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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비친눈 Jun 02. 2019

그때 엄마는 미안하다며 울었다

Music : 이병우 - 어머니


Pop Memory#008


#입영 연기

지독한 여름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제일 싫었다. 잠에서 깨면 머리맡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난다. 피 냄새를 따라 손이 움직인다. 이윽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붉은 피부 사이로 패여진 상흔이 보인다. 따갑다. 아니 아프다. 몸을 일으켜 밤새 몸을 꽁꽁 싸매어 놓은 옷을 벗는다. 피부에 옷자락이 스치기만 해도 가려움이 엄습한다. 참아야 한다. 탈의하자 공기 중으로 하얀 가루가 날린다. 아래를 보았다. 드러난 몸은 마치 방금 사포로 밀다 말아 나무가루로 뒤덮인 나무토막처럼 각질로 뒤덮여 있다. 기가 막힌다. 이내 나는 바로 욕실로 달려가고, 엄마는 이불을 들고 현관문으로 나가신다. 그 해 여름 매일 반복되는 아침 풍경이었다. 


"고마 이제 포기하자. 이 꼬라지로는 니 입대 몬한다. 일상생활도 힘든데 군대를 가겠노?"


입대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어느 날 아침이었다. 엄마는 아들의 등에 로션을 발라주시며 얘기를 꺼내셨다. 덤덤하게 말하셨지만 분명 엄마 자신도 고민 끝에 뱉는 말이란 걸 알았다. 사실 엄마의 그 말을 듣기 전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쉬이 낫지 않으리란 것을. 다년간의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지만, 겨우 이까짓 병 하나 때문에 시간 낭비를 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하다. 입대 연기를 권유하는 엄마의 물음에 나는 아래로 눈을 떨구고 고개를 힘없이 끄덕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방을 나섰다. 얼마 안 되어 방 밖에서 입영연기 사유를 설명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날 저녁, 상을 물리고 두 분이 말을 꺼내셨다.


"서울 가서 재검 받아보자."

"그래, 군 복무하면서 집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병역) 판정 다시 받아보자."


설득에 반응이 없는 아들을 앞에 두고 엄마가 말을 이으셨다.


"니 지금 이 모습이면 누가 봐도 군대 가라고 몬한다. 그라고 니 바로 안 낫는다. 멀쩡히 군대 가도 니 거기서 또 탈 나서 오히려 더 힘들 수도 있다. 좋게 생각하자."


고개를 들었다. 엄마의 표정은 간절했다. 무기력했진 탓에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그 표정에 아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병역 재검

그 날은 피곤했다. 저녁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에 요를 깔고 먼저 누웠다. 

방문 너머로 엄마와 외숙모 두 분의 대화가 들려왔다. 


"의사가 뭐라더노?"

"큰 기대는 말란다. 한 곳에서 오랫동안 진료받은 기록일수록 (4급* 판정받기가) 유리한데 여기저기 다닌 데다가 세브란스에서는 의사한테 진단서만 받은 거라서 장담 몬한단다."

"그래도 아가 이모양인데 병무청에서 당장 군대 오라겠나?"

"요새 아토피 앓는 애들이 한 두 명이 아니라네. 안되면 일 년 정도 자기한테 와서 진료받고 기록 남기라는데 일 년이 짧나. 어휴."


나의 침묵과 두 분의 한숨에 지친 하루가 넘어갔다.


다음 날, 아침이 조용히 돌아왔다. 여느 때처럼 엄마의 부름에 일어났다. 한밤중 무의식이 저질러 놓은 아픔에 정신없었다. 하루를 버틸 수 있게 수습하고 밥상머리에 앉아서야 엄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눈자위가 더 어두워졌고 흰자위에 핏발이 언뜻 보였다. 


아침을 끝내고 외숙모의 배웅을 뒤로하고 서둘러 댁을 나섰다. 재검을 받으려 아침 아홉 시까지 보라매 공원 부근에 있다는 병무청에 가야만 했다. 지하철 7호선을 탔다. 괜히 지하철 색깔이 의미심장하게 보였다. 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눈을 감고 기도라도 하는 양 어제 받은 병원 진단서와 각종 진료기록을 꼭 쥐신 채로 가만히 계셨다. 


