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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훈 Jun 21. 2017

SCREEN WAR Ⅲ

<씨네21> 896호 기획 기사/멀티플렉스는 지금 테크놀로지 전쟁 중

(*2013년 3월 <씨네21> 896호에 썼던 기사입니다)

도산, 도산, 도산. 북미시장에서 극장이 노다지인 건 오래전의 얘기다. 이미 10년 전부터 LCI 같은 거대 멀티플렉스가 하나둘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2대 영화관 체인기업 AMC가 중국 완다그룹에 인수된 사건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지난해 말 미국영화협회(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 MPAA)가 발표한 2011년 미국 영화산업 보고서를 잠깐 살펴보자. 북미 총관객수는 전년도에 비해 4% 하락한 12억8천여명이다. 1인당 평균 영화관람 횟수는 전년도의 4.1회에 비해 0.2회 감소한 3.9회다. 반면, 집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은 늘었다.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는 무려 5억4860만달러(약 6583억원, 2012년 상반기 기준)의 수익을 올렸다. 전년도에 비해 5배나 증가한 금액이다. 블루레이 디스크는 17억달러(약 2조400억원)어치나 팔렸다. 그러니까 미국 관객은 극장보다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소리다. 바꿔 말하면, 북미 극장은 관객을 불러모으는데 실패했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멀티플렉스 체인들은 이 같은 상황을 먼 나라 이야기, 딴 나라 사정이라고 흘려들을까. 아니다. 한국의 멀티플렉스 역시 안방 극장과 보이지 않는 전투를 치르는 중이다. 극장 환경 못지않은 TV(혹은 IPTV)에 대항해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국내 메이저 멀티플렉스 업체인 CJ CGV(이하 CGV)와 롯데시네마가 2010년부터 벌이고 있고 현재도 가속화하고 있는 테크놀로지 경쟁은 자존심을 건 신경전이 아니다. 한명의 관객이라도 더 자사의 극장으로 불러모으려는 필사의 생존 전략이다.    

중제; 스크린 수, 라인업에 이어 이번엔 ‘기술’戰


선전포고를 한 건 CJ CGV(이하 CGV)였다. 2005년 4월14일 아이맥스사와 국내 독점 사업 계약을 체결한 뒤 CGV는 CGV용산에 IMAX관을 첫 개관했다. 운동장만 한 스크린 크기를 두고 당시 CGV는 “영사 시스템의 지존”이라는 표현을 써서 보도자료를 낸 바 있다. 이때만 해도 전면전은 아니었다. 롯데시네마의 한 관계자는 “아이맥스라는 게 스크린 크기가 큰 브랜드일 뿐이다. 그만한 크기의 스크린은 롯데시네마에도 있다. CGV의 IMAX가 과대평가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아바타>가 개봉한 2010년 여름을 전후로 상황이 바뀌었다. CGV와 롯데시네마는 서로 앞다투어 3D 상영관을 늘려갔다. CGV는 ‘IMAX관에서 보는 3D’라는 신무기를 꺼내며 “3D라고 해서 다 같은 3D가 아니”라고 우위를 선언했다. 실제로 CGV는 IMAX 3D로 <아바타>와 최근의 <어벤져스>까지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 이후 CGV가 새로운 무기를 내놓으면 롯데시네마가 그것과 비슷한 무기를 개발해 맞불을 놓는 식의 양상이 이어졌다. (단, 무인발권기는 롯데시네마가 먼저 선보였다). 지난해 CGV가 입체음향 시스템인 SOUNDX관을 내놓자 롯데시네마는 이에 질세라 3D 입체음향 시스템인 AURA관을 개관했다. 비슷한 시기에 CGV가 영화 속 장면을 물, 바람 등을 맞으며 온몸으로 체험하는 4DX를 개발하자 롯데시네마는 4DX에서 X자를 뺀 4D를 내놓았다. 

