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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라떼샷추가 Dec 02. 2024

막춤이 널 자유케 하리니, 현대무용가 안은미

춤은 감상보다는 직접 춰야 제 맛


[들어가며]

내 몸에 해방감을 선사한

안은미와의 첫 만남



보름달 밝은 추석날 밤, 서울광장.

거대한 닭 인형에 올라탄 할머니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크레인 줄에 매달려)

오방색 한복, 빡빡머리에 토끼 머리띠를 한 모습

그 이상하고 놀라운 장면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같이 있던 아들도 입을 떡 벌리고 쳐다봤다.

지난 9월에 열린 서울거리예술축제 중

<쾌지나 칭칭나네!> 공연의 시작을 알린

그 할머니는 현대무용가 안은미였다.


화려한 등장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그녀는

청중을 얌전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신명 나는 공연들로 어깨를 들썩이게 하더니,

마지막엔 서울광장을 춤판으로 바꿔버렸다.

무용수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더니

관람객들 손을 잡고 무대로 이끌었다.

아저씨, 아줌마, 어린이, 외국인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은 저마다의 스텝으로 막춤을 즐겼다.


나도 그 춤판에 뛰어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빠라는 무게를 내려놓고

신나게 골반을 흔들었다.

입시, 결혼, 취업, 육아로 오랫동안 눌려 있던

내 몸속 리듬이 되살아나려던 찰나에,

아들이 내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아빠~ 이제 그만 집에 가지???"

"응... 그래... 가자... 가야지..."

아쉬움을 뒤로 한채 서울광장을 나왔다.

서울광장의 음악은 점점 멀어졌지만

내 발걸음은 여전히 그 리듬에 맞춰

작은 스텝을 밟고 있었다.


안은미와 첫 만남은 강렬했다.

지금도 내 몸은 안은미가 선사했던

자유와 해방감을 갈망하고 있다.

며칠 뒤에 안은미 무용가의 강연에

아들과 함께 참석할 예정이다.

나를 안달 나게 만든 장본인이자

아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예술가로서

안은미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졌다.


이 글에서는 내 인생에 훅 들어온

현대무용가 안은미'예술 세계'와

'성장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예술적인 인생을 살기 위한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고민해 본다.


서울거리예술축제2024 <쾌지나칭칭나네!> 공연 영상 캡쳐 (출처: 유튜브)





[작품 세계]

누구나 자신만의

몸짓으로 추는 춤



안은미는 반인들의 자유로운 몸짓(a.k.a 막춤)을

예술작품으로 표현해 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2010년부터 시작된 '땐쓰' 5부작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들에는 전문무용수 외에도

춤을 배워본 적 없는 일반인도 함께 참여했다.


땐쓰 5부작 중 초반 3개 작품은

성별과 연령에 따라 구분된다.

첫 작품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2010)는

몸으로 세월을 기억하는 할머니들과 함께했다.

안은미는 이 작업을 위해 무용수 4명과

3주 동안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할머니들의 막춤을 생생하게 촬영했다.

후속작인 <사심없는 땐스>(2012)는

순수한 고등학생들과 함께,

<무책임한 땐스>(2013)는

책임감 무거운 중년 남성들이 함께 했다.

작업 과정은 모두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땐쓰' 3부작의 성공에 힘입어,

안은미는 신체 장애인들과 함께

무대를 꾸미는 과감한 도전에 나섰다.

<안심땐쓰>(2016)는 시각장애인들이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을 풀어낸 작품이다.

6명의 시각장애인과 8명의 전문 무용수가

함께 출연해 작품을 구성했다.

<대심大心땐쓰>(2017)는 저신장장애인의

신체 특성에 따른 독특한 움직임을 풀어냈다.

2명의 저신장장애인과 8명의 전문무용수가

함께 출연해 작품을 구성했다.

두 작품에서 장애인들의 신체적 특징은

제약이 아닌 남다른 신체적 감각으로

작품 속에서 되살아났다.


