었습니다. 산을 왜 오르려 했는지도 잊고, 나도 30분 쯤 그 열매를 주웠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 어쩌면 바람이 시킨 일, 어쩌면 나 스스로 시킨 일, 그런 일이었습니다. 한참 줍고 있는데 소년 중에 하나가 내게 다가옵니다. 전날 내게 고르카를 알려준 그 소년입니다. 내가 동전의 비법을 알려준 그 소년입니다. 무슨 일이지? 하면서 다른 아이들도 내게 다가옵니다. 잠시 나를 바라보던 소년이 어제처럼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킵니다. 내가 어제의 그 소년이에요. 그런 의미였을 것입니다. 

나도 반가운 마음에 환하게 웃어주고, 내가 모은 열매를 그 소년에게 모두 건넸습니다. 서른 개 쯤 되었을까요. 우와, 그렇게 감탄의 표정을 짓던 소년이 그 열매 중에 가장 큰 것 두 개를 내게 되돌려줍니다. 다 받을 수 없으니 이건 가져가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받았습니다. 장난처럼 소년에게 고개 숙여 고맙다 인사하니, 소년도 따라서 인사합니다. 그리고는 내게 몇 마디 그들의 말로 질문을 쏟아냅니다. 소년과 소년의 친구들이 함께 질문을 해옵니다. 알아들을 수 없었고, 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웃음으로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내가 대답하지 못하자 잠시 침묵하던 소년이 뜻밖에도 영어로 내게 묻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영어로 할 수 있는 말이 그것 하나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동전의 비법을 알려준 낯선 외국인을, 그 아침에 함께 열매를 줍고 있던 나를, 좀 더 오래 기억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보통 이름을 알면 더 오래 기업됩니다. 나는 또박또박 내 이름을 불러줬습니다.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네팔에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 그 마을이라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그 소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무사히 잘 살아 있기를. 동전을 꼭 쥔 채 그 어지러운 지진의 흔들림을 잘 견뎌냈기를. 나의 어린 날처럼, 견고한 생의 지지대 하나가 그에게도 있었기를. 소년이 내게 되돌려준 열매 하나를 찾아 손에 쥐고 기원해봅니다. 그 열매를 말려 소원을 빌 때 쓰는 묵주를 만든다는 말은 나중에 들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건넨 동전의 화답으로 그날 소년이 내게 그 열매를 건네줬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다음에 만나면 나도 너의 이름을 물어볼 것이니. 그때까지 잘 지내고 있기를.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마워서 이름을 물어볼 것이니, 부디 잘 견뎌내길. 생의 어떤 견고한 지지대와 믿음으로, 그 어려운 흔들림을 잘 견뎌내기를, 그날 버스 속에서 소년이 그러했듯, 오늘의 나는 열매 하나를 손에 꼭 쥐고 그렇게 기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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