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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Feb 17. 2020

애매모호한 꿈도 괜찮은 이유

중요한 건 스토리

오랜만에 링크드인 프로필을 업데이트하려고 한다. 왜냐면 About에 해당하는 부분을 뭔가 기깔나게 써보고 싶기 때문이다. 형식적인 거 말고 구글에 Linkedin 10 best profile example 치면 나오는 그런 느낌으로다가. 보니까 잘 쓴 About은 눈을 확 사로잡을 만큼 자신감 있으면서도 적당히 개인적인 스토리도 녹아있고(예를 들어 남편이 암 진단을 받은 뒤 제약업 캠페인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었다는 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처럼) 어느 정도 유머러스하기까지 해야 되더라.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은 왜 죄다 글까지 잘 쓰는 걸까?


빈 화면을 앞에 두고 나는 생각에 빠진다. 뭘 어떻게 써볼까. 생각은 머릿속을 흘러 흘러 3년 전에 런던에서 처음 입사하여 해외취업 뽕에 취해있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그때 런던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글로벌 브랜드의 헤드오피스에서 아주 좋은 인터뷰 피드백과 함께 오퍼를 받고 출근을 하기 시작한 귀여운 주니어였다. 아니 런던에서 취업을 하다니! 난 내가 뭔가 엄청 대단한 일을 이룬 것처럼 느껴졌고, 이제 내가 할 일을 다 한 것 같기도 했고, 티는 안 냈지만 속으론 꽤 심하게 자아도취에 빠져있기도 했다. (여러모로 어렸다) 암튼 치사량 수준의 뽕에 취해서 신기하고 신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몇 개월이 지나 어느 정도 루틴에 적응을 하고 일도 손에 익어가던 무렵, 몇몇 동료들과 퇴근 후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한 명은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팀 멤버였는데, 우리는 굿모닝 씨유투모로우 왓디쥬두듀링더위켄드 정도의 대화만 하는 사이였지만 내심 난 그 친구가 아주아주 마음에 들었었다. 늘 커다란 책을 들고 다니고 점심시간에도 혼자 책을 읽으면서 밥을 먹는 모습을 자주 목격해서였는지, 조금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어렸을 때 꿈은 뭐였냐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던 순간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져서였는지. 여하튼 그랬다. 아마 그 질문을 던지던 즈음에 친구는 밤마다 잠들기 전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맞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던 것은 아니었을지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그러니까 너는 어렸을 때부터 '나는 패션 브랜드에서 프로덕션 코디네이터가 되어야지!' 하고 꿈꾸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진짜 꿈은 뭐였어?"


"글쎄, 물론 그건 아니었지만..."


그때 나는 그녀의 철학적인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 아니, 그 질문에 답을 내놓기 위해 굳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지 않았다. 나는 지금 어렸을 적 꿈이고 나발이고 런던에서 취업에 성공해서 뽕에 제대로 취해있는데 뭔 소리야!


그리고 지금 랩탑 앞에 앉아서 3년 전 미처 답하지 못했었던 그녀의 질문을 다시금 곱씹어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을 하고 해 봐도 나는 어렸을 때 어떤 직업적인 목표를 가져본 적이 없던 것 같다. 남들이 의사 되어야지 변호사 되어야지 기자 되어야지 공무원 되어야지 할 때 나는 솔직히 배낭 메고 안 가본 나라에 여행을 가서 처음 만나는 세계 각지 사람들이랑 밤새도록 맥주나 마시고 싶었다.


