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의 서울 여행기
"망했어."
"안 망했어."
"여기 구경하고 시리우스 어쩌고에서 밥 먹으려고 했단 말이야."
"그럼 시리우스 어쩌고 지금 가면 되잖아."
"방금 밥 먹었는데 무슨 밥을 또 먹어. 에이씨. 망했어."
"안 망했다니까. 김새게 자꾸 망했다고 할래? 저기 앞에 가서 손들고 서 봐. 사진이나 찍게."
검은색 철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문 살 사이로 속이 훤히 보이는 게 못된 성격 때문에 약이 바짝 올랐다. 블로그에서 찾아본 모습 그대로였다. 어질러진 듯 가지런한 정원의 푸름이 여름 볕에 반짝였다. 꾸밈없고 자연스러워서 더욱 정감가는 모양새였다.
'들어갈 수 있다면.'
아쉬운 마음에 철문에 얼굴을 처박고 누구라도 지나길 기다렸다. 눈알이 대포 카메라 줌이라도 되는 양 시선을 당겼다가 풀었다가 야단법석을 떨었다. 당연히 아무도 지나지 않았다. 포기하라며 구시렁 거리는 동행자 말따위는 사뿐히 무시해줬다. 아무래도 포기가 안 되고 미련이 남아 찬찬히 시선을 옮겨 구석구석을 살폈다.
담이라도 낮으면 몰래 넘어서 정원이라도 구경하고 나오고 싶은데, 망할 담장은 왜 이렇게 높은지.
일정 중 제일 기대했던 곳이었다. 게을러터진 주제에 자료조사도 무지하게 했었다. 계획을 세우는 내내 함께 여행하는 동행자에게 비장의 무기라며 큰소리 떵떵치고 자랑하던 곳이었다.
"야. 여기는 진짜 깜-짝! 놀랄 거야. 이게 그냥 평범한 미술관 같지? 장난 아냐."
"뭐 얼마나 대단한 덴데. 가봤어?"
"아니."
"모야 그게."
"안 가본 데만 가기로 했잖아. 근데. 안 가봐도 알아. 나중에 따라와 봐. 가보면 알아."
당시 나는 EBS에 심취해 있었다. EBS에서 심리학을 배우고, 공룡도 배우고, 역사도 배우고, 개그도 배우고, 세상 모든걸 다 배울 기세로 EBS를 즐겨보던 때였다. EBS 프로그램 중에서도 '지식채널e'를 유난히 좋아했다. 짧고 메시지가 분명하면서도 감성적인 구성이 좋았다.
어느날 지식채널e를 보다가 '금싸라기 땅을 팔아 사기그릇을 사는 바보같은 남자'를 알게 됐는데, 단숨에 홀딱 반해버렸다. 당시 지식채널e에 나온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미련스럽다며 주변에서 손가락질 할 때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신념으로
전 재산을 털어서 낡은 것들을 사 모았던 남자.
전 세계의 찬사를 받은 고려청자,
소박한 백성을 빼닮은 조선백자,
어떤 그림보다 아름다운 추사 김정희의 예서,
중국의 산이 아닌 우리의 산을 담은 겸재 정선의 산수화,
우리 조상의 모슴을 담은 김흥도와 신윤복의 풍속화,
그리고 한국 전쟁 피난길에서도 그 남자의 품에서 일 분, 일초도 떠나지 않았던 훈민정음 원본.
간송 전형필. 바보같은 이 남자를 소개하는 모든 말들이 가슴 설렜다. 미술관에 들어가서 동행자에게 도슨트를 해주려던 참이었다. 그래서 동행자도 설레게 해주려던 참이었다. 미술도 알고, 역사도 알고, 귀한 걸 알아보는 안목까지 가진 세상에서 제일 멋진 여자친구로 보여서 홀딱 반하게 해버릴 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문이 닫혀있다니. 정말이지 속상했다.
"인생이 허망해."
"아니 뭘 이깟 거 때문에 인생까지 허망해. 손 좀 더 들어봐봐."
"넌 몰라. 망했어. 여기 전시된 작품들 다 알아보고 왔단 말이야. 큐레이터 언니처럼 막 도슨트도 해주고 그러려고 했단 말이야."
"그 망했단 얘기 좀 그만해. 손이나 제대로 들어봐봐."
"다 알아봤는데, 왜 운영시간은 안 알아 본거지? 멍청한 나새끼."
"내가 맨날 말해줬잖아. 너 멍청하다고. 손 좀 제대로 들어보라니까. 얼굴 안 보이잖아."
우리는 서울을 여행 중이었다.
20년을 넘게 서울에서 나고 자란 두 사람이 배낭을 메고 여행자의 모습으로 서울을 걷고 또 걸었다.
서울사람이 서울을 여행하면 재밌지 않겠냐
생각보다 우리가 서울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고 안 가본 곳이 많을거라고,
서울을 파리처럼, 부산처럼 보고 느껴보자며 위시리스트를 만들고 여행 준비만 자그마치 2주를 했다.
"여기 봐봐. 이렇게 그 동네 역사도 알아보고, 건축물 사연도 알아보고.
진짜 멀리 여행준비 하는것 처럼.
그리고 우리는 걸어다닐거니까, 더 많이 느낄 수 있을거야."
4주년을 기념하야 실은 파리에 가고 싶고, 부산에 가고 싶고, 여행을 하고 싶은데 당시 학생이라 가난해서 쥐어 짜낸 묘책이 서울 사람의 서울 여행이었다. 버스 타고 택시 탈 돈도 없어서 이번 여행 테마는 걸어서 서울 한 바퀴라며 한비야 흉내를 냈다.
