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처럼 살지 않겠어!'라고 외치지만 결국 아버지의 삶을 뒤따르게 되는 평범한 드라마들... 우리 회사 생활도 결국 이런 평범한 드라마의 연속이다. 우리는 리더에게 점점 적응하고 그렇게 리더를 닮아간다. 업무방향 제시부터 의사결정까지, 일 전반에 리더의 손길이 닿기 때문이다.
바람직하게도, 리더의 좋은 점을 닮아 더욱 발전하기도 한다. 이게 바로 좋은 리더를 만나서 성장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닮고 싶지 않았던 그 모습대로 생각하고 일을 하게 되기도 한다. 조직 안에서 리더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일을 계속 하기는 힘들다. 리더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일들은, 좋고 나쁨을 떠나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줄어들게 되고, 이렇게 리더와 비슷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몇 개월 전까지 나와 함께 일했던 보스는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분이었다. 상품 기획을 하는 우리 팀에게 사업 기획도, 마케팅 기획도 해 내기를 바라던 보스에게 말했다.
"보고 알고 이해하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달라요. 그 일들은,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하는 영역이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더 잘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일을 해야죠~. (아.. 이 일을 왜 우리가 해....!!)"
하지만 이런 저항도 한두 번이었다. 이렇게 일을 하게 된 것은 내 보스의 개인적인 철학도 있었지만 당시 회사의 환경도 있었다. 더 이상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알아서 보스의 방식대로 일을 하게 되었다. 무엇을 기대하시는지, 몇 번의 저항 끝에 잘 이해하게 되었다. 일이 늘어나는 만큼 사람이 늘어나지 못해 우리는 늘 바빴다. 하지만 그보다 이 방식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장점으로 정신승리를 하며 일을 받아들였다.
'나는 사업 역량을 겸비한 상품 기획자다. 사업 팀에서 하는 일을 그저 바라만 보던 사람이 아니다. 직접 고민하고 실행해 본 상품기획자다.'
얼마 전 주간회의 때 나는 팀원들에게 말했다.
"타 부서로 일을 넘길 때, 그냥 토스하지 마세요. 우리가 먼저 철저하게 고민하고 고민한 근거와 결과로 초안을 만들어서 넘겨주세요."
나는 분업화된 조직에서 자칫 모두를 더 피곤하게 만들 수도 있는 방법을 선택했고, 반론을 제기하는 팀원에게 말했다.
"이 상품은 우리가 가장 깊이 이해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제일 잘 고민할 수 있고요. 담당 부서에서 처음부터 고민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고민의 결과물을 가지고 전문가들이 더 나은 방법으로 수정/보완해서 실행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셔야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일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kpi 예요. 그들이 갖는 무게감은 우리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건 우리 팀이에요."
1년 전쯤 내가 그대로 들었던 말, 투덜댔었던 기억에 약간 튜닝한 정도의 멘트. 그렇게 나의 전 보스는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저항하고 고민하던 나의 모습은 정신승리와 함께 사라졌고, 더 나아가 나의 성장과 조직의 성과를 위해 더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 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변했다.
반대로 나를 돌아본다. 나의 어떤 모습을 팀원들이 닮게 될까. 무엇보다 염려스러운 것은, 나 스스로 반성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 나의 업무 및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팀원들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비슷해지지 않으려면, 나와 다른 모습에 대해 계속 좋은 피드백을 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