보라매 역을 나섰다. 아직 아홉 시가 채 되질 않았는데 하늘의 해는 벌써 중천을 향하고 있었다. 1km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병무청이 모습을 드러냈다. 옆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굳어져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엄마는 웃으며 마음 편히 검사받고 오라 하셨다. 나는 그녀를 병무청 한 구석 그늘 밑 벤치에 앉혀두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삼십 분도 안되었다. 검사는 끝났고 밖으로 나섰다. 엄마의 축 늘어진 어깨가 보였다. 그녀는 병무청 바깥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불렀다.


"엄마."

"벌써 끝났나? 어찌됐노?"

"4급 받았어요."


한걸음 다가갈수록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져갔다. 

그녀 앞에 이르자 엄마는 나를 꼭 껴안았다. 곧 오랫동안 참아왔던 그녀의 슬픔이 전해졌다.


"미안하다. 엄마가 미안해."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흔들리는 엄마의 등을 토닥여 드렸다.



*4급: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급 중 하나. 이 등급은 일상에는 큰 지장은 없지만 군 생활에는 지장이 있을 것으로 판정되는 대상자에게 부여함. 참고로 1~3급은 현역병으로 군대에서 복무해야 하나, 4급은 보충역으로 분류되어 출퇴근이 가능한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수행. 



Introduction of Song
이병우, '어머니'


엄마. Mom. Mama(ママ). 妈妈 (māma). Mamá.

언어는 달라도 '엄마'를 의미하는 단어는 발음이 굉장히 유사하다. 아마도 갓난아기가 엄마를 보고 옹알거리는 소리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싶은 이 단어만큼 인간의 감정을 크게 흔드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엄마'에는 사랑, 헌신, 포근함, 그리고 그리움이 담겨있다. 그래서 남녀노소 엄마를 찾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나는 그 날 엄마의 우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엄마의 인생에 많은 굴곡이 있었음에도 우는 모습만큼은 이때를 제외하고 아들에게 허락하질 않으셨다. 엄마가 무너진 그 한순간은 그때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공감 잘 못하는 아들내미라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눈치가 없어서 등등 여러 이유는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때를 회상하는 나도 그 감정을 이해할 만큼 나이가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음악은 우리에게 때때로 명확한 감정이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제목도 모르고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낀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따뜻한 기타 소리가 잔잔하게 그리움을 표현하는 이 곡, 기타리스트 이병우의 '어머니'였다. 처음 접한 건 M.Net 'Take 1'이란 프로그램이었다. 'Take 1'은 아티스트들의 라이브 프로그램으로 한 번에 영상을 그대로 담아낸다는 의미를 지녔다. 이 프로그램에서 이병우, 그를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 곡, '어머니'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이후 그의 수많은 명곡들을 들었고 상당수 좋아하지만 이 곡이 이병우의 음악 중 내 최애곡이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란 단어에 느껴지는 감정에 '그리움'이 진해진다. 그래서 이 곡을 들으면 때로는 울컥하기도 한다. 그 날 엄마의 감정이 이해될수록.


'엄마'를 부르는 음악은 많이 있지만 이 음악만큼 기억에 남는 두 곡이 있다. 하나는 Boys II Men의 'A song for mama'이며, 다른 하나는 Ra.d의 '엄마'이다. 이병우의 '어머니'와 다소 차이는 있지만 결국 '엄마'에 대한 감사, 고마움, 그리움을 노래하는 건 같다. 이 음악들을 듣고 마음 한켠 애틋해진다면 엄마께 직접 혹은 전화로 말이라도 건네보길 바란다. 생신이나 어버이날이 아니라도 그녀가 있기에 나란 존재가 세상에 존재하는 거니까.

 

Boys II Men, 'A song for mama'


Ra.d,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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