8월의 타는 더위에 머리에 수건을 얹고 서울 온 천지를 들쑤시고 다녔다.
노량진 농수산 시장을 부산 앞바다 어시장처럼 구경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물고기를 삼키고 부른 배를 어쩔 줄 몰라 한강 변에서 노숙자처럼 낮잠도 실컷 잤다.
마포대교를 가로지르며 부산 광안대교를 건너듯 '우와 우와!' 호들갑을 떨었다.
홍대 롯데시네마가 쫄딱 망했다는데, 얼마나 망했는지 보자며 별로 재밌는 대화도 아닌데 낄낄거리기도 하고, 2013년 홍대 롯데시네마는 지금과 다르게 정말 파리가 날려서 조조로 설국열차를 전세 낸 듯이 봤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봉준호 감독 영화는 위트가 넘치고 철학이 있다는 둥,
설국열차가 곧 사회를 열차 안으로 옮겨놓은 거라는 둥,
영화 소개만 봐도 알 법한 소리를 우리만 아는 대단한 발견인 양 허세 등등하게 논했었다.
길상사라는 절도 그 때 알았다.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가 제3공화국 시절 높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고급 요정을 주인이었던 김영한 씨가 법정 스님께 절로 만들어 주십사 청하여 절이 되었다는 것도 여행 준비를 하면서 알았다.
고급 요정이 자리잡았던 동네인 만큼 절 주변에는 지붕 끝도 안보일 정도로 으리으리한 담장의 고급 저택들이 많다.
길상사로 가기 위해 걸었던 길은 담장 높은 저택들과 상반된 달동네였다. 초호화 주택과 달동네는 경계 없이 바로 붙어있어 같은 주소를 한 동네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드라마에 나올법한 가파르고 높은 동네가 서울 한복판에 있다니. 지대는 또 어찌나 높은지 곧 하늘에 닿을 것 같았다. 곧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달린 지붕과 허물어질 것 가튼 담벼락과는 대조적으로, 탁 트인 시야와 전망이 아찔했다.
당시 동행자는 여기에 사람이 안 살 수도 있다고 했다.
"이게 다 이 밑에 사는 부잣집 아저씨들 투기 대상일 수도 있어."
"넌 왜 다 음모론이냐. 애가 삐뚤어져서."
"근데 지금 몇 시야?"
"11시 50분. 헐. 서둘러야겠다."
행여나 늦어서 부처님이 지어주신 공짜 밥을 못 먹을까 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서
기가 막히게 공양 시간을 딱 맞춰 비빔밥을 비볐는데,
밥을 비비면서
우리에게 공짜 밥을 주셨으니 나중에 취업해서 돈 벌면 꼭 시주를 하자,
요정이었어서 그런지 절이 여성적이네,
절이 예쁘긴 한데 달동네가 더 인상적이었네,
부자 동네에 있어서 그런지 다 부자 같아 보이네,
따위의 아무 말이나 하면서 사진을 또 찰칵 찍었다.
타이밍도, 풍광도 완벽에 가까운 여행이었는데,
여행지의 하이라이트 간송 미술관 문이 이렇게 튼튼하게 닫혀있다니.
그게 그렇게나 속이 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까짓 간송 미술관은 언제든지 다시갈 수 있었다.
심지어 자주 갈 수도 있었다.
서울 사는 내가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을 뭐 기차 타고 갈 곳도 아니고,
서울에서 제일 멀어봐야 한시간 거리인데
당시는 성북동이 고속도로를 내달려도 5시간 걸리는 부산인 양,
비행기 타고 12시간 걸리는 파리인 양,
속상한 감정에 몰입했었다.
부산까지 갔는데 갑자기 탈이나서 회를 못 먹는 것 처럼, 파리까지 가서 에펠탑이 공사중인 것 처럼.
이번이 아니면 다시 가기 어려울 것 같이 여행자의 마음으로 아쉬워했다.
어린아이처럼 우와, 우와를 내지르며 서울 곳곳을 처음 보듯 신기해하고 놀러워했던 그 여행에서.
당시 나이로, 26년을 살면서 알아왔던 서울보다, 단 삼일의 여행으로 더 많이 서울을 발견했다.
여행 일정보다 몇 곱절 많은 날을 할애해 서울을 공부했다.
공부한 만큼 서울은 신비하고 이야기가 있는 도시였다.
서울은 풍성했다.
여행을 마치고 난 후에도
나는 주욱.
당시의 여행지에서 살고 있다.
간절히 원하던 간송 전시는 그 후로 딱 한 번 갔다.
1년에 봄, 가을 15일씩 년 중 30일만 열려 귀했던 전시는 4년이 지난 지금 DDP에 상설로 열려있다.
당시 땅을 치고 아쉬웠던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나는 DDP 간송 전시에 가본 적이 없다.
길상사는 지금도 가끔 간다.
유명한 절보다 더 임팩트 있다며, 경치가 기가막히다며 탄성을 질렀던 달동네는 다시 가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배낭을 메면 반짝여보이고, 대단해보이고, 멋져보이고, 영영 못갈 것 같던 그 곳들이
배낭을 내려놓고 나니 다시 별거가 아니다.
또, 배낭을 둘렀을 땐 흘려보고, 스쳐보고, 지나쳤던 것들이
일상으로 돌아오고나니 문득 생각날 때가 있다.
두고두고 추억할 인생 최고의 여행중 하나였다.
하지만 일상을 여행처럼 살 수 있지 않겠냐던 여행을 준비하던 당시의 기대와 다르게,
내가 서울을 바라보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사는것과
여행자로 사는것.
둘 사이에는 분명 다른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