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비 Jul 12. 2020

연남연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장소들

XX와 매일이 멀다하고 들르던 카페엘 몇 년 만에 다시 찾았다. 앉은뱅이 상을 띄엄 띄엄 늘어놓았던 창가 쪽 좌석엔 책 읽기에 딱 좋은 높이의 테이블이 들어서 있었다. 조명은 여전히 따스한 노란빛 원형 갓을 쓰고 있고, 음료를 만들 때마다 얼음이 컵에 부딪혀 짤랑대는 소리도 여전했다. 좌석이 조금 변한 것 뿐인데 낯선 느낌이 들어서, 바뀐 자리에 앉아 카페를 한 눈에 담고서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티 코스터도 원래는 동그랗고 까만 것을 쓰시더니, 지금은 밝은 갈색의 네모난 모양으로 바뀌었다. 내가 먹던 음료가 흑임자슈페너인 줄 알았는데 코튼슈페너였구나, 헤이즐넛향이 기분좋게 코를 간지럽히는 부드러운 커피. 음료가 맛있고 사장님이 잘생겼어요.




카페에 오기 전에는 밥을 먹었다. 나와 XX가 처음 발견했을 땐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요즘은 식사때가 되면 대기줄이 늘어서는 것이 익숙하다. 다양한 찬이 조금씩 담겨져 나오고, 찬의 종류는 주기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 메인 요리도 물론 훌륭하게 맛있다. 탱탱하고 신선한 꼬막이 듬뿍 올려진 꼬막덮밥, 새우명란 덮밥도 맛있었고, 두명이 가서 먹기에 좋은 찌개나, 갈비찜도 있었던 것 같은데.


여전히 물은 녹차티백과 함께 나오고, 정갈하게 담긴 음식이 기분좋게 만들고, 혀를 감싸안는 맛난 음식에 또 기분좋아지는 순간.




티토 앞을 지나다가, 익숙했던 것들이 없어지고 낯선 것들이 자리를 메운 걸 보고는 핏 하고 웃었다. 시간이 참 많이 흐른 것 같은데 생각보단 그렇지도 않구나. 이제 겨우 육 개월, 반 년 전일 뿐인데 마음으로는 육 년 전보다도 더 멀다. 신기하지.

앞으로는 이 모든 곳들을 너와 함께 올 일이 없을텐데 카페에서는 메뉴를 함께 고민하던 기억을 떠올렸고 식당에선 반찬과 메인 요리의 맛에 감탄했던 기억을 떠올렸고 티토에서는,


여전히 그 건물 옥상엔 노란 테이블과 초록 의자, 푸른 블루베리 나무가 가득하더라. 난간 따라 불을 밝히는 조명도, 군데군데 찢어져 보수한 자국이 있는 천막도 그대로더라.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그곳은, 다른 것들이 모두 변해버렸구나 싶더라.



옛날에는 그랬었다. 너와의 기억을 다른 사람으로 덮으려고 기를 썼다. 한 번 갔던 곳을 다른 사람과 똑같이 가면서 와본 적 없는 척 했다. 왜 그렇게까지 했었나 싶은데 그 때는 그랬다. 일종의 의식 같은 행동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굳히기 위한 일련의 어떤 그런 것들.

연남동의 기억만큼 짙고 깊은 것도 없지만, 어쩐지 이 곳은 다른 사람으로 덮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 더 이상 내게 그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2년 동안 정말 매일같이 들렀던 동네. 이제는 매일같이 오기는 힘든 곳. 점점 낯설어지겠지, 그치만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은 오래오래 여기 머물렀으면 좋겠어.


매거진의 이전글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