흠, 안 가본 나라? 여행? 사람? 아 그러고 보니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인터내셔널 한 걸 좋아했다. 아직 유치원생일 때부터 엄마한테 프랑스로 유학 보내달라고 했던 괴짜 꼬맹이가 나였다. 대학 와서 가졌던 꿈은 단 하나, 외국인 친구랑 영어로 대화해보는 것. 학과 수업 중에 '국제'자가 들어가는 수업은 무조건 앞뒤 안재고 다 들었다. (물론 국제법을 선택한 건 아주 큰 실수였지만) 그러니 나중에 내가 일을 하게 되면 거기가 엄청 인터내셔널 한 곳이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게 된 건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니까 막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있고 양옆으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런 거, 되게 쿨하잖아. 그때는 내가 그냥 정치외교학 전공이기도 했고, 학교 밖에 무슨 직업들이 있는지도 잘 몰랐으니 국제적인 환경의 직업은 국제기구나 NGO밖에 없는 줄 알았다. 누가 졸업 후 진로를 물어보면 대충 뭉뚱그려 UN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다.(;;;) 나의 생각의 범위와 깊이가 그렇게나 좁고 얕았었다. 졸업하고 런던에 갔을 때 나는 사실 아주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지만, 그때의 경험이 나의 작았던 세계를 산산이 깨부수어 주었다는 점에는 지금도 깊이 감사하다.


-


패리사, 내 어릴 적 꿈이 뭐냐고 물었었지. 솔직히 말해서 그런 거 없었어. 나는 늘 막연하고, 애매모호하고, 갈피를 잡기 힘들고, 그래서 뜬구름 잡는 소리 같기만 한 꿈을 꿨지. 프랑스 유학을 보내달라고 조르던 때 엄마가 나한테 물어보더라. "그래서 거기 가서 뭘 하고 싶은 건데?" 그러면 나는 답했지.



그거야 나도 모르지.

(엄마 미안, 황당했지?)


난 지금도 종종 방황해. 3년 전 즈음에 너를 잠들지 못하게 했던 깊은 고민들은 이제 내 방 어두운 천장에도 찾아와서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곤 해. 하지만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밖에 있는 것들에 관심이 너무 많은 나였기 때문에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을 궁금해했고,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터내셔널 한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다는 막연한 꿈이 생길 수 있었던 것 같아. 그게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온 거고. 내가 런던에서 처음 취업을 했을 때 미친 듯이 들떴던 이유도 그거였어. 나는 그냥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거야. 수많은 배경의 사람들과 섞여 일하게 되면서 나는 내가 다양한 역할을 가진 팀원들의 특성과 장점을 이해하고 그걸 이용하여 결과를 이끌어내는 걸 잘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돌고 돌아왔지만 결국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거야. 내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도착한 곳은 여기였어. 그리고 나를 이 곳까지 데려다 놓은 건 나의 애매모호하고도 뜬구름 잡기 식의 꿈이 만들어낸 나만의 스토리라고 생각해. 이 곳이 마지막 종착지는 아니겠지만, 나의 중심은 변하지 않아. 다양성이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 국적과 배경, 가치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존중이 있는 곳에 나는 또 자리하게 되겠지.


오늘 우리 사무실이 공사를 하는 바람에 재택근무를 하게 됐는데, 미팅을 하려고 서울 북쪽 작은 방 한 칸으로 전화를 걸어온 사람들이 홍콩과 런던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갑자기 막 설레더라. 내가 하는 일은 단순히 엑셀을 만지는 지루한 일이 아니라 사실은 내가 그토록 꿈꿔왔던 일이었던 거야! 전 세계에 동료들이 있는 곳에서 일할 수 있어서 감사했어. 나는 꿈을 이룬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지. 다시 말해, 나의 꿈은 디자이너, 수학자, 셰프처럼 한 단어로 정의되지는 못하지만 스토리텔링으로 전달될 수 있었다는 걸 너의 질문을 받은 지 3년 만에 알게 되었네.


-


자, 패리사의 3년전 질문에 대한 답을 하게되자 이제 링크드인 About 란에 나만의 이야기가 써내려 가진다. 나는 한 길을 꾸준하게 파거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과 열정을 쏟아부은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나만의 스토리가 있는 사람, 내가 가는 길에 분명한 이유가 있는 사람, 나만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그 날 나에게 어린시절 꿈을 물어보며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할 줄 알았던 패리사가 지금은 퇴사 후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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