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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훈 Sep 24. 2017

배우를 배우로 만드는 사람

송종희 분장감독의 충무로 19년 스토리

*이 기사는 2014년 4월 <씨네21>에 실린 기사입니다. 무단으로 발췌할 경우 법적 책임을 강력하게 물을겁니다. 


글 김성훈 <씨네21> 기자 

김태용 감독은 발을 동동 굴렀다. <만추>(2011)의 테스트 촬영 결과, 현빈과 탕웨이의 얼굴이 밋밋하게 나왔다. 미국인 분장스탭이 두 배우를 할리우드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시아인처럼 망쳐놓은 탓이다. 크랭크인이 코앞인데, 훈(현빈)과 애나(탕웨이), 두 주인공의 정서를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게 더욱 큰일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스탭을 교체할 시간이 있다는 것. 그렇다면 누가 적역인가. 하지만 당장 태평양을 건너올 수 있는 분장스탭은 당시 아무도 없었다. 그때 류성희 미술감독이 캐나다 밴쿠버에서 유학 중인 ‘그녀’를 떠올렸다. 제작진의 구원 요청을 받은 ‘그녀’는 단숨에 시애틀로 날아왔다. 그 소방수가 바로 분장감독 송종희였다. 그의 합류 덕분에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현빈의 ‘울버린’ 헤어스타일과 탕웨이의 수척한 ‘맨 얼굴’이 탄생할 수 있었다. “작은 체구로 미국인 분장 어시스턴트들을 이끌며 때로는 엄격하게, 또 때로는 열정적으로 현장의 분위기를 주도한 그는 천군만마였다”는 게 김태용 감독의 후문이다.


<만추>의 제작진이 송종희 분장감독을 부른 이유는 단지 그가 시애틀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밴쿠버에 있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류성희 미술감독을 포함해 김태용 감독, 김우형 촬영감독, 조상경 의상감독 등 <만추>의 한국 스탭 모두 그만 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송종희가 누군가. <괴물>(2006)에서 염색했다가 관리를 하지 않아 검은 뿌리가 약간 자란 송강호의 노란색 머리카락, <인어공주>(2004)에서 도시와 시골 여자 1인2역을 맡은 전도연의 각기 다른 피부색, <올드보이>(2003)에서 최민식의 갈기머리, <복수는 나의 것>(2002)에서 신하균의 초록색 머리카락 등. 영화 관객 사이에서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수많은 한국영화 속 캐릭터들의 외양을 창조해온 분장감독이 아니던가. 하지만 <김씨 표류기>(2009)를 끝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특수분장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밴쿠버행 비행기에 오른 그였다. 어쨌거나 <만추> 제작진은 약 2년 동안 현장을 떠나 있던 그를 믿었고, 송종희는 동료의 믿음을 실력으로 보답했다.


중제: 동경과 좌절을 안겨줬던 첫 영화 현장


분장감독 송종희가 배우 얼굴에 분을 바른 지 올해로 19년째. 처음부터 그가 분장에 대한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충무로에 뛰어든 건 아니었다. 집안에 영화인이 있거나 어릴 때부터 열광적으로 영화를 보고 자란 것도 아니었다. 분장이 그의 인생에 뛰어들어온 건 그저 우연이었다. 지인이었던 모델을 따라간 메이크업 숍에서 외모가 변신되는 과정을 보고 분장에 매료됐다.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무언가를 그린다는 점에서 분장이 미술과 비슷하게 보였다. 해보면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분장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분장의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한 뒤 미술 공부를 관두고 숍에 나가기 시작했다. “집에서 반대하지 않았냐고? 계속 반대하셨다. 상업영화로 잘 풀렸는데도 부모님께서 한동안 반대하셨다. (웃음)”


실전 분장의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숍에서 약 1년 동안 손정숙 선생으로부터 분장 사사를 받던 중이었다. 스승의 소개로 당시 충무로에서 활동하던 김선진 분장감독의 팀에 막내로 합류할 수 있었다. 그때 투입됐던 첫 작품이 기획시대가 제작했던 <미스터 김치박사>(1993). 김형구 촬영감독이 AFI(American Film Institute) 졸업하기 전 한국에 잠깐 왔다가 촬영을 맡은 작품이었다. 난생처음 경험한 촬영장은 어린 송종희에게 신세계였다. “되게 좋았다. 사람들의 에너지가 넘쳤고.” 하지만 경험이 일천해 실수도 많았다. “분을 두껍게 발랐다고 지우고 다시 바르기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새로운 세계를 만난 대가는 혹독했다. “결국 잘렸다. 일도 못하는데 성질도 더럽다고. (웃음)” 충무로는 그에게 동경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졸지에 분장팀에서 쫓겨났지만 인복이 따라주는 사람에게 기회는 또 찾아오는 법. 송종희는 지인의 소개를 받아 손진숙의 분장팀에 다시 막내로 들어갔다. 손진숙 선생은 대학로에서 연극 분장으로 매우 유명했다. 연극 역시 처음이었던 그는 대학로에서 평생의 인연을 만나게 된다. 오태석 선생의 연극 <자전거>(1994)에서 ‘당숙’을 연기했던 20대 송강호였다. 당시 송강호는 극단 목화의 막내였다. “나도 막내였고, (송)강호 선배도 막내였다. 그래서 강호 선배 얼굴에 분을 바를 수 있었다. 강호 선배보다 선배였던 (김)윤석(당시 <자전거>에서 ‘임 선생’을 연기했다) 선배 얼굴에는 못 발랐다. 막내 분장은 선배 얼굴에 분을 바를 수 없다는 불문율이 있었기 때문이다. (웃음)” 송종희와 송강호 두 사람은 박찬욱 감독의 출세작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다.


