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IMF가 터졌다. 1997년 12월 3일 전 국민을 혼란에 빠트린 그 뉴스의 의미를 제대로 모른 채 다음 날 출근했다. 회의 시간에 팀장은 심각한 얼굴로 세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IMF는 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 성인 남자가 겁을 먹고 대놓고 두려움을 표현할 정도로 큰 재난임이 분명했지만 나는 그 시절이 다 지나가도록 체감하지 못했다. 우리 회사는 아이들 교육 관련 업종의 대기업이었기 때문에 고용 위협도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이 된 것과 박세리가 골프대회 우승한 것 말고는 좋은 뉴스라고는 없었고 부자들도 수렁에 빠지던 때였지만 나와 내 주변인들은 운 좋게도 그 혼란에서 비켜났다.
“IMF 때보다 더 한 것 같아.”
얼마 전 식당을 운영하는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동의했다. 20년 전 IMF의 위협에는 살아남았어도 2020년의 이 전염병은 피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바이러스가 세상을 휘저었다. 하지만 그때의 신종플루나 메르스는 나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 감염되지 않았으니 건강에 문제없었고 회사에 다니고 있었으니 생계에 문제없었다.
나는 얼마 전까지 회사에서 교육을 기획하고 개발하고 강의하는 직장인이었다.
사내 집합 교육이 모조리 취소되었어도 출근은 했고 강의하는 대신 교육 콘텐츠를 개발했다. 그러는 사이 바이러스는 종식되었다.
10년 동안 했던 사내 교육 관련 일을 기반으로 ‘Biz Communication 프리랜서 강사’라는 새 직업을 찾아 2019년 9월 30일, 직장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프리랜서 강사로 자리 잡아가던 중요한 때에, 현재 이 세상의 주인공인 변종 바이러스 코로나 19가 출몰한 것이다.
이런 때에 계획된 교육을 진행하는 회사는 없으니 강의가 줄줄이 취소되었다. 당장의 생계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어서 처음 얼마간은 담담했다. 과거의 바이러스처럼 코로나 19 역시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31번 확진자가 등장했고 개학이 미뤄졌고 도서관은 무기한 휴관했다. 마스크 대란이 일고 세상이 셧다운 되었다. 내 마음은 점점 주저앉았고 내 통장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인생 최대의 위기다.
부산에서 영어학원을 하는 싱글맘 친구 J는 코로나 19로 큰 타격을 받았다. J는 학원 월세를 내야 하고 선생님 월급을 해결해야 하고 고등학생 딸아이를 키워야 한다. 친구 얘기를 들으며 건사해야 할 사업체도 직원도 자식도 없는 나는 "홀몸이라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나도 나지만 너는 더 힘들구나."
J에게도 내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J에게는 집도 있고 자식도 있고 출근할 수 있는 학원도 있다. 그리고 이 시기가 끝나면 아이들은 다시 J의 학원으로 갈 것이다. 나에게는 집도 없고 자식도 없다. 그리고 코로나 19가 종식된다한들 직장인들이 밀린 교육을 받으려고 서둘러 내 앞에 줄을 서지는 않을 것이다.
"너도 너지만 나도 만만치 않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서로에게 좋은 친구다.
“강사님,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다들 너무 힘드네요. 강사님은 더 하겠다. 회사 그만 둔지 얼마 안 됐는데 이런 일 생겨서.”
“대표님, 올 1, 2월쯤에 그만뒀다면 제 불운에 졸도했을 텐데요, 회사 그만둔 것이 작년 10월이었잖아요. 운명을 원망하기에는 퇴사한 지 너무 오래됐네요. 하하하.”
회사를 뛰쳐나오려는 나에게 퇴사 선배들은 한 결같이 ‘직장인이 최고, 밖은 지옥’이라 입을 모았다. 직장을 떠나봐야 그 생활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비로소 알 수 있는 건가 싶었는데 인생의 위기에 봉착한 지금에도 나는 차마 그 시절이 좋았다거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잠시라도 그리운 것이라면 직장인 생활이 아니라 고정급 여일 테고 불안한 이때 무엇보다 필요한 건 ‘월급이 있는 삶’이지만 그것을 얻으려면 내 시간을 송두리째 털어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8시간, 일주일에 5일, 한 달에 20일, 그리고 그 시간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 그것을 다 내주는 것,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라고 결론을 낸다.
이제 코로나 19 이전의 삶은 없고 가을에 또 한 번의 대유행이 올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학생들도 학교에 가지 않는 세상인데 회사원 수십 명이 한 공간에 모여 교육을 받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내가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업으로 삼았던 일의 성격과 형태를 바꾸어야 할 때이다.
살길을 찾으려면 낭떠러지로 떨어진 마음부터 끌어올려야 한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시간에 대한 의미 찾기였다.
대학원에서 ‘코칭’을 공부하고 있는 S는 내 말을 듣고 “언니는 셀프 코칭을 정말 잘하는 것 같아.”라고 칭찬해줬고 영어 학원 원장 내 친구 J는 “아하하하하! 정말 잘 갖다 붙였다. 꼭 순산하길 바란다.”라고 웃겨주었다. 응원에 힘입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영어공부를 하고 대학원 과제를 하고 새 일을 구상하고 그 일을 위한 공부를 한다, 매일매일.
지난 세월 그러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이 순간 내가 해야 하는 건 더더욱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