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동안 연구적으로 힘든 일들이 생기니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연구주제를 다른 걸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방법론을 하나만 썼으면 어땠을까,
필드를 한군데만 했으면 어땠을까,
전공을 다른 걸 했으면 어땠을까,
연구실이 달랐으면,
학교가 달랐으면 어땠을까,
영어로, 한국어로 박사를 했으면 어땠을까,
아니 차라리 박사를 안했으면 어땠을까...
박사하던 사람들이 다들 그런 이야기하던데, 석사 때까지는 자기가 공부나 연구적으로 그래도 남들보다는 쬐끔 더 낫다고 생각했었다고. 근데 박사 들어와보니 자기가 얼마나 멍청한지 하루하루 느끼면서 지낸다고. 내 지금 심정이 딱 그렇다. 하면 할수록 나의 모자라고 부족하고 멍청한 부분만 보인다. 그에 비해 세상에는 천재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그런 천재들 틈바구니에서 나를 지키고, 내 연구를 지키면서 매일 나를, 내 연구를 증명해보이는 일을 해야하니 너무 어려운 일에 뛰어든 것만 같다. 뭐 하나라도 내가 특출나게 나은 게, 특출나게 까지는 못가더라도 뭐 하나라도 좀 평범하게만큼은 하는 게 있어야 할텐데. 지금의 나로서는 정말로, 진심으로 그 어떤 것에도 나은 게 없는 것 같다.
이런 결핍감을 이겨내고 묵묵하게 소처럼 나아가야 하는 게 박사과정이렸다. 우리 할머니는 내게 어릴 적부터 뭔 애기가 저리 황소 같다냐~ 자주 그러셨었는데... 지금의 멘탈로는 황소는 커녕 염소도 안된다. 이제 잘하고 싶다, 잘보이고 싶다는 욕심은 내려놓은 지 오래다. 내 스스로에 대한 기대도 접었다. 그냥 따라만 가면 좋겠다.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못 쫓아가고 포기하지만은 않게, 마지막의 마지막 후미에서라도 따라만 가면 좋겠다.
박사과정 멘탈 싸움이 이제 진짜 시작인가보다. 그래, 어쩐지, 1년차 때는 너무 아메바 같이 생각이 없더라니. 어쩌겠는가. 불안해한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포기할 용기도 없으면, 그냥 생각없이 묵묵히 하는 수밖에. 누군가 그러더라. 그 당시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