그가 분장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극판에서 1년을 보내고 다시 충무로로 넘어가 이명세 감독의 <남자는 괴로워>(1995), 오병철 감독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두 작품에 분장조수로 참여했다. “어린 마음에 일을 잘해서 다음 작업도 해야지 그런 생각보다 단지 영화가 좋으니까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의 각오는 노력으로 이어졌고, 노력은 실력이 되었으며, 실력은 곧 결과로 나타났다. 분장에 발을 들여놓은 지 5년도 채 되지 않아 <그들만의 세상>(1996)으로 입봉했다. 이병헌과 정선경이 주연을 맡은 임종재 감독의 작품. 송종희에게 이 작품은 “지금 일하는 방식의 뼈대가 됐던 작업”이었다. “매일 제작사 사무실에 나가 감독님과 함께 작품,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과정을 통해 인물을 만들어갔다. 기술적인 분장 작업은 그다음 단계다. 지금 일하는 스타일은 그때 형성된 것 같다.”


중제: 배우와 감독 사이의 조율자


데뷔작 <그들만의 세상>의 임종재 감독과의 작업이 “작업의 기초”가 되었다면 <공동경비구역 JSA>를 시작으로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까지 줄곧 함께한 박찬욱 감독과의 작업은 “영화는 과감해도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준 작업”이었다. <복수는 나의 것> 때였다. 박찬욱 감독이 신하균이 연기한 청각장애인 ‘류’의 머리카락을 초록색으로 염색하길 원했다. 말을 하지 못하는 류가 세상에 표현하고 싶은 색이 초록색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한국영화에서 초록색 머리카락이라니. 하지만 초록색 머리카락을 한 신하균을 보자 희망적인 것들이 갑자기 부각되었다. 내가 부족했구나. 과감하게 표현해도 되는구나.” 최민식의 갈기머리(<올드보이>), 이영애의 긴 헤어스타일과 스모키 화장(<친절한 금자씨>), 김혜수의 사자머리(<얼굴없는 미녀>(2004)) 등 과감하면서도 창의적인 스타일이 차례로 선보이게 된 것도 표현에 대한 고정관념이 무너지면서부터다. 박찬욱을 비롯해 이창동, 봉준호, 임상수, 정지우, 이해준 등 한국 최고의 감독들이 그런 그를 눈여겨봤을까. 그즈음, 송종희에게 작품이 몰리기 시작했다.


“여배우는 단지 예쁘게만, 남자배우는 단지 멋지게만 표현하는 게 아니라 시나리오 속 인물에 적합한 표현을 충무로에서 가장 잘한다.”(명필름 심재명 대표) “시나리오만 잘 해석하는 게 아니라 과감한 표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류성희 미술감독, 이경미 감독) 송종희와 함께 작업한 동료 영화인들은 그를 두고 “시나리오 해석이 뛰어나고, 해석한 것을 과감하게 표현할 줄 아는 분장감독”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올드보이>에서 보여준 최민식의 갈기머리도 시나리오를 충실하게 해석한 결과물이다. “최민식 선배가 연기한 오대수는 오랫동안 억눌려 있었던 사람이다. 다혈질인데 그걸 표출하진 못하고.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아주 지독한 곱슬머리를 만들어보자. 아무리 펴려 해도 펴지지 않는 그런 곱슬머리”였다는 게 송종희의 설명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배우가 납득하지 못하면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게 분장의 숙명이 아닌가. 류성희 미술감독은 “당시 대회의실에서 제작진, 출연진 모두 앉아 있었는데 송종희가 갈기머리를 제안했다. 그걸 들은 (최)민식 선배가 화를 내셨다. “내가 양동근이냐?”면서. (웃음)”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선배 배우한테 당하고 있던 송종희 분장감독이 안쓰러웠을까. 박찬욱 감독은 “한번 해보자. 뭔가 생각한 게 있으니 저렇게 고집을 피우는 게 아니냐”고 중재했다. 결국 송종희의 ‘괘씸한’ 아이디어는 최민식의 찰랑찰랑한 머릿결을 쿠킹 포일로 지져놓았다.


