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수피 Aug 13. 2023

한국어 맞춤법은 왜 어려운가요?

일단 맞춤법이라는 게 도대체 뭔데?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얻었던 별명 중 '인부'가 있었다. '인간 부산대 맞춤법 검사기'를 줄인 말이었다. 다양한 전공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팀에서 유일한 국문과 출신이었던 나는 맞춤법 하나만큼은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회사 사람들이 헷갈려하는 맞춤법에 대해서는 웬만하면 바로바로 대답해 줄 수 있었으므로 나는 최소한 별명값은 하는(?) 직원이었던 셈이다.


(참고 : 부산대 맞춤법 검사기는 한국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맞춤법 검사기 중 하나로 올바른 맞춤법 표기와 함께 해설까지 제공해 준다. 웹 버전 링크는 http://speller.cs.pusan.ac.kr/)


  나는 전공도 전공이지만, 어릴 때부터 맞춤법이나 표준어 규정에 관심이 많았던 데다 초등학생 때부터 국어사전을 펼쳐 새로운 낱말을 발견하는 것을 취미로 삼을 만큼 사전과도 친한 편이었다. 그러니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 비해 맞춤법을 잘 아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한 일이다. 학부생 때부터 석사 과정을 졸업할 때까지는 학교 연구원에서 사전 관련 일을 했는데, 사전에 들어갈 표제어 풀이를 작성하거나 용례를 찾아 넣거나 이미 누군가 작성한 풀이 및 용례를 교정했다. 내 관심사를 돌이켜 보면 그 일을 하게 된 것 역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하겠다. 심지어 석사 과정을 마치고 AI 회사에 들어왔더니 학습용 음성 데이터를 전사하고 그 전사된 텍스트를 검수하는 데 필요한 표기법 원칙을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쯤 되면 맞춤법은 내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 맞춤법은 늘 어렵다. 규범 표기도, 띄어쓰기도, 표준어와 비표준어의 구분도, 비문과 정문의 판단도 항상 어렵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을 공부했지만 나는 한국어 모어 화자가 아니었다면 절대 한국어를 공부하지 않았을 거라는 농담을 하곤 한다.


  "한글은 과학적이고 배우기 쉬운 문자 아닌가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에 대한 답은 "문자와 언어는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글이라는 글자 자체는 배우기 쉬운 편일지 몰라도 한국어 문법이나 어문 규범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실 어떤 부분들은 한국어 모어 화자들에게도 어렵고 헷갈려서, 국문과에서 문법론 관련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나는 사실 한국어도 제대로 못 하는 0개 국어 화자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이미 한국어의 맞춤법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매 순간 실감하고 있다.


  맞춤법이 별로 어렵지 않다면 부산대 맞춤법 검사기는 이렇게까지 널리 쓰이지 않았을 것이고, 국립국어원에서는 굳이 힘을 들여 온라인가나다 게시판을 운영하며 어문 규범에 대한 질문을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KBS <우리말 겨루기> 프로그램이 20년 동안 유지되기도 힘들었을 것이며(찾아보니 무려 2003년에 처음 편성되었다!), 수능 국어 '언어와 매체' 과목의 문법 문제들은 별다른 변별력을 갖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쉬운 맞춤법을 틀리는 것이 연애 상대로서의 매력을 떨어뜨리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도 없었을 것이고, 웹툰이나 유튜브 댓글에 틀린 맞춤법을 지적하는 댓글이 달리는 일도 보기 드물었을 것이다. 게다가 브런치에서도 굳이 맞춤법 검사 기능을 제공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일단 '맞춤법'이라는 도대체 뭘까?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도 '맞춤법', '규범 표기', '어문 규범' 등의 용어를 혼용했는데 사실 단어들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르다. 뭐가 어떻게 다른지 보기 위해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서 '한국어 어문 규범' 메뉴로 들어가 보자.

 


  이 페이지를 통해 '어문 규범'에는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포함됨을 알 수 있다. 즉 '한글 맞춤법'은 '어문 규범'의 일부로, 한국어를 한글로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와 관련된 규칙이다. 띄어쓰기나 문장 부호 관련 규칙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와 달리 내가 위에서 사용한 '규범 표기'라는 용어는 공식적으로 정리된 용어는 아니고, 한글 맞춤법 안에서 띄어쓰기나 문장 부호 관련 규정이 포함된다는 사실이 생소한 사람도 있겠다는 생각에 임의로 선택한 표현이다.


  한편 무엇이 표준어 또는 표준 발음인지는 '표준어 규정', 본래 외국어로 된 말을 한글로 표기할 때에는 어떻게 표기할 것인지는 '외래어 표기법', 또 한국어를 로마자(쉽게 말해 영어 알파벳)로 표기할 때에는 어떻게 표기할 것인지는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 규칙들은 어문 규범에 포함되지만 한글 맞춤법과는 엄연히 구분되는 규칙들이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편의상 이 모든 규범들을 묶어 '맞춤법'이라고 부르는 일도 흔한 것 같다. 사람들은 '맞춤법'이라는 용어를 어문 규범을 아우르는 넓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고, 어문 규범의 일부인 한글 맞춤법을 지칭하기 위해 좁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앞으로 이곳에 작성하는 글에서는 어문 규범에 맞는 표기를 소개하기보다 사람들이 어문 규범에서 어떤 부분을 왜 헷갈려하는지, 그렇게 혼란의 여지가 있음에도 왜 이렇게 규범이 정해졌는지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두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너무 딱딱하고 학술적이기보다는 누구든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법론 지식과 국어사 지식, 국어학사 지식을 쉽게 설명해야 할 텐데 일단 고작 석사과정을 졸업한 주제에 얼마나 그 지식들을 잘 소화해서 풀어낼 수 있을지 사실 스스로도 좀 의문이다. 그럼에도 어문 규범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 그 안에는 한국어의 말과 글을 이해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숨어 있다는 것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겸사겸사 졸업과 함께 놓아 버렸던 공부도 좀 더 하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