위 작품들을 통해 안은미는

누구나 자신만의 몸짓으로

춤출 수 있음을 증명해 내고 있다.

'신체 장애인들 춤을 출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같은 편견에 빠져 있을

안은미는 "누구나 고유한 몸짓이 있다."라는

편견 없는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1]

그들의 내재된 에너지를 무대 위에서 드러냈다.

그녀에게 춤 복잡한 테크닉이나

칼군무로 동작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몸의 에너지와 생명력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여기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


<조상님을 위한 댄스>(2010)ㅣⓒ안은미컴퍼니
<사심없는 땐스>(2012)ㅣⓒ안은미컴퍼니, <무책임한 땐스>(2013)
<안심땐쓰>(2016)ㅣⓒ최영모/안은미컴퍼니,  <대심땐쓰>(2017)ㅣⓒ예술의전당





[제작 방식]

개성을 존중하며

조화를 만드는 접근



안은미의 작품에서 인상 깊었던 점 하나는

남자 무용수들이 반짝이는 스판 원피스와

원색 스타킹을 입고 무대를 누비는 장면이었다.

같은 남자로서 민망함이 느껴졌지만

작품이 진행될수록 그 감각은 무뎌졌다.

나중에는 무용수의 성별이 아닌

동작 자체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내 안에 있던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이

잠시나마 지워졌음을 느꼈다.


안은미의 작품에는 경계나 차별이 없다.

성별, 나이, 전문성, 신체 조건, 장애 등

다양한 특성을 지닌 사람들이 무대에 오르지만,

이 다름은 문제나 제약이 아니라

작품의 중요한 에너지로 활용된다.

이처럼 서로의 다름을 모아 조화를 만들어내는

안은미의 연출은 마치 마법과 같다.


안은미는 인터뷰에서 이 같은 조화를

만들어 내는 방법론에 대해 언급했다.

"제 작품에는 젠더를 구분 짓지 않아요.

성별에 따른 안무 구분은 없지만,

개인이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맡는 거죠." [3]


이 방법론은 작품 전반에 녹아 있다.

예컨대, 저신장장애인과 함께한

<대심댄스>의 제작 과정에서도 그녀는

출연자들에게 현대무용을 가르치기보다는,

전문무용수들과 함께 저신장 장애인들의

삶과 신체를 성찰하며 새로운 동작을 만들어냈다.

저신장 장애인들은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발달한 근력을 기반으로

독창적인 동작들탄생시킬 수 있었다. [4]


또한 <안심땐스>를 준비할 때에는

안은미 본인부터 눈을 감고 걸어보면서

시각장애인이 느끼는 걸음의 무게감을

감각적으로 느껴보는 연습을 했다. [5]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리서치와 자문,

참여자들과 1:1 토론 등을 통해

시각장애인에 맞는 무용 동작들을 구성했다.

시각장애인 참여자들은 전문무용수 곁에 붙어

이들의 동작을 손으로 만져가며 익혔다. [6]


안은미는 개개인의 개성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체적 조화를 이뤄내는 제작자이다.

작품을 위해 개개인의 특성을 끼워 맞추는

전체주의적인 접근과는 정반대이다.

안은미의 작품에서 감동이 느껴지는 이유는

울창한 숲 속에서 다양한 생명체들이

각자의 특성에 따라 조화를 이루듯이,

그녀의 무대에서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자연스럽게 빛나기 때문이다.


<거시기 모놀로그> 공연 장면 ㅣ출처: 정동국립극장ㅣ사진작가 : 옥상훈





[성장 과정]

고독한 탐구 속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진화



안은미는 7살 때,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전통 의복을 입은 한국무용가들을 보고

무용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되었다.

그 후 무용을 배우고 싶어

부모님께 간절히 요청했지만,

넉넉하지 않은 형편으로

바로 시작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은미는 춤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혼자서 춤을 추며 놀았다.

