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일기 01
'설마 나한테?' 하는 일이 실제로 발생할 때가 있다.
뉴스에서만 봤던 일,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여겼던 일.
코로나 19 확진이라든가, 권고사직이라든가, 잠수 이별이라든가..
부모의 수술과 입원, 병간호라든가. 부모의 불화라든가.
몇 십 년을 온실 속 화초로 편하게 살았다.
돌이켜 보면, 권고사직과 잠수 이별은 귀여운 사건이었다.
당시에는 세상이 무너졌지만 말이다. 고통의 크기는 절대적이면서 상대적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 평온한 상태가 바로 행복이다.
제발 나한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안 좋은 일,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글로 남기지 않았다.
쓰레기를 텍스트로 남겨 봤자 해결되지도 않고, 그 텍스트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버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굳이 꺼내서 이리저리 만지작 거리느니,
그 시간에 몸을 움직이는 게 훨씬 나았다.
말 보다 행동, 생각보다 행동, 감정 보다 행동.
당장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면, 부정적인 응어리는 없어졌다.
분명 그랬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글로 내뱉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 털어놓을 곳도 없다.
눈물이라도 쏟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없다. 목에 응어리가 걸려 있다.
생각지도 못한 때에 자극받으면 난데없이 눈물이 터질 것 같다.
눈물로 분출하지 못하니까, 짜증과 분노로 그 에너지를 쓴다.
그걸 억누르느라 속에서 끓어오른다.
그걸 달래느라 마음의 온도를 낮추고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해진다.
뜨거운 불은 껐지만 차가워진 공간에 부정의 밑바닥이 드러난다. 자책, 포기, 좌절, 괴물..
너무 힘들다. 끔찍하다.
사는 게 의미가 없다. 살고 싶지 않다. 아니 살고 싶다. 아니 다 놓고 싶다.
아니,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