그때는 혈기왕성한 시절이었다. 학연도, 지연도 없는 작은 체구의 그가 충무로라는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은 누구보다 일을 잘하는 것뿐이었다. <미쓰 홍당무>(2008)에서 미숙(공효진)이 종희(서우, 이경미 감독이 송종희 분장감독의 이름에서 따왔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너 착하게 살지 마라. 그럼 사람들이 너한테 못되게 군다. 근데 니가 못되게 굴잖아? 그럼 사람들이 착하게 굴어. 그리고 너 아무것도 열심히 하지 마. 그래봐야 너만 손해야.” 이 대사는 실제로 송종희 분장감독이 과거에 했던 말인데, 그걸 인상적으로 들었던 이경미 감독이 대사로 인용한 것이다. “지금은 열려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완강하고 방어적이었던 것 같다. (웃음) 학벌이나 연줄로 이 바닥에 들어온 게 아니라서 약간은 피해의식도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남들이 공격하기 전에 내가 먼저 공격하기도 했고.” 어쩌면 그런 절박함이 송종희가 이 악물고 작업하게 된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분장과 의상은 특히 배우와의 관계가 중요한데 송종희는 배우들이 잘 따른다.”(봉준호 감독) “분장실에서 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뒤 카메라 앞으로 보내준다.”(정정훈 촬영감독) 봉준호, 정정훈의 말처럼 송종희와 함께한 배우들은 현장에서 힘들 때마다 분장실을 먼저 찾는다. 현장에서 배우와 트러블을 일으킨 감독이나 스탭은 송종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송강호나 전도연 같은 배우들은 출연 계약할 때 송종희와 함께해야 한다고 제작사에 추천하기도 한다. 그만큼 배우들이 송종희를 믿고 또 편하게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은 “현장에 도착하면 먼저 분장실에 들러 ‘변희봉 선생님 오늘 기분이 어떠신가?’라고 물어본다. 그렇게 배우들의 컨디션을 체크한 뒤 촬영을 준비했다”고 <괴물> 때 일화를 털어놓으며 “그는 과감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동시에 감독과 배우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주는 분장감독”이라고 평가했다.

배우 박해일 역시 “단순히 얼굴에 분을 잘 바르는 게 아니라 분장을 하면서 배우의 컨디션을 보이지 않게 체크해준다. 그날 찍어야 할 장면의 감정을 무리 없이 보듬어주는 분”이라고 말했다. 함께 작업했던 동료들의 말을 들어보면 송종희는 “시나리오 해석이 뛰어나고 표현을 창의적으로 하는 데다가 배우의 컨디션까지 잘 챙기는 분장감독”임이 분명하다. 오랫동안 많은 감독과 배우들이 그를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중제: 특수분장 유학 이후 만들어낸 ‘이적요’


<밀양> <모던보이> <미쓰 홍당무> <박쥐>를 연달아 하면서 전성기 가도를 달리던 2008년쯤, 그는 유학행을 선언했다. 당시 송강호는 “분장감독으로서 안정적인 지위를 굳이 버릴 필요가 있나”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송종희는 당시를 떠올렸다. “15년 가까이 분장 일을 하면서 매너리즘 같은 게 찾아왔던 때다. 에너지가 바닥났고, 이 직업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다. 운 좋게도 좋은 감독과 배우들과 함께 작업해왔음에도 인생의 전환점이 필요했다.” 그는 밴쿠버로 가서 영어부터 공부했다. 그리고 다음해 ‘밴쿠버 필름 스쿨’의 메이크업 전공에 입학해 분장에 대한 기초를 다시 배웠다. 그에게 유학 생활은 “충무로에서 해온 것들을 검증받는 시간”이었다. 여러 커리큘럼 중 가장 열중했던 건 특수분장이었다. “석고 작업으로 만든 (석고) 덩어리가 너무 아름다웠다. 3박4일 동안 잠도 거의 못 자고 석고 작업에만 빠졌다. 예전에 박찬욱 감독님이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보면서 극중 인물의 노인 분장이 정말 자연스러운데 왜 우리나라는 저렇게 못하는 거야. 저렇게 만들 수만 있다면 시나리오를 더 잘 쓸 수 있을 텐데’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때는 내 일이 아니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특수분장을 공부하면서 노인 분장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약 2년간의 소중한 유학생활은 그의 손에 새로운 무기를 쥐어줬다. 그 무기가 바로 특수분장이다. 마침 충무로도 분장감독으로서 후반부 인생을 준비하고 있던 그의 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충무로 컴백작인 <은교>(2012)였다. 그의 임무는 막중했다. 박해일을 70살 노인 ‘이적요’로 바꾸는 것. “너무 힘들었다. 많게는 12시간, 적게는 7시간 동안 걸리는 분장도 힘들었지만 분장을 제대로 못하면 촬영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너무 절박했다. 날씨가 너무 더운 날에는 분장이 잘 안 붙기도 했고. 고통스러웠다. 박해일이 대단했던 것도 그거다. 보통 배우들은 3시간 견디는 것도 못 참는데 그는 군말 없이 매일 7, 8시간씩 분장을 받았다.” 작품이 끝난 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는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었다. 그 결과가 우리가 극장에서 본 그 ‘이적요’였다.