방마다 엄마 옷, 아빠 옷을 걸어놓고

1인 다역을 소화하면서 춤을 췄는데,

그렇게 7시간을 내리 놀았을 만큼

춤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대단했다. [7]


중학생 시절, 학교에 무용반이 있었지만

레슨을 받을 형편이 되지 않아

친구들이 수업을 받는 모습을

창문 밖에서 지켜보며 동작을 배웠다.

안타깝게 보일 수도 있는 이 경험은

안은미가 다른 사람들의 동작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있는 기회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동작을 관찰하는 태도가

이미 그 시기부터 만들어진 셈이다.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한 안은미는

1988년에 '안은미컴퍼니'를 창립하며

본격적으로 무용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활동 초기부터 안은미는 파격적인 작품들로

한국무용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공간》잡지에는 한국 무용계의

반복되는 표절 의혹질타하면서

안은미를 본받으라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8]


한국에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던 안은미는

1992년, 30세의 나이에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그 이유는 '더 큰 세계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9]

뉴욕 맨해튼의 뛰어난 무용수들이

잘하는 이유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 했다.

한편으로는 시집 잘 가고, 돈 많이 버는 등 

한국 사회가 주입한 성공에 대한 압력을 떨쳐내고

예술가로서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일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10]


뉴욕 맨해튼에서 9년을 보낸 안은미는

자신의 색깔과 이를 구현하는 방법론을

한층 성숙시키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안은미는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 뉴욕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을 관찰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 냈고

그 모습을 발전시켜 나갔다.

뉴욕 시절 동료는 "안은미가 항상

거울 앞에서 생명력을 발산하듯

춤을 추고 창작을 몰두했다"라고 증언할 정도로,

그녀는 열정적인 창작의 시간을 보냈다. [11]


2000년에 한국으로 돌아온 안은미는

대구시립무용단장으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입힌 작품을 선보였다.

당시 안은미가 보여준 <춘향>은

기존의 레퍼토리를 완전히 뒤집으며

열렬한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남성 품에 안기는 수동적 여성이 아니라

남성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독립적 자아로서

새로운 한국의 여성상을 담았다.

한국을 떠날 때 했던 다짐대로

안은미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관점을

더욱 단단하게 다듬어 돌아왔다.


안은미는 데뷔 35년이 넘은 지금까지

15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작품에 담긴 관점 역시 계속 진화해 왔다.

초반 25년의 작품은 사회와 시대를 향한

개인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었다면,

후반 10년 동안의 작품은

세상의 다양한 몸짓을 발굴하고 기록하고

기념하는 작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대상 역시 할머니, 청소년, 신체장애인 등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며 더욱 확장되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앞으로 안은미가 어린이와 관련해서도

어떤 활동과 공연을 선보일지 기대가 된다.

 

안은미 - (좌) GUCCI 사진전 '두 개의 이야기'ㅣ사진작가 : 김용호, (우) 국립현대무용단ㅣⓒBAKi





[시사점]

예술가 안은미가 보여준

삶의 태도 3가지

1.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

2. 개성을 살리며 조화를 이룬다.

3. 내게 맞는 맥락을 찾아간다.



자기 인생은 오직 자신만이 만들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발자취를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단순한 비교나 모방을 넘어,

아직 선택하지 않은 길에서

배울 수 있는 통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예술가 안은미가 보여준

인상적인 삶의 태도를 정리하는 것도

그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대무용가 안은미에 대해 조사하면서

인상적인 삶의 태도 3가지를 정리했다.


첫째,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

안은미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에게서

그들만의 고유한 신체 에너지와 감각을 살피고

특별한 점들을 발견해 냈다.

같은 사람이라도 그들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달라지기 마련인데,

정형화된 관점으로 사람을 바라보면

놓치게 되는 점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는 곧 편견과 차별로 연결되기 쉽다.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오래 보고, 자세히 보아야 비로소

각자가 그 속에서 간직한 특성

온전히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편견과 차별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서

반드시 가져야 하는 관점이라 생각한다.


