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기 위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남기는 증거

잔말 말고 하자!

by cranky witch

10년 동안 다녔던 직장을 그만뒀다.

영겁의 고민과 망설임을 멈추고 앞으로는 전혀 다른 길을 뚫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직장인들에게 일태기가 주기적으로 찾아오듯,

스타트업에서 여러 부서를 돌며 일하는 가운데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주기적으로 피어올랐었다.

그때마다 일로 달래보기도, 관심 주제에 기웃거려보기도, 실제로 공부에 발끝을 담가보기도 했지만

언제나 결론은 하나였다.


'안돼, 너무 늦었어. 못해, 아니 무서워. 이거 해서 어떻게 먹고 살 건데?

10년 동안 다른 일 하다가 이제야 뛰어든 내가 대학교 때부터 착실히 공부한 사람과 어떻게 경쟁하겠니?

뒤늦게 처음부터 할거라면 2배 3배 열심히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는 체력이 되니?'


그 누구에게보다 나 자신에게 냉정한 채찍으로 내려치던 (최소) 5년.

'어차피 시작해 볼 거였다면 좀 더 빨리해 볼걸..'이라는 후회의 구름을 고이 불어 날려버리고

불안과 두려움이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는 뒤를 돌아보지 않기 위해

내가 언어학에 흥미를 보여왔던 몇 년간의 순간을 증거 제시용으로 기록해 둔다.

그래, 이 정도면 운명이야.


첫번째,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되어준 영화 Arrival(컨택트, 2017년 2월)

출처: 교보문고

어느 날 갑자기 지구 곳곳에 왼쪽 사진처럼 긴 반원형의 우주선을 탄 외계인이 나타나고, 외계인의 침략 의도를 알아내기 위해 언어학자, 물리학자, 각종 정부 관료가 투입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주인공인 언어학자는 외계인의 목적을 파악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하는데, 외계인과 소통하면 할수록 그녀의 인생에 변화가 생기는 아주아주 재미있는 영화이다.


나는 이 영화 덕분에 '언어학자'라는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전에는 영문학과, 독문학과처럼 대학교 시절에 있던 언어 관련 학과만 들어보았지, 언어학이라는 엄청난 학문이 있을 줄이야. 루이스(영화 주인공인 언어학자)가 외계인을 만나 인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알게 되었듯이, 이 영화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주었다. (드니 빌뇌브 감독님 만세!!)


너무 빠져들어서 몇 번이나 다시 보고, 원작 소설도 찾아 읽고, 그 당시 인터넷에 올라온 모든 해석과 리뷰 글을 찾아 읽었다. 그중 어떤 리뷰에서 이 영화는 '언어 상대성 이론을 담고 있는 영화다'라는 문장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파악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고도 다르게 한다는 것이 언어 상대성 이론이란 걸 검색해 본 후 얼마나 놀랐는지. 이런 걸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고? 너..너무 재밌겠잖아?


두번째, 엄마와 외국인 남자 친구의 짧은 대화(2020년 1월)

엄마에게 남자 친구를 처음 보여줬던 날이다. 엄마와 나 그리고 남자 친구가 쓸 수 있는 공통 언어가 없어서 서로의 말을 내가 전달해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어와 영어로 이리저리 바쁘게 얘기했던 그 시간은, 부모님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하는 여느 첫 자리와 비슷하게 서로 친절했고 어색했다. 그런데 10분간의 짧은 대화를 끝내고 다음 일정을 위해 작별 인사를 건낸 엄마의 한마디에 나는 머릿속이 띵해졌다. 왜 그랬을까?


① 서로가 대화할 때 내가 말을 전달해 줘야 하므로 엄마와 남자 친구는 나를 보며 말했다. 엄마와 남자 친구가 눈을 아예 안 마주친 건 아니겠지만, 눈 맞춤이 그리 빈번하지는 않았다고 추측한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엄마와 남자 친구가 '직접적'으로 대화하지 않는다고 인식했을 것이다.

② 그러다 작별 인사에서 엄마는 남자 친구를 쳐다보며 (친절하고 다정하게) "잘 가~ 건강하고!"라고 말했다. 내 인식 속에서 둘이 '직접적'으로 한 첫 대화였다.

③ 처음 본 사람과 나누는 첫 대화에서, 엄마는 왜 반말했을까?


사실 연장자가 나이 어린 상대에게 반말하는 게 한국에서 낯선 상황은 아니다. 나 역시 일면식도 없는 분들로부터 반말을 들어본 경험이 많은 걸(ex. 처음부터 반말하는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 등). 종종 기분 나쁜 상황도 있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선 별로 아무렇지도 않았을뿐더러 엄마와의 상황은 더더욱 이상할 게 없었다. 오히려 당연하게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알 수 없는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고, 이후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이 주제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출처: 교보문고

며칠 뒤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서점에서 찾아 '영어학자의 눈에 비친 두 얼굴의 한국어 존대법'이라는 책을 구매했고, 다음과 같은 문장을 찾았다.