<은교> 이후 송종희 분장감독은 페이스를 서서히 끌어올리는 중이다. <청출어람>(2012)에서 송강호의 노인 분장을 했고, <집으로 가는 길>(2013)에서 ‘전 배우’ 전도연의 맨 얼굴을 또 내보였다. 박찬욱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엄태화 감독의 <잉투기>(2013)에서 “젊은 세대의 캐릭터를 작업하는 새로운 경험”도 했다. 그리고 현재 그는 두편의 영화를 동시에 찍고 있다. 하나는 막바지 촬영 중인 최호 감독의 <빅매치>이고, 또 하나는 <김씨 표류기> 이후 다시 만난 이해준 감독의 신작 <나의 독재자>. 두편 모두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그동안 액션영화를 해본 적이 없는데 <빅매치>는 그런 점에서 새로운 작품이다. 설경구를 김일성으로 분장해야 하는 <나의 독재자>는 <은교> 때 작업했던 노인 분장을 좀더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어쨌거나 데뷔부터 유학가지 전까지를 1막, 유학 시절을 2막에 비유한다면 송종희는 어느덧 분장감독 인생의 3막에 접어들었다. 19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수많은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왔지만 여전히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캐릭터들이 많다. “할리우드에 가면 60대 할머니 분장감독이 20대 배우 얼굴에 분을 바르지 않나. 충무로에서 그 풍경을 보고 싶다”는 박해일의 바람처럼 매 작품 진화해온 송종희라면 아주 불가능한 풍경도 아닐 것이다.


박스/ 

주제: 최민식이 싫어했던 갈기머리
부제: 송종희가 꼽은 자신의 분장 베스트 6

1. <은교>
“너무 큰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다. 정지우 감독님께 못한다고 말씀드렸다. 감독님께서 <해피엔드>와 <모던보이>를 함께하면서 내 안의 어떤 기질을 눈여겨보신 것 같다. 검증되지 않았지만 함께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촬영 전, 여러 단계의 이적요 모델을 만들었다. 새로 시도될 때마다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만들어갔다. 가야 할 길을 찾은 작품.”

2. <인어공주>
“전도연이 연순과 나영 1인2역을 맡았다. 당시 전도연이 머리카락을 자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가발을 씌울 수도 없었고. 도시여자 나영은 머리를 풀었다. 밝은 피부톤으로 어려 보이게 표현했다. 반면 제주도 해녀 연순은 머리를 묶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톤과 주근깨로 공간을 표현했다. 지금 봐도 완성도 있었던 것 같다.”

3. <올드보이>
“처음 갈기머리를 제안했을 때 최민식 선배의 반응이 기억난다. 너는 영화의 영자도 모른다고. (웃음) 되게 혼났다. 그때는 겁도 없었고, 혈기왕성하던 때라…. 다행스럽게도 결과가 좋았다.”

4. <미쓰 홍당무>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읽었다. 얼굴이 빨개지는, 안면홍조증에 걸린 미숙(공효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미숙이 이유리(황우슬혜)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한다는 설정을 감독님께 제안드리기도 했다. 미숙의 감정을 잘 이해했던 까닭에 내 마음을 미숙에게 가득 담아 작업했던 기억이 난다.”

5. <김씨 표류기>
“정재영씨 분장은 거의 보디페인팅 수준이었다. 가발을 씌워야 했고, 얼굴부터 손톱, 발톱까지 몸이 탄 효과를 내야 했다. 정재영씨가 야생 생활을 하면서 피부가 조금씩 탄다는 설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게 관건이었다.”

6. <괴물>
“괴물에게 납치된 고아성이 하수구에 갇힌 장면. 진흙이 고아성의 얼굴에 묻는 설정이었다. 피부에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게 하려고 밀가루와 식용 색소를 섞어 분장을 했다. 그때 봉준호 감독이 셀리 만의 사진집을 선물로 주셨는데 <괴물> 작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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