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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나윤 May 02. 2020

코로나 시대의 랜선 대학원

작년 9월 회사인에서 자유인이 되었을 때 대학원 진학을 계획했고 입학에 성공했다.

입학금과 등록금을 입금하며 이 거금, 반드시 본전 회수하겠다, 다짐했다. 공부에 필요한 물리적 심정적 준비를 마치고 입학만 기다리던 2월 어느 날, 돌림병이 나라를 집어삼키자 전국의 모든 학교는 문을 닫아걸었다. 나의 Y대학원도 개강을 연기한다는 메일과 개강 후 2주간의 강의는 온라인으로 대체한다는 메일을 1주일 간격으로 보내왔다. 그로부터 한 달이 다 돼가도록 학교 문턱도 넘지 못했다.


수강 신청 과목은 총 네 과목이다. 두 과목은 온라인 강의가 진행되었고 다른 한 과목은 교수님의 설명이 입력된 PPT로, 나머지 한 과목은 강의 내용 녹음이 포함된 PPT로 업로드되었다. PPT를 다 읽는데 걸린 시간 10분, 여차하면 본전을 건지기 어려울 수 있겠다 싶었다. 강의 내용이 녹음된 PPT를 열었을 때는 나이 든 교수님이 장시간 PPT 녹음 기능과 씨름했을 모습이 눈에 선해 성실한 학습으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들불처럼 일었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이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으로서 가지는 의미라는 것이...... 그......."

교수님은 PPT 3페이지에서 갑자기 설명을 멈추었고 나는 60초 후에 다음 내용이 공개되나 싶어 숨죽여 집중하였으나 말문이 막혀 신경질이 나셨는지 더 이상 교수님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5장의 PPT가 남았지만 첫 강의는 ‘… 그…’에서 그렇게 끝났다.


2주 예정이던 온라인 강의는 2주 더, 다시 2주 더 그리고 한 달 더 연장되었다. 입학금과 등록금으로 낸 그 돈, 미국 돈으로 계산하면 약 9천 달러, 그때도 컸고 지금도 큰 그 돈을 생각할 때마다 혈압이 올라 몸 져 눕기를 반복한다.  한 학기 전체가 온라인 강의로 대체될 수 있다는 비보를 접했을 땐 휴학을 희망하였으나 1학기는 휴학 불가라는 얘기를 들었다. 코로나가 날 잡는구나, 소리를 지르며 뒷목을 잡았다.

절망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기에 학습권을 보장받고자 PPT만 올려주시는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제발 얼굴을 보여 달라고, 사이버 세상에서라도 당신과 만나고 싶다, 애걸복걸했더니, ‘미안하다. 그럴 수 없다. 나도 힘들다.’라는 답변이 왔다.

이쯤 되니 온라인 강의에 불만은커녕 얼굴이라도 보여주는 두 교수님께 감사 편지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초등 1학년 입학을 앞둔 둘째 조카는 한글로 편지도 쓰고 수학도 잘하고 영어 단어도 많이 알게 되었으니 학교 갈 준비를 다 마쳤다며 의기양양했는데 나와 같은 공중부양 신세이다. 둘째 조카는 공중에서도 흔들림 없이 인터넷으로 한 시간씩 '스스로' 영어 공부를 한다. 그래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 헤드셋을 끼고 노트북 앞에 앉은 조카를 보며 9천 달러는 잊고 초심을 찾는 것으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개강 4주째, 여전히 학교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지만 330달러의 학회비도 냈고 매주 과제도 해야 한다.

과제로 읽어야 하는 중국사 책에 자신 있게 덤볐다가 메이드 인 차이나, 대륙의 역사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수십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을 부르는 이름이 보통 세 개, 이름이 세포 분열을 하니 지금 나온 이 사람이 아까 그 사람인가 책을 뒤지다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춘추전국시대는 잘 망했다. 7개 나라의 모래알처럼 많은 인물들이 550년 동안, 눈 떠 있는 모든 순간 싸움과 배신과 불륜을 반복한다. 상상 이상이다. 하루에 3시간씩 3일 동안 열심히 읽었는데 겨우 천하통일의 아이콘 진시황의 진나라가 문 닫는 시대에 이르렀다. 650페이지 분량의 책 총 세 권 중 아직 1권의 481페이지다.


입학 기분 같은 건 전혀 나지 않던 차에 원우회가 선물로 보낸 야구모자와 손세정제가 도착했다. 총 9천330달러에 대한 입금확인서 같았다. 그리고 랜선 총장님은 온라인 수업을 연장한다는 메일을 또 보냈다.

펜팔 친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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