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너무 잘 안다. 결국 나한테 하는 말이다.
말보다 눈물부터 나오는 거
불편한 환경을 피하고만 마는 거
안 닮았으면 하는 부분으로 아이가 힘들어하면 과거의 나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 더욱 속상하고 화가 나 너를 더 다그치게 된다. 다그치는 스스로가 또 너무 싫어진다.
몇 주째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기 싫다고 아침마다 울었다. 이유는 어린이집에 같이 놀면 불편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같이 놀자고 다가온다는 것. 그런데 '같이 놀면 불편하다' '같이 놀고 싶지 않다'라는 말은 못 하고 피하기만 한다는 것. 등원할 때 그 친구 신발이 신발장에 있는 걸 보면 눈물부터 나오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물론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도움을 받지만 한계가 있었다.
"어디에서나 불편한 친구는 있을 거고, 그때마다 울기만 할 수는 없어"
"언제까지 그럴 거야!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
"친구가 불편하면 말로 또박또박 말해야지"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말로 불편함을 말하기 전에 눈물부터 차오르는 감정, 그래서 정면승부하지 않고 피하고만 하는 나의 선택. 나도 너무 잘 안다. 35살인 지금도 그런데 5살 아이에게 그러지 말라고 다그치는 꼴이라니. 닮지 않았으면 하는 모습을 내 아이에게서 비추어 다그칠 때면, 결국 나한테 하는 말이다.
"엄마 난 왜 눈물부터 날까"
"요즘 내가 왜 이럴까"
"피하고 싶어요 그런데 말이 안 나와요"
5세 아이도 본인 마음이 요즘 이상하다는 것을, 눈물부터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마음속엔 꽃이 피는 중인데 꽃이 피려면 비도 내려야 하고 햇빛도 비추어야 잘 자란다고. 지금은 비가 내리지만 곧 햇빛과 무지개가 뜰 거라고 지금은 꽃을 피우는 과정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이후론 한동안 "엄마 오늘도 내 마음엔 비가 내려요"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나도 마찬가지였다.
13살, 친구들끼리 돌아가며 따돌림을 할 때 (같이 노는 그룹 내에서 돌아가면서 따돌리는 것이 유행(?)이었던 참으로 어리석은 시절이 있었다) 나를 따돌리는 친구들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피하지 않았던가.
20살, 하기 싫었던 텔레마케팅 아르바이트하러 가던 지하철에서 도중 내리면서 피하지 않았던가.
33살, 외국계 기업을 눈물로 다니면서 결국 그만두며 피하지 않았던가. 5살 아이에게 다그칠 입장이 아니었던 누구보다 찌질하고 회피형 인간이었음을.
비가 내리는 몇 주를 보내고 다니는 기관을 바꿨다. 지금은 만족스러울 정도로 재미있게 다니고 있다. 물론 지금도 가끔 아이 마음속엔 이슬비가 내리지만 긴 장마는 끝났다. 무작정 피하지 말라고, 울지 말라고 다그쳤는데 지금에서야 때론 피하는 것도 답이었다.
아니, 로마 김작가님 말처럼, 피한것이 아니라 '힘들지 않은 길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그랬다. 나를 따돌리던 친구들보다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좋은 친구들을 선택했고, 텔레마케팅 아르바이트보다 과외알바라는 보다 힘들지 않은 아르바이트를 했고, 눈물로 다니던 외국계 기업을 그만두고 지금의 일을 선택하니 만족해 하지 않는가.
로마 김작가님의 말을 빌려보자면, 사람마다 어떤 사안을 감당하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담금질과 매질이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주지만 칼마다 그 정도가 다르고 모든 칼이 전쟁에 쓰여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이러한 과정도 아이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과정임을,
난 어쩌면 스스로 담금질과 매질로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어 왔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아이에게 마음속에 비가 올 때는 잠시 피해도 괜찮다고, 너무 비가 힘들면 엄마가 너의 큰 우산이 되어 주겠다고, 엄마 품에서 울면 된다고 말해주고 있다. 울다 보면 어느새 예쁜 무지개가 떠 있을 거라고.
아인이 마음속엔 예쁜 꽃이 피는 중이라
비도 가끔 내릴 거야.
비가 시원하게 느껴지면 맞아도 좋아.
비가 무섭게 느껴지면
엄마 품으로 달려와 줄래?
한 방울도 맞지 않는
큰 우산이 되어 줄게.
품에서 참지 말고 마음껏 울어도 돼
그리고 마음속 무지개가 뜨면
너의 예쁜 미소만 보여주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