올해 2월, CGV는 ScreenX라는 새로운 상영 시스템 개발을 발표했다. 좌석 정면과 좌, 우 벽면 총 3면이 하나의 스크린을 구성하는 상영 시스템이다. 지금은 영화 상영 전 몇편의 광고를 통해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중이다. 그리고 김지운 감독과 함께 ScreenX 상영을 목적으로 한 단편영화 <하이드&시크>(출연 강동원, 신민아)를 제작했다(영화는 현재 촬영을 완료했으며 올해 상반기에 공개할 예정이다). CGV 홍보팀 김대희 과장은 ScreenX를 두고 “세계 최초의 3개면 상영 시스템”임을 자랑스러워했다. ScreenX 같은 새로운 상영 시스템은 아니지만 롯데시네마는 그에 맞설 물량공세를 펼치고 있다. 서울 잠실의 제2롯데월드 내에 완공될 22개관 4500여석 규모의 롯데시네마 롯데월드점이 그것이다. 롯데시네마 홍보팀 임성규 과장은 “현존하는 최고의 최신식 극장을 보여줄 것”이라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멀티플렉스가 테크놀로지 경쟁에 열을 올린 건 최근의 일이다. 모든 산업이 그렇듯이 멀티플렉스 역시 많은 관객을 유치한 뒤 관객의 충성도를 높이는 게 사업 전략의 목표 중 하나다. 1998년 CGV강변 개관을 시작으로 멀티플렉스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당시 멀티플렉스의 최대 관심사는 ‘땅 따먹기’였다.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 혹은 주거지 주변에 입점해 스크린 수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최대 목표였다. 좋은 목을 잡는 것이 멀티플렉스 1차 전쟁의 핵심이었다면, 최신식 시설을 앞세워 기존 극장들을 제압한 2003년 이후에는 계열 투자배급사를 앞세운 대리전이 시작됐다. 보다 많은 관객을 극장에 이끌 수 있는 컨텐츠를 확보하는 것, 이른바 라인업 전쟁이었다. 하지만 라인업 전쟁의 출혈과 리스크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2008년부터 한국영화에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극장가는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침 전세계적으로 디지털 열풍이 불어닥쳤다. 극장 역시 필름 대신 디지털 상영을 본격화했고, 3D의 기술에 힘입은 <아바타>가 전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극장은 특정 기술로 제작된 콘텐츠를 상영하기 위한 관련 테크놀로지를 앞다퉈 장착했다. 지난 15년여간 멀티플렉스는 몸집을 불리고(스크린 수 확보), 무기를 확보한 뒤(라인업 확보), 최신식 기술을 장착해온(특별관), 끊임없는 진화의 역사였다.


중제; 서비스의 진화? 수익 노린 꼼수?


그렇다면 멀티플렉스가 테크놀로지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의 상영관을 업그레이드하거나 테크놀로지를 장착한 특별관을 새로 짓는 건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은 사업인데 말이다. “멀티플렉스는 멀티플렉스만의 새로운 시각적인 즐거움과 스펙터클을 계속 제공해야 한다. 그게 TV 매체와의 차별점”이라며 관객의 다양해진 취향과 높아진 눈높이를 반영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다. CGV 김대희 과장은 “특별관을 만든다고 해서 그 자체로 관객이 만족하는 건 아니다. 3D나 HFR 같은 기술로 제작된 콘텐츠가 특별관에 상영됐을 때 관객은 극장을 찾는다. 그런 콘텐츠를 상영하기 위해 특별관을 만드는 거다. TV는 IPTV 같은 방식으로 진화하며 관객을 TV 앞에 붙잡고 있다. 그런 관객을 계속 극장으로 오게 하려면 극장도 진화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물론 높은 투자 비용에 대한 우려와 고민도 있다. 롯데시네마 임성규 과장은 “꼭 극장 사업이 아니더라도 기업이 새로운 사업을 하거나 비용이 많이 투입되는 어떤 시도를 할 때 반대 의견이라기보다 어느 정도 우려는 있다”며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이 사업은 관객을 극장으로 다시 찾게끔 하는 것이 관건이다. AURA나 4D 같은 새로운 기술과 무인발권기 로봇인 시로미 같은 흥밋거리를 계속 개발함으로써 관객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관객이 극장을 찾으니까”라고 말한다. 극장 쪽에서 파악하는 관객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CGV는 “액수를 밝힐 수 없지만 특별관 운영을 통해 기대 이상의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시네마는 “결국 양사의 치열한 경쟁이 관객에게는 좋을 것 같다.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멀티플렉스를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라고 밝혔다. 

한편에선 극장간의 테크놀로지 경쟁이 극장 요금을 다변화함으로써 수익을 늘리기 위한 목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최신식 시설과 장비를 갖춘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을 운영하고 있는 정상진 대표는 말한다. “4년째 극장 요금은 그대로인데, 극장을 유지하는 비용은 매년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그러다보니 극장 수익을 올려야 하기에, IMAX나 3D 그리고 HFR 같은 특별관을 운영해 요금을 다변화하게 된다.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냐고? 물론 비용 부담이 크다. 그럼에도 기업이 투자하는 건 수익이 있기 때문이다.” 


