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슨 리서치(Edison Research)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12세 이상 인구의 34%가 최근 1주일 내 팟캐스트를 들었고, 47%가 최근 한 달 내 팟캐스트를 소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팟캐스트는 미국에서는 이미 대중적인 매체로 자리 잡았다.
중국에서도 오디오 소비를 둘러싼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3년 중국 온라인 오디오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오디오 플랫폼 내 콘텐츠 수는 2016년 대비 135배, 2020년 대비 9배 증가했고, 이용자 규모는 2026년 3억 5천만 명을 넘어설 것 으로 전망됐다. 물론 이 수치는 팟캐스트만이 아니라 온라인 오디오 산업 전체를 가리킨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있다. 오디오 소비 자체가 다시 급성장 카테고리로 올라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의 오디오 시장 지표만 봐도 오디오 팟캐스트와 비디오 팟캐스트를 포함한 ‘듣는 콘텐츠’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은 영상의 시대, 그 중에서도 숏폼의 시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팟캐스트를 한물간 비주류 매체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조금 다르다. 사람들은 강한 자극의 짧은 영상을 소비하지만, 동시에 화면을 오래 붙잡지 않아도 되는 동반형 콘텐츠 포맷도 함께 찾고 있다.
사진 출처: 톡설팅
이 변화는 톡설팅에서 만든 콘텐츠 매트릭스를 보면 더 선명해진다. 이 매트릭스는 콘텐츠를 두 축으로 나눈다. 가로축은 콘텐츠 길이, 세로축은 시청자 집중도다.
좌측 상단에는 숏폼 영상과 숏폼 텍스트가 있다. 콘텐츠 길이는 짧지만 높은 집중을 요 구하는 영역이다. 틱톡, 쇼츠, 릴스, 스레드, X 같은 포맷이 여기에 가깝다. 우측 상단에는 롱폼 영상과 롱폼 텍스트가 있다. 넷플릭스, 유튜브 장편 콘텐츠, 영화, 책, 블로그, 브런치처럼 콘텐츠도 길고 깊게 몰입해야 하는 콘텐츠들이다.
좌측 하단은 광고다. 짧지만 깊은 집중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영역이다. 우측 하단에는 팟 캐스트, 비디오 팟캐스트, 라디오가 있다. 콘텐츠는 길지만 화면을 오래 붙잡지 않아도 되고, 생활 동선 안에서 소비가 가능한 동반형 콘텐츠 포맷이다.
이 우측 하단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최근의 콘텐츠 소비는 무조건 짧아지는 방향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길지만 집중력을 덜 요구하고 생활 속에서 함께 소비할 수 있는 동반형 콘텐츠 쪽으로도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브랜드와 미디어는 좌측 상단, 즉 숏폼 쪽으로 달려갔다. 그 선택은 맞았다. 숏폼은 도달률을 만들고, 발견 가능성을 높이고, 브랜드를 계속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다만 숏폼은 기본적으로 ‘눈을 붙잡는 포맷’이다. 더 강한 후킹, 더 빠른 편집, 더 즉각적인 자극을 요구한다. 경쟁이 심해질수록 시청자의 피로도 함께 커진다.
반면 우측 하단의 동반형 콘텐츠는 다르다. 길지만 덜 피곤하고, 덜 자극적이며, 배경처럼 둘 수 있다. 사람들은 운동할 때, 이동할 때, 집을 정리할 때, 메이크업을 할 때, 일을 하다가도 이런 콘텐츠를 곁에 둔다. 집중해서 소비하기보다 생활 속에서 함께 소비하는 포맷이다.
톡설팅 콘텐츠 매트릭스가 보여주는 핵심도 바로 여기 있다. 앞으로의 경쟁은 단지 누가 더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잘 만드냐만이 아니라, 누가 더 오래 곁에 머무는 동반형 콘텐츠를 설계하느냐의 문제라는 점이다.
유튜브의 최근 흐름도 이를 뒷받침한다. 유튜브는 2025년 2월 자사 플랫폼의 월간 팟캐스트 이용자가 10억 명을 넘었다고 밝혔고, TV와 같은 거실 기기에서는 팟캐스트가 월 4억 시간 이상 소비된다고 설명했다.
이 수치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팟캐스트가 커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소비 장소와 화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팟캐스트는 더 이상 이동 중에 이어폰으로만 듣는 보조 포맷이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거실 TV라는 가장 큰 화면에서도 비디오 팟캐스트를 소비한다.
