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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광머리 앤 Apr 22. 2023

엄마의 대륙 끝에서

드디어 이십여일 머물던 스페인을 떠났다.

프랑스 보르도에서 나흘밤을 잔다.


마지막 머물던 빌바오에서

웬지 땅끝에 선 기분이 들었다.

리스본의 호카곶이나 

산티아고 순례길의 정말 마지막인

묵시아나

피스데레도 이베리아 반도의 최서단

유라시아 반도의 최서단이었다.




여행 초

모든 것을 말하지만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는 

어린 네살의 나를 만났다.


담날 아침 

푸른 지중해 바다를 보며

네살아이의 말에 귀기울인 이후


그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자꾸 꿈에 엄마가 나타났다.

내년이면 90이 되는 엄마가

자꾸 숨이 약해지고 있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 십년만 나랑 더 살아."

하면서 엄마와 숨을 같이한다.


며칠전에도 꿈에 엄마가 나왔는데

꿈 내용은 기억안나지만

흐느끼다가 깼다.


같이 방을 쓰는 동행이

들었을까 미안했다.

 



어린 네 살의 나는

먼 길을 가고 싶었나보다.


아빠를 하늘나라로 보낸 후

허수아비처럼 텅빈 엄마를 

보기 싫어,

엄마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가 없어서 

멀리 머얼리 떠나고 싶었을까


아직도 기억나는 

마루끝에서 동생은 엄마를 붙들고 

학교에 가지 말라고 울부짖고

엄마는 울지 않으려고 하늘을 

쳐다보던 기억


(아, 그러고보니 

나도 요즘 여행이 고단하고, 

동행들이 힘들때 하늘을 보는구나)


집에서 아무도 나를 기억하고 

바라봐주지 않아 

"내가 멀리가면 너희들도 나를 기억하겠지

내가 없어지면 얼마나 아쉬운 줄 알겠지

나는 멀리 사라질거야."

그러고 가출을 꾀했으나 멀리갈 

용기가 없어 안방 다락에 숨었는데

엄마는 끝까지 나를 찾지 않았고

나는 배가 고파서 다락에서 내려왔다


다락에서 안방을 내려다보며

"도대체 날 언제 찾을까"

생각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성인이 된 나는

심지어 육십이 가까운 나는


대륙 끝까지 멀리 떠났다.

두달째 맴돌고 있다.


그런데 자꾸 꿈에 엄마가 나타난다.

엄마는 이제 떠나려 하고

나는 붙잡는다.


꿈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서 

구겐하임 미술관 앞에서

조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일본여행중에 전화를 받은

조선생님이 몇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그 중 하나가 


"어머니,

당신이 주신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어머니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셔도

저는 기쁘겠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순간

"선생님, 어떻게 그래요."

하면서 눈물이 터졌다. 


엄마를 떠나

대륙끝까지 와서

엄마를 놓지 못하는 아이러니


나는 꿈에서 엄마를 살리려고 

엄마의 스러져가는 숨을 끝까지 함께 

쉬었다. 




동행은 나에게

지시적이고 통제적이라고 했다.

소통의 언어보다는 기능의 언어를

감정보다는 이성의 언어를 쓴다고 

했다(그러는 당신은? 이건 나중에

길게 쓰겠다.)


'그건 우리 엄만데?!'

평생 엄마와 다르려고

배우고 노력했는데 

아직도 엄마와 같다니?


나는 아직 엄마의 대륙이다.




이 대륙 끝에서

나는 내 안의

지시적이고 통제적인

소통보다는 기능의 언어를 쓰는

감정보다는 이성의 언어를 쓰는

내 안의 엄마와 이별하려고 한다.



"어머니,

당신이 주신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어머니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셔도

저는 기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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