중제; 위기 의식이 부른 생존을 위한 전쟁


경쟁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창작자에게 멀티플렉스의 기술적 환경은 이런저런 시도를 가능하게 해준다. 3D영화를 제작한 바 있는 한 제작자는 “상영관 환경 자체가 현존하는 기술적인 포맷을 전부 소화할 수 있더라. 생각했던 것보다 3D 상영관도 어마어마하게 많고. 가령, 개봉을 앞둔 <미스터 고 3D>와 수년 전 흥행했던 <아바타>의 3D 상영관 인프라는 완전히 다르다. 물론 3D 같은 테크놀로지로 제작한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수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만드는 사람이 상영 환경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장점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멀티플렉스의 테크놀로지 경쟁은 관객 서비스에 대한 재투자일 수도 있다. 극장 요금을 다변화함으로써 수익 창출을 꾀하는 방편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멀티플렉스간의 테크놀로지 경쟁은 관객이 극장을 더 많이 찾게 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극장의 위기 의식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가 테크놀로지의 경쟁으로 나타난 것 같다. (극장 환경 못지않은)TV 앞에 앉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고 나오게 하려면 극장만의 새로운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영진위 김보연 정책센터장은 말한다. 현재 멀티플렉스의 테크놀로지 경쟁, 아니 전쟁은 그들이 안고 있는 심각한 위기 의식과 불안감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지금, 멀티플렉스는 생존을 위한 사활을 건 전쟁을 벌이고 있다.  

김성훈  



멀티플렉스 15년 전쟁사(1998∼2013)


제1차 _ 체인 경쟁

1998년 CGV강변 개관과 함께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렸다. 이듬해 10월, 롯데시네마는 일산점을 시작으로 극장 사업에 진출했다. 2000년 5월13일 메가박스는 테헤란로 땅 아래에 코엑스점을 개관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상권이나 유흥가에 위치했던 과거 단관 극장과 달리 멀티플렉스는 주택가를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보다 좋은 입지, 보다 많은 사이트 및 스크린 확보’라는 기치를 내세운 CGV, 롯데, 메가박스 등 업계 삼두마차의 위용은 가히 대단했다. CGV는 개관 4년 만에 전국 스크린 100개 시대를 열었다. 롯데시네마는 롯데백화점 유통망을 바탕으로 개관 6년 만에 극장 수 45개를 돌파했다. 메가박스 역시 강남의 랜드마크가 된 코엑스점에 힘입어 개관 2년도 채 안돼 투자자금을 전부 회수했다. 이들의 사이트 선점 경쟁은 과열됐고, 2000년대 초 전국의 주요 도시는 이들 극장 체인으로 얽히게 됐다. 


제2차 _ 배급 경쟁

스크린 수가 늘어나면서 멀티플렉스는 그 많은 스크린을 소화할 영화가 필요했다. 2002년 당시 메가박스(현재는 중앙일보 계열사인 ISPlus(일간스포츠)의 자회사)를 운영했던 오리온그룹은 쇼박스라는 별도 법인을 설립해 영화 투자·배급 사업 진출을 선언했고, 그해 <색즉시공>의 흥행으로 배급시장에 안착했다. 롯데그룹은 2004년 <나두야 간다>와 <인형사>를 시작으로 영화 투자·배급 사업 진출을 결정했다. 배급 전쟁이 본격화한 것이다.  2003년 12월,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는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낭만자객>에 대해 스크린을 내줄 수 없다고 했다가 이를 번복했다. CJ가 계열사인 CGV에 프린트를 넉넉하게 내주는 반면, 경쟁사인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 등에는 1벌 이상 내주지 않는 방식으로 견제했다는 게 이유였다. 표면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공룡 업체들 간의 싸움은 적지 않게 반복됐다. 한편, 이 시기 와이드릴리즈의 수혜를 얻지 못한 중소 규모 영화들은 최소한의 상영일수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떨어져나갔다.  


제3차  - 기술 전쟁

멀티플렉스의 테크놀로지 경쟁에 불씨를 붙인 건 <아바타>(2010)였다. 한국에서만 1248억여원의 매출을 올린 <아바타>의 흥행 덕분에 당시 멀티플렉스는 전체 스크린 수의 30%를 3D 상영관으로 탈바꿈했다. 상영의 디지털 바람과 맞물려 멀티플렉스는 IMAX, 3D를 비롯한 4DX, SOUNDX, AURA 등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장착해갔다. 2013년 3월 현재, CGV는 10개의 IMAX관, 16개의 4DX관, 13개의 SOUNDX관, 3개의 스타리움관을 운영하고 있다. ScreenX는 현재 CGV여의도 전관에서 광고를 통해 상영되고 있다. 롯데시네마는 파주 아울렛, 경기 평촌과 광주 수완 등 총 6개관에 AURA를 운영하고 있고, 진동 좌석인 V-seat를 3개관에 깔았다. 최대 64개의 다채널 사운드를 선보이는 돌비 애트모스는 서청주관에 설치한 상태다. CGV와 롯데 양사의 테크놀로지 전쟁은 지금부터다.

김성훈 


이 기사는 <씨네21> 896호 기획 기사입니다. 무단 발췌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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