다만 이때의 소비 방식은 영화처럼 정자세로 몰입하는 것과는 다르다. 틀어두고 듣다가, 필요할 때만 화면을 보고, 다시 귀로 따라가는 방식에 가깝다. 큰 화면에서도 저집중 동반형 소비가 성립하고 있다는 뜻이다. 톡설팅 콘텐츠 매트릭스의 우하단이 현실에서 실제로 커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패션은 기본적으로 시각 산업이다. 실루엣, 소재, 색감, 스타일링, 워킹, 공간 연출은 결국 보여줘야 전달된다. 그래서 브랜드와 매체는 룩북, 화보, 캠페인 필름, 런웨이 영상, 릴스와 쇼츠 등 시각 매체에 자원을 집중해왔다.
그런데 패션은 단지 옷만 보여주는 산업이 아니다. 패션은 취향을 설명하는 산업이고, 맥락을 설계하는 산업이며, 특정한 미감과 세계관을 설득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소비자는 단지 무엇을 입었는지만 궁금해하지 않는다. 왜 이 브랜드가 지금 중요한지, 디자이너의 미감과 철학이 설득력을 가지는지, 어떤 실루엣이 돌아왔는지, 어떤 스타일은 촌스럽고 어떤 스타일은 새롭게 보이는지까지 궁금해한다. 이때 이미지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해석과 대화도 필요하다. 바로 여기서 팟캐스트와 비디오 팟캐스트가 힘을 가진다. 패션은 눈으로 시작되지만, 취향은 말과 대화 속에서 더 깊어진다.
이 흐름은 아직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다. 이미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은 팟캐스트를 자사 세계관을 설명하는 공식 포맷으로 활용하고 있다.
샤넬은 ‘Cambon Podcasts’와 ‘CHANEL Connects’를 통해 패션과 예술, 문화 전반의 대화를 오디오 콘텐츠로 운영하고 있다. 제품 설명을 넘어, 브랜드가 속한 문화적 맥락 자체를 콘텐츠로 만드는 방식이다.
사진 출처: 샤넬 애플 팟캐스트 계정
루이비통도 ‘Louis Vuitton[Extended]’를 통해 패션뿐 아니라 음악, 스포츠, 미식, 예술 등 다양한 문화 영역의 인물들을 다룬다. 브랜드를 단순한 패션 하우스가 아니라 문화 플랫폼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사진 출처: 루이비통 애플 팟캐스트 계정
디올 역시 ‘A.B.C.Dior’, ‘Dior Talks’ 같은 포맷으로 하우스의 상징과 역사, 프로젝트와 협업의 맥락을 오디오 서사로 확장해왔다. 패션 브랜드가 팟캐스트를 활용한다는 것은 제품 설명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브랜드 세계관을 고객 곁에 더 오래 머무르게 만드는 일에 가깝다.
사진 출처: 디올 애플 팟캐스트 계정
국내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보인다. 패션/라이프스타일 채널 온큐레이션은 최근 유튜브에서 ‘온큐레이션 팟캐스트’ 형식의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패션 업계 취업, 디자이너 인터뷰 같은 주제를 비디오 팟캐스트 문법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의 패션 미디어 역시 이제 화보와 숏폼 중심에서 대화형 포맷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신호다.
앞으로 패션이 만들어야 할 것은 ‘더 잘 보이는 콘텐츠’만은 아닐 것이다. 숏폼은 중요하다. 화보와 영상도 여전히 핵심 포맷일 것이다. 패션에서 시각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숏폼은 발견을 만들고, 이미지는 욕망을 만든다. 그리고 팟캐스트는 관계를 만든다.
지금 패션 브랜드와 패션 미디어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단지 더 눈에 띄는 장면이 아니다. 사람들을 얼마나 오래 자기 세계관 안에 머무르게 할 수 있는가다. 한 번 스쳐 지나가는 조회보다, 반복적으로 틀어두게 만드는 관계가 더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패션은 원래 보는 산업이었다. 하지만 다음 패션 콘텐츠의 경쟁력은, 얼마나 강하게 시선을 붙드느냐만이 아니라 얼마나 오래 곁에 머무느냐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톡설팅 콘텐츠 매트릭스의 우측 하단에 놓인 팟캐스트와 비디오 팟캐스트와 같은 동반형 콘텐츠는 더 이상 주변부의 포맷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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