둘째, 개성을 살리며 조화를 이룬다.

안은미는 일반인들과 작품을 준비하면서

이들에게 현대무용을 가르치기보다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몸짓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무대 연출과 전문무용수들을 통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만들었다.

안은미의 작품을 보면 개별 특성을 살리면서도

조화를 이루기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부분은 조직을 이끌었던 리더로서 내가

오랫동안 고민해 왔던 부분이기도 하다.

팀원 각자의 개별적 특성과 강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개인과 집단 모두 함께 성장하고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직접 해보니 말처럼 쉽진 않았다.

당장 달성해야 할 목표 앞에서

리더인 내게 익숙한 방식을 내세우고

팀원들을 이에 맞추도록 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런 면에서 안은미가 존경스럽다.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배우고 싶다.


셋째, 내게 맞는 맥락을 찾아간다.

안은미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현대무용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예술가로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한국을 떠나 뉴욕 맨해튼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성공과 결혼에 대한

사회적 압력에서 벗어나

예술적 정체성 확립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면

새롭고 어려운 도전이 예상되더라도

자신만의 환경을 만드는

선택과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일지라도

사회적 분위기로 인한 압력을 쉽게

떨쳐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

우리 가족 구성원의 면면을 봤을 때는

사실 한국의 맥락과는 잘 맞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잘 버텨온 것 같지만

과감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눈치를 보기보다는 용기를 내야겠다.

내가 육아휴직을 결단했던 것처럼.

이렇게 또 한 번 용기를 얻는다.




현대무용가 안은미

1963년 경상북도 영주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학사, 석사를 마치고 뉴욕 대학원 Tisch School of The Arts에서 수학했다. 안은미는 “인간은 춤추는 동물이다”라는 기조 하에 안무를 창작해 왔다.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춤의 자연사는 안은미가 창작하는 안무의 주요 주제다. 1988년 창단한 안은미컴퍼니는 한국, 미국, 유럽 등 세계무대를 대상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며,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신비한 색감과 언어, 에너지 유머를 특징으로 관습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춤으로 현재 세계 무용계에 주목을 받고 있다. 안은미는 무용과 연극을 결합해 서사성의 회복을 추구한 피나 바우쉬Pina Bausch의 ‘탄츠테아터tanztheater’를 범본 삼아, 아시아 문화 정체성이 담긴 시각적 장치와 서사 그리고 무용을 결합해 한국식 탄츠테아터의 영역을 개척한 장본인이다. 30년에 걸친 창작활동은 협업, 컬러, 트랜스포밍, 탈-위계를 퍼포먼스의 구성요소로 삼는다. 최근 작품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쓰>, <사심없는 땐스> 등은 프랑스, 체코를 비롯한 해외 무대에서 사랑을 받고 있으며, <안심땐쓰>, <대심땐쓰>, <바리>, <Let me change your name>, <안은미의 북.한.춤> 역시 큰 반향을 얻고 있다. 최근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Théâtre de la ville de Paris, 파리시립극장)의 상주예술가로 선정되는 등 근대 이후 최초로 개인 무용단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출처 : SDF 포럼 2019년 연사소개


데뷔 30주년 기념 <안은미래(Known Future)> 포스터 ㅣⓒ서울시립미술관

참고 자료

[1] 경기일보 인터뷰 (2013.9.22)

[2] 중앙일보 인터뷰 (2024.11.1)

[3] <객석> 인터뷰 (2023.8.14)

[4] 아주경제 기사 (2017.5.12)

[5]『공간을 스코어링하다』(2019)

[6] 상게서

[7] 국립현대미술관 인터뷰 (2021.12.8)

[8] <공간> 인터뷰 (1991.5월호)

[9] 『공간을 스코어링하다』(2019)

[10] 국립현대미술관 인터뷰 (2021.12.8)

[11] 『공간을 스코어링하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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