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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노예 May 05. 2020

리더, 욕하면서 닮아간다.

이제 나는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옆팀 김대리에게 아쉬움을 토로하는 동료 A에게 말했다.


"에이... 거기 팀장이 시켜서 그러는 거겠지~"

"아니? 이제 알아서 지 팀장처럼 일하던데?"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어!'라고 외치지만 결국 아버지의 삶을 뒤따르게 되는 평범한 드라마들...  우리 회사 생활도 결국 이런 평범한 드라마의 연속이다. 우리는 리더에게 점점 적응하고 그렇게 리더를 닮아간다.  업무방향 제시부터 의사결정까지, 일 전반에 리더의 손길이 닿기 때문이다.


 바람직하게도, 리더의 좋은 점을 닮아 더욱 발전하기도 한다. 이게 바로 좋은 리더를 만나서 성장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닮고 싶지 않았던 그 모습대로 생각하고 일을 하게 되기도 한다.  조직 안에서 리더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일을 계속 하기는 힘들다. 리더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일들은, 좋고 나쁨을 떠나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줄어들게 되고, 이렇게 리더와 비슷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몇 개월 전까지 나와 함께 일했던 보스는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분이었다. 상품 기획을 하는 우리 팀에게 사업 기획도, 마케팅 기획도 해 내기를 바라던 보스에게 말했다.


"보고 알고 이해하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달라요. 그 일들은,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하는 영역이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더 잘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일을 해야죠~. (아.. 이 일을 왜 우리가 해....!!)"


하지만 이런 저항도 한두 번이었다. 이렇게 일을 하게 된 것은 내 보스의 개인적인 철학도 있었지만 당시 회사의 환경도 있었다. 더 이상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알아서 보스의 방식대로 일을 하게 되었다. 무엇을 기대하시는지, 몇 번의 저항 끝에 잘 이해하게 되었다. 일이 늘어나는 만큼 사람이 늘어나지 못해 우리는 늘 바빴다. 하지만 그보다 이 방식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장점으로 정신승리를 하며 일을 받아들였다.


'나는 사업 역량을 겸비한 상품 기획자다. 사업 팀에서 하는 일을 그저 바라만 보던 사람이 아니다. 직접 고민하고 실행해 본 상품기획자다.'



 얼마 전 주간회의 때 나는 팀원들에게 말했다.

"타 부서로 일을 넘길 때, 그냥 토스하지 마세요. 우리가 먼저 철저하게 고민하고 고민한 근거와 결과로 초안을 만들어서 넘겨주세요."  


나는 분업화된 조직에서 자칫 모두를 더 피곤하게 만들 수도 있는 방법을 선택했고, 반론을 제기하는 팀원에게 말했다.


"이 상품은 우리가 가장 깊이 이해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제일 잘 고민할 수 있고요. 담당 부서에서 처음부터 고민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고민의 결과물을 가지고 전문가들이 더 나은 방법으로 수정/보완해서 실행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셔야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일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kpi 예요. 그들이 갖는 무게감은 우리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건 우리 팀이에요."


 1년 전쯤 내가 그대로 들었던 말, 투덜댔었던 기억에 약간 튜닝한 정도의 멘트.  그렇게 나의 전 보스는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저항하고 고민하던 나의 모습은 정신승리와 함께 사라졌고, 더 나아가 나의 성장과 조직의 성과를 위해 더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 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변했다.




 반대로 나를 돌아본다. 나의 어떤 모습을 팀원들이 닮게 될까. 무엇보다 염려스러운 것은, 나 스스로 반성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 나의 업무 및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팀원들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비슷해지지 않으려면, 나와 다른 모습에 대해 계속 좋은 피드백을 줘야 할 것 같다.


당신이 나와 다른 방식으로 일해서 좋다고.

나와 다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가진 덕분에 일이 더 잘 돌아간다고.


리더, 생각보다 더 어렵고 무거운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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