언어학자 로만 자콥슨은 "언어는 그 언어가 전달할 수 있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언어가 반드시 전달해야 하는 것에 의해 본질적으로 구분된다"라고 말했다. (중략) 반면에 한국어 존대법은 한국인들이 말을 할 때 무의식중에 관련된 모든 사람의 높낮이를 계산하여 서열화하도록 만든다. (중략)

존대 문화 속에서 반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이 아래 계급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상대가 자신의 상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 동시에 상대의 명령을 받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인이라면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을 -부모, 아래-자녀의 개념. 아마도 나의 자연스러운 위계 개념에 남자 친구는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존재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나와는 달리 엄마에게 남자 친구는 아래 계급 집합임을 이해한 순간, 머릿속에서 충돌이 났던 것이다. 내 인식 속에서 남자 친구는 위도 아래도 아닌 여집합의 원소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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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남자 친구를 여집합의 원소로 인식했던 걸까? 외국인이기 때문일까? 여전히 궁금하지만 이 상황을 A/B 테스트처럼 대조실험으로 돌려볼 수도 없으니 명확한 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있다. 나는 사람들의 언어와 언어의 기저에 담긴 문화 & 사고를 생각해 보는 과정을 즐긴다는 사실. 재미를 들인 김에 꽤나 지속적으로 관련 책을 찾아 읽었다. 그러다 도서관의 언어 코너에서 발견한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라는 책! 저자 Guy Deutscher가 물었던 아래 질문을 읽고는 가슴이 뛰었다.


"모국어는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까?"
우리가 우연하게 태어나 자란 문화의 관습은, 세상을 개념화하는 방식과 이러한 개념들을 복잡한 생각으로 조합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우리가 쓰는 언어적 요소를 통해서 문화는 우리 생각에 마땅히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타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몇몇 연구자들은 이 주제를 금기시하고 있다. 다음 장에서 그 이유를 살펴보자.


세번째, 실제로 들어본 언어학 수업(2020년 6월)

연초에 가졌던 흥미가 6월까지 이어졌나 보다. 관련 학문을 뭐라도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MOOC(Massive Online Open Courses)를 뒤져보다가, Coursera에서 네덜란드 대학이 올려준 언어학 입문 강좌(Miracles of Human Language: An Introduction to Linguistics)를 찾았다. 몇 년 전이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회사와 병행하며 약 한 달 정도 가볍게 공부했었다. 그래도 퀴즈도 보고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수강료(약 $50)도 지불하고, 완료 후 수강증도 받았다!

img.jpg 수강증(개인정보를 연보라색으로 가렸다)

조금 더 깊이 공부해 보고 싶어 Coursera에서 신경언어학(Neurolinguistics)을 찾아 들어보았다. 정말 신기한 세계였고, 알아가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동시에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신경언어학을 공부하다보니 이 분야가 정말 깊은 학문의 세계라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하면서, '내..내가 뒤늦게 이 분야에 도저히 뛰어들 수 없을 것 같아..'라는 마음이 점점 나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강의를 다 듣지 않고 중도에 그만뒀던 것 같고.


그러다 1년 정도 뒤에 어쩌다(...정말 우연일까?) '이상한 나라의 언어씨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자연스레 생겨나 실제 사람들이 쓰고 있는 자연 언어가 아닌, 누군가(주로 언어학자)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낸 인공 언어를 다룬다. 인공 언어의 대표적인 예는 반지의 제왕에서 호빗과 요정의 언어, 듄의 프레멘어, 스타트렉 속 클링온 종족의 클링온어 등이 있다. 어느 시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갑자기 클링온어가 배우고 싶어져서 듀오링고로 열심히 학습했던 때가 있었다. 회사 회의 전 스몰 토크 시간에 사람들이 대화하는 걸 혼자서 클링온어로 번역해서 끄적끄적 적어 보는 연습도 하고 그랬었다(물론 클링온 종족과 인간의 문화가 너무 달라서 번역하기 힘든 단어가 대다수다!). 이런 이력 덕에 아주 재밌게 읽을 수 있었는데, 그 중 마음이 동했던 말이 있었다.


그의 발표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처음 언어학을 하게 된 계기, 내 자신이 언어에 대해 느꼈던 흥분을 떠올리면서 감회에 젖어 들었다. 그 같은 감정적인 느낌은 세월이 흐르면서 학술이 요구하는 지식적인 측면 때문에 잊고 살았다. 언어학자들은 모두 언어에 대한 강렬한 애정으로부터 출발하지만, 때때로 그것을 잊어버린 채 하나의 이론을 지지하거나 다른 사람의 이론에 반대할 증거를 수집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간혹 언어는 차가운 데이터의 꾸러미가 되기도 한다.


