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하루

변화는 어디서 오는가

by 골드펜

11.


밤에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돌아보면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했고,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쉬움만 남았다.


성과만을 기준으로 하루를 평가하다 보니
하루의 끝은 늘 불만족으로 기울었다.


무엇을 이루었는지,
무엇을 놓쳤는지를 생각하면
마음은 늘 무거웠다.


하루를 끝내면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

오늘도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다른 눈으로
하루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얼마나 해냈느냐보다
무언가라도 해낸 나를 인정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만났다는 사실보다
짧은 대화로 마음이 닿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하루였다.


하루를 하나의 미션처럼 살아가기보다는
완벽하지 않아도 눈앞의 시간에 정성을 다하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니
하루는 더 이상 실패의 기록이 아니게 되었다.


잔잔하지만 늘 우선순위에 밀려 모니터 앞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메모지들.

시간을 내어 하나씩 처리하고 나면
산더미 같던 일들이 어느새 작은 양으로 줄어 있었다.


그때 문득 알게 된다.
우리를 압도하던 일들 대부분이
사실은 조금씩 건드리기만 해도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하루를 너무 엄격하게 평가한다.

마치 하루가 시험지라도 되는 것처럼
점수를 매긴다.


해야 할 일을 얼마나 했는지,
얼마나 생산적이었는지,
얼마나 효율적으로 시간을 썼는지.

그런 기준이라면
대부분의 하루는
늘 부족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삶은 시험지가 아니다.

하루는 평가받기 위해 존재하는 시간이 아니라
수많은 하루들 사이에서
그저 살아지는 시간에 가깝다.


그런 하루들이 모여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된다.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충분하다’는 감각은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을 며칠 동안 몰입해 끝내고 나면
이상하게도 허탈함이 따라왔다.


하지만 오히려
작은 순간들을 붙들 때
다른 감각이 찾아왔다.


아침에 눈을 뜬 일,
몸을 일으켜 한 걸음을 내디딘 일,
잠깐 바깥 공기를 마신 일,
노트 한 장에 마음을 적어 둔 일.

이런 단순한 행동들이 조용히 하루를 지탱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성과가 없는 날도 있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눈에 띄는 결과도 없는 하루.

예전의 나는 그런 날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날도 분명히
살아낸 하루였다는 것을.

숨을 쉬었고,
걸음을 옮겼고,
생각을 했고,
어떤 감정을 지나왔다.

그것만으로도
하루는 이미 충분히 존재하고 있었다.


‘충분하다’는 감각이 생기면
마음은 조급함에서 한 발 물러난다.


더 높이, 더 멀리 가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지금 이 자리에 머무는 감각을 얻는다.


우리는 늘 더 많은 것을 바라지만
삶은 언제나 ‘지금 이만큼’ 안에서도 의미를 품고 있다.


충분함은
욕심을 내려놓으라는 말이 아니다.

욕심 속에서도
오늘의 가치를 놓치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어떤 하루는 여전히 부족하고
어떤 하루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런 날들까지 모두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하루는 조금 더 넉넉해진다.


충분하다는 감각은
오늘을 가볍게 마무리하게 하고
내일을 향한 여지를 남긴다.


이제 나는
성취의 양으로 하루를 재지 않는다.

오늘 하루가
무너지지 않고 조용히 이어졌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돌이켜 보면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걷기,
노트에 몇 줄을 적는 일,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는 일.

그렇게 작은 변화들이
조용히 쌓이며
하루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꾸어 놓았다.


어쩌면 변화란
더 많은 것을 이루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온 하루를 충분하다고 바라볼 수 있는 순간에서
조용히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충분함이야말로
삶을 오래 지켜 주는 가장 단단한 힘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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