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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미 Jan 25. 2022

아무리 그래도 결혼운을 안 물어볼 것까지

브런치 애플리케이션이 330일 동안 못 봤다며 징징대길래 맥주 한 캔 기운으로 일기를 써 본다.


어린 시절 나를 둘러싼 독특한 성장 환경을 원망하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만, 나름 30대 중반이 되어 '이렇게' 나고 자라 다행이라 생각하는 요즘이다. 일찌감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탈주하고, 세상이 요구하는 성역할에 그다지 속박되지 않았던 나의 어린 시절 ...... 예컨대 예민한 촉수로 사사건건 까칠하게 글을 쓰는 비혼 여성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해도, 가족 누구도 참견하지 않는 자유가 주는 해방감이 무척 크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겠지.


지난 주말 나는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고, 엄마는 신년을 맞아 점을 보러갔다. (요즘 무속 의존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나는 재미로 점보는 것을 꽤 좋아한다) 엄친과 함께 점쟁이를 찾아간 엄마는 당신의 신수와 더불어 나의 운세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물어보았다는데 .... 전화 통화를 하며 이것저것 묻자 엄마는 나의 직장생활과 진로, 고민 등등에 대해 물어보았다고 했다.


"결혼은? 아예 안 물어봤어?" 내가 되물었다. 울 엄마는 나의 비혼주의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열렬한 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심정적 동의는 충분히 하는 열린 맘(心 or mom). 무덤덤하게 "안 물어 봤는데"라며 쿨하게 돌아온 대답.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삼십대 중반의 딸이 일만 들입다 하고 있는데, 결혼에 대해 일언반구 묻지도 않았다는 말에 빵 터져 버렸다. 내가 이런 엄마 밑에서 자랐으니 고정관념 없이 자유분방하고 또 망나니스럽구나 생각이 들어 깔깔. 울 엄마는 페미니즘의 페도 모르겠지만, 결국 페미니스트 딸을 길러낸 건 이런 엄마의 덕분이라는 생각도.


그런데 이어진 이야기가 더 웃겼다. 오로지 나의 일과 진로, 성취 같은 것만 묻던 엄마 옆을 지킨 엄마 친구(=이모)가 나의 결혼운에 대해 기습적으로 물었고. 점쟁이가 3초도 고민하지 않고 "결혼 생각이 아예 없는데?"라고 되받아쳤다는 것. 그래서 결국 엄마는 올해도 내가 결혼에 대해 생각이 없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인 받았다. 그래도 엄마는 별 걱정을 않는다. 내가 우리 엄마한테 고마움을 느끼는 가장 큰 부분이다.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나를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키워준 것.


애시당초 지난해 쓴 에세이에 나는 '비혼 선언'을 했고 아마 울 엄마는 열독을 했을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까닭도 크겠지만, 무엇보다 나를 비혼으로 이끈 것은 이 같은 이유에 근거하는데... 우선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는 것에 무척 회의적이다. 설렘은 유효기간이 분명한데, 이를 법적 구속력을 두고 강제하면 피차 괴롭지 않을는지 ... 동시에 나는 지금 나 자신으로 사는 것도 버거워 죽겠는데, 여기에 더해 '며느리'니 '아내'니 하는 새로운 역할 모델이 부여되는 것이 무척이나 부담스럽다. 나는 나, 기자, 그리고 우리집 고양이 깨소금의 엄마로 규정되고 싶다. 또 다른 사회적 규정은.... 언젠가 더 여력이 생기면 더해가고 싶고 분명한 건 지금은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 100% 절대라는 것은 없는 만큼, 언젠가 마음이 바뀌어 결혼을 할 수는 있겠지. 나는 김환기와 김향안 혹은 김대중과 이희호처럼 서로의 성장을 독려하고 서로의 세계를 지탱하는 단단한 존재가 있다면 결혼을 생각해봄직 하다고는 생각한다. 서로 좋은 동료, 파트너, 친구로 지내다가 50살 쯤 결혼을 하는 것도 멋질 것 같다. 물론 이런 말을 했을 때 좋아할 상대는 아무도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건 나는 지금 나를 구성하는 요소가 무척 중요하여, 웬만한 확신이 들지 않는 이상 내 삶을 타인과 나누거나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 역시 내가 운명적인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해서인 건지 아니면 애초에 내가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기엔 글러먹은 성정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혹은 결혼 제도가 생의 가시권에 들어와 있지 않아 겪게 되는 고충은 단 한 가지 뿐이다. 점점 즐거운 활동을 함께 할 친구들이 줄어든다는 것.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것도 '결혼'만이 관계의 장애인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취향의 차이로, 다른 생의 속도로 멀어지는 이들이 있으니까.


내년에 신년 운세를 물으러 가는 엄마에게는 꼭 나의 '결혼운'을 물어봐달라고 해야겠다. 물으나 안 물으나 내는 복채가 똑같으니, 그래도 물어는 봐야지. 아무리 그래도 결혼운을 묻지 않을 것까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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