위 구절을 읽으면서 괜히 내 마음이 떨렸다. 이 사람이 느꼈던 언어에 대한 흥분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어학자도 아닌 내가 감히 추측해 보건데, 작가가 처음 언어학을 하게 된 계기는 아마 모두가 인정할 만한 크나큰 사건이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의미 있었던 작은 순간들의 모음집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더욱 잊어버리기 쉽기도 하고. (아님 말고ㅎㅎ) 만약 내가 언어학자가 된다면, 그래서 언젠가 초심을 잃고 하나의 이론에 맹목적으로 몰입하다가 문득 왜 언어학이 좋았는지를 떠올리게 된다면, 그때 떠올릴 '초심'은 어떤 순간일까. (너무 머나먼 미래의 상상...)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 분은 어떤 계기로 언어학을 하게 되셨을까?


네번째, 미련을 못 버리고 다시 흘끔흘끔(2023년 12월)

2023년도 12월은 이상하리만치 힘든 일이 연속으로 발생하던 시기였다. 마치 몇 년간의 액땜을 한꺼번에 치루듯 고통스러운 나날에 지쳤던 나는 어딘가 안정을 찾을 만한 곳이 필요했다. 좋은 피난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유튜브에서 언어학 입문 강의를 또 찾았다(입문만 계속하는 자..). 외국 대학교 강의를 직접 녹화한 영상이라, 질문하려고 '저요! 저요!' 손을 든 학생들이 엄청 많은 모습도 고스란히 보였다. '내가 저 현장에 있었다면 저렇게 질문을 많이 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에 설레기도 좌절하기도 했다.

클링온족(출처:The Seattle Times)


그러던 중 교수님이 첫 과제를 안내했는데, 다국적 학생이 많은 환경이니 자신과 다른 언어를 쓰는 원어민 친구와 짝을 지어 서로의 언어를 분석하라는 내용이었다. 과제를 듣자마자 '어? 클링온어를 주제로 삼아도 되나?'가 머릿속을 스쳤지만, 클링온어 원어민을 찾을 수 없으니 바로 생각을 접었다. 이후 과제 안내를 위한 게시판을 확인한 나는 FAQ를 보고 웃음이 터졌다. FAQ 질문 중 하나가 "클링온어 등 으로 해도 되나요"였던 것이다! '이럴 수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나 봐!'하는 생각에 일종의 동질감(?)이 들어서 기뻤는데, 답변이 더 웃겼다. "클링온어 원어민을 찾을 수 있다면 하세요. 하지만 조심하세요!" (클링온 종족은 매우매우 호전적인 전쟁 민족이다)

과제 안내 게시판 캡쳐본 (출처: OpenCourseWare)


예전에 어느 방송에서 모델 한혜진의 얘기를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키가 또래들보다 너무 커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모델을 뽑기 위한 장소에 가니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이 본인처럼 키가 커서,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구나'를 느꼈다는 이야기였다. FAQ 질문을 보고 모델 한혜진의 이야기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 혹시, 내가 있어야 하는 분야는 여기가 아닐까? 나랑 비슷한 관심사가 있는 사람들이 여기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대학생 때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보겠다고 마음에 드는 TED 영상을 골라 통째로 외웠던 시기가 있었다. (당연히 지금은 다 까먹었다) 그 당시 눈에 들어왔던 영상이 있었다. '당신이 위대한 커리어를 가질 수 없는 이유'(Why you will fail to have a great career)라는 제목의 영상이다. 일반적으로 TED에는 밝고 긍정적이거나,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치거나, 동기부여 가득한 긍정 이야기가 가득했는데 이 영상의 연사였던 Larry Stmith는 잘못 걸리면 된통 혼날 것 같은 구두쇠 스쿠루지 영감 같았다. 그래서 더 내용이 궁금했지.


연사가 언급한 몇 가지 이유 중, 지금 문득 생각나는 이유가 있다. 관심과 열정의 차이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었다. 보통 사람들에게 "관심"(영상 속에서 "An interst"로 표현)거리는 많지만, "열정"("A passion")을 쏟을 대상은 없다는 것이다. 관심과 열정은 천지 차이인 것이,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은 사람에게 "결혼해 줘! 너에게 관심이 있어!"("Marry me, you are interesting!")라고 한다면 결혼 승낙은 커녕 평생 혼자 살다 죽게 될 것이란다. 수많은 관심거리 중에서 단 하나 나를 낚아채는, 내가 최고로 사랑하는 그것이 열정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언어학은 나의 여러 관심사 목록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부턴 단순 관심이 아닌 열정의 대상으로 만들어보려 한다. 한번 언어학을 낚아채 보려고 한다. 억지로 관심거리 정도라고 밀어내고 있었는데, 더는 안 되겠다. 그만 두려워하고, 그만 망설이자. 밥벌이만 할 수 있다면 괜찮다. 평생 열정을 쏟아볼 대상을 가지려면 이 정도 위험은 받아들여야겠지. 그래, 너로 정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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