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스턴트 라이프[김영욱]
수많은 서울대학교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 한 명이 또 책을 냈구나 싶었다. 그의 잘남이 얼마나 잘 드러나는지 볼까 하는 심정으로 책을 펼쳤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행동하며 개척하는 멋진 발명가'라는 인상을 깊이 받았다. 또한 그의 글에서 진정성이 느껴져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멋진 사람을 만났을 때의 흥미로움과 즐거움을 한꺼번에 느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집요함인데, 그의 집요함이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었다. 자랑하며 잘난 척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의지로 행했음을 독자로 하여금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프록시헬스 케어 대표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이력은 참으로 화려하고 다양했다. 어느 한 곳 쉽게 갈 수 없는 곳임에도 도전했고 그것이 지금의 김영욱을 만든 밑거름이 되었다. '자기 자신에게 기회를 줘라'는 그의 말이 삶에 녹아져 있어 그의 매력에 푹 빠졌다.
과거는 미래에 의해 다시 쓰인다. 이 소제목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의사가 되고 싶지 않아 다른 길을 찾았고, 왜 그 좋은 미래를 스스로 그만두려고 하느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는 스스로 다른 길을 선택하고 그 길에 자신의 과거를 잘 녹였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기술, 공업, 물리, 수학을 좋아했던 그는 시대적 배경에 선택한 의대를 3년이나 다니다 그만두고 공학도가 되기로 결심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대를 다니며 공부했고 관심 있던 '회로 이론'이 1,000쪽 넘는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120명 중 3명만 받는다는 A+ 받아낼 만큼 집요하게 공부했다. 의대 다닐 때 공부보다 운동에 더 열심이었다는 그의 말은 사실 신뢰가 가지 않는다. 분명 그는 의대에서도 열심히 했을 것이라는 심증적 의심을 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의 회로 이론 공부가 추후 미국에서 석박사 과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읽는 순간 영화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로 그의 공부에 대한 전력투구가 느껴졌다.
그는 어떤 일에 가치를 두고 고민한다고 했다. 남들과 같은 길을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자유를 중요하고 생각하고, 안 되는 일을 해 내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고 했다. 가치를 정확히 두고 사는 삶에 나는 또 한 번의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스스로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자신이 증명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삶, 나 역시 그런 삶에 흥미를 느끼고 있어서인지 그에게 더욱더 매력이 느껴졌다.
공학도의 길이 늦어서일까. 그는 3년 만에 졸업을 하고 유학을 결정한다. 유학으로 가는 길에 하이닉스와 학원강사의 길을 걸으며 누구에게나 있을 안주의 유혹마저 잘 견디고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학원강사 시절에 대한 글을 읽으며 만약 나라면? 혹은 수많은 학원 강사들 중 어쩌면 미래를 위해 잠시 준비하는 과정에 학원강사의 길을 걷다가 주저앉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정적인 수입과 스스로 찾아낸 또 다른 삶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1년 빠른 대학 졸업을 헛투루 사용하지 않고 유학을 위해 알뜰하게 그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유학길을 걸었다. 역시 삶은 곳곳에 지뢰밭이 있지만 그가 발견한 지뢰는 언제나 해체 가능한 것으로 보이며 절대 지뢰로 인해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 여실이 느껴지는 시절이었다.
언어의 장벽 정도는 그에게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물론 자괴감에 잠시 빠지긴 했지만 연구 발표를 성공적으로 했다. 지난 과거의 의대 생활과 공대 생활이 유학시절의 밑거름이 되어 '웰던, 굿장, 영'이라는 칭찬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미국 석박사 시절을 보내게 된 듯하다. (웰던은 뭔가를 뛰어나게 잘해 냈다는 것을 의미) 웰던을 받은 그는 원했던 교수의 연구원으로 합류할 수 있었다. 의대 생활과 도전정신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레자 가드시 교수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스스로 자부했다. 미국 유명 대학교에서는 졸업 정원의 5배수를 뽑고 박사 자격시험에 대부분이 떨어트릴 만큼 힘들다고 한다. 그런 힘든 시험을 보란 듯 3개월 만에 통과하고 6개월에서 1년의 임기를 가지는 연구실 매니저 역할을 2년 동안 계속해서 하게 되었다는 그를 보며 스스로를 얼마나 더 증명해야 에너지가 떨어질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미국에서 석박사를 하고 나서 다시 한국에 들어오는 사람들 물론 많다. 하지만 그가 왜 그렇게 빨리 한국에 들어와 취업을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생활비가 비싸서 연구실 생활이 힘들어서였을까, 향수병이었을까, 짧은 시간 많은 생각을 했다. 삼성전자도 아닌 삼성전기를 선택한 그의 행보. 박사학위를 따고 쉴틈도 없이 또 다른 환경을 선택한 그가 의아했다. 입사 4개월 만에 텅스텐을 사용하고도 금을 사용한 제품에 버금가는 성능이 발현되는 크리스털 오실레이터 제품을 만들어 원가 약 1억 원가량에서 300만 원으로 줄어드는 결과를 낸 그를 보며 의아함이 떨쳐졌다. 아! 이 사람은 현실에서 부딪히고 다시 시작하고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역시 집요함을 넘어선 완벽주의자이기도 하지 않을까 하는 확신이 들었다.
삼성전기를 2년 만에 퇴사한 모습을 보며 잠시 지루함이나 익숙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인가? 왜 또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것일까? 충분히 인정받았고 드디어 자신이 하고 싶은데로 마음껏 해볼 수 있는 부서로 발령이 났는데 말이다. 그는 스스로를 연역적 방법에 특화된 엔지니어라고 정의했다. 이론적인 계산을 통해 설계하고 실제 제품이 설계와 얼마나 비슷하나를 예측하는, 예측 가능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한 그에게 귀납적 방법의 연구를 하게 될 삼성전기를 맞지 않았던 것이다. 발전한다고 느낄 때가 가장 좋다는 그의 말이 그와 어울리는 말임을 알 수 있었다.
삼성전기를 나와 교수 임용에 합격한 그의 모습에 나조차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론을 알고 있으니 그가 현재 교수는 아니지만 혹 중간에 교수를 하다 그만둔 걸까 싶었다. 교수의 명예와 시스템이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는 것을 독자인 나도 알겠으니 말이다. 결국 그는 생명공학 전공자들이 대부분이 임직원 300여 명의 중소기업인 시젠이라는 회사를 선택했다. 그와 어울리는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
그가 설명한 절대값 기준의 판독에 대한 이해도는 낮았지만 팀빌딩 3개월 만에 성과를 이뤄냈다는 것만큼은 정확히 이해했고 이것 역시 그와 어울리는 결과이지 않았나 싶다. 그 후 2년이 넘도록 집에서는 잠만 자는 생활을 했던 그가 건강하다면 그것도 참 이상할 노릇이다. 대단한 성과를 이룬 것은 맞지만 어디에나 댓가가 따르는 법. 결국 대장암 진단을 받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나의 인생을 이렇게 마감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로 대장암을 이겨내고 평생 장루를 끼고 살 수도 있었지만 젊음의 의지가 장루와의 이별을 만들어주어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기서 그의 집요함에 또 놀란 것, 수술 3일 차에 노트북을 켜고 창업기획서를 쓰고 1주일 만에 마무리됐다는 것이다. 대장암 투병 중 퇴사를 결심하고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도 놀랍지만 또 다른 삶을 병상에서 준비했다는 것 또한 미래를 위해 할 수 것을 선택한 삶이지 않아 싶다.
대장암으로 받은 보험금 7500만 원, 그것이 그의 창업 자금이 되었다. 박사논문이 네이처 자매지에 게재되고 그 후 3편이 연이어 게재된 것도 창업에 큰 도움을 주었다. 미국에서 연구하던 시절부터 '미생물막 제거 기술'로 제품을 만들어 사업을 해보고 싶었던 그는 창업 아이템으로 정하고 도전했다. 전 직장에서 일했던 상무가 '김영욱이라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함께하겠다'며 투자도 해주었고 전직장 팀원들도 그의 열정과 집요함을 함께했다.
투자를 받기 위해 노력하고 시제품을 완성품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 과정이야 벤처기업, 스타트업들이 성공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다. 나 역시 스타트업에서 일을 해봤기에 누구보다 피부로 느끼며 3부를 읽어나갔다. 그의 트로마츠 기술이 인정을 받고 로열티를 지급받을 만큼의 성공을 이룬 것은 이미 이 책이 나온 이유가 될테니 3부의 과정은 굳이 글로 리뷰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회사 시스템 구축을 위한 노력은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인재들로 배치하였기에 지금의 그가 있을 테니 말이다.
'의사가 됐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스스로의 질문에 역시 사업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결론, 그게 바로 김영욱이라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의사라는 직업은 안정적인 자리일테니 그 자리를 만끽하며 살아갈 사람이 아님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적성이 '문제 분석'이니 의사였어도 분명 문제를 찾아내어 분석하고 집요하게 해결해 나가고자 노력했으니 말이다.
안개속으로 들어가 보라. 마음속의 열망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현실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면 안개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나에게는 굉장히 공감 가는 말이다. 나 역시 안개속을 들어가는 것에 익숙하고 그것이 위험하거나 공포스럽더라도 가보지 않으면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의 마지막 말이 퍼시스턴트 라이프를 이야기한다. 절대 굴하지 않고 꿈을 향해 끈질기고 집요하게 나아가는 그의 인생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앞으로도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되겠지. 그의 집요함이 활력이 넘쳐서 좋았다. 그의 열정과 집요함이 나태함으로 찬 누군가, 두려움에 찬 누군가, 공포에 찬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를 통해 좀 더 많은 퍼시스턴트의 삶을 도전하는 이가 생겨나게 될 것이라는 확신마저 드는 책이다. 매력적인 사람이다. 아주 흥미로운 사람이다. 그의 또 다른 발명이 우리의 삶의 평온함에 기여해주길 기대하며 그의 책 마지막 문장을 남겨본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들'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잘 관찰하면 수정하고 보완해야 하는 것들이 뜻밖에 많다. 일상을 관찰하고 문제를 정의한 후에 끈질기게 해결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위험을 감수하는 자에게 '발명가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