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시티팝의 계절이 돌아왔다. 계절마다 즐겨 듣는 시티팝 플레이리스트가 따로 있다. 가을용 플리에 뮤지의 <아가씨 2>, 김아름의 <이별변경선>를 리스트에 추가했다. 나카하라 메이코의 <fantasy>도 이맘때 자주 듣는다. 시티팝의 여왕으로 통하는 타케우치 마리야의 <manhattan kiss>는 가을밤에 정말 잘 어울리는 명곡이다. <plastic love>도 좋지만 <夢の続き>도 빼놓을 수 없다. 마츠바라 미키의 대표곡 <stay with me>도 들어있다. 동남아시아의 시티팝도 자주 찾는다. 태국, 베트남, 대만은 음악적인 역량이 매우 뛰어난 편이다. KPOP의 경쟁자가 될 만한 나라들이다.
태국 아티스트인 INK WARUNTORN의 <you?>은 80년대 일본 시티팝이 보여준 감성을 완벽하게 담아냈다. Phùng Khánh Linh의 <CITOPIA>는 여름 내내 즐겨 들었던 앨범이다. <secret sunday>, <sweet summer>는 러닝 할 때마다 빼놓지 않았다. 아이돌씬에서도 시티팝무드를 담은 곡들이 돋보인다. 빌리의 미니 5집 타이틀 <기억사탕>이나 하이키 <국지성호우>는 뉴웨이브와 시티팝 감성이 어우러진 느낌을 준다. 코로나를 전후로 시티팝은 완전히 주류가 됐다. 반짝 인기로 끝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수요층이 더 탄탄해졌다.
시티팝을 신호탄으로 90년대와 2000년대 스타일이 본격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2010년대를 끝으로 사멸하다시피 했던 밴드뮤직이 다시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역시 트렌드는 돌고 돈다. 데이식스나 잔나비는 유례없는 전성기를 누리는 중이다. 너드커넥션과 실리카겔의 인기는 20대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확산되고 있다. 서브컬처에서 시작해서 메인스트림에 올라탄 QWER을 보면 밴드 유행의 힘을 실감한다. 쇼미더머니를 시작으로 거의 10년 가까이 이어졌던 힙합의 시대가 끝났다. 레트로에서 시작된 뉴트로는 빈트로와 힙트로로 분화되면서 장르의 다변화는 대세가 됐다.
200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은 시티팝의 불모지였다. 댄스와 소몰이 그리고 애절함을 내세운 K락발라드가 시장을 평정하던 시절이었다. 김현철, 윤상, 윤종신은 그 시절 메마른 한국 시티팝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갈증을 채울 수는 없었다. 아티스트 숫자가 적은 만큼 장르의 볼륨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원조집인 일본 시티팝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다. 일본 버블경제 시기의 화려하면서도 아련한 느낌은 K-POP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중학생 시절 야마시타 타츠로의 앨범을 끼고 살았다. 청량한 음색을 뿜어내는 <sparkle>을 처음 들었을 때의 전율은 잊을 수 없다.
시티팝은 살아본 적 없는 시대의 경험해보지 못한 감성을 담고 있는 음악이다. 양립하기 힘든 두 가지 감성을 품고 있는 장르라는 점이 시티팝의 가장 큰 매력이다. 찬란한 고도성장기의 화려함을 드러내면서 이면에는 어두운 그늘 같은 공허함과 외로움을 감추고 있다. 그래서 경쾌한 리듬과 대비되는 가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뜨겁게 타오르다 금세 식어버리는 관계와 만남에 관한 내용이 많다. 불장난 같은 만남과 엇갈림 속에서 허탈해하고 관심과 시선을 받으면서도 정작 진심을 찾아 방황한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지만 누군가와 함께할 내일을 간절하게 소망하는 아이러니도 들어있다. 높이 솟은 도쿄의 빌딩숲 아래 길게 뻗은 차가운 그림자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시티팝은 뒤틀린 양가감정을 아름답게 포장한 드라마다. 별처럼 반짝이지만 빠르게 저무는 유성을 닮았다. 아름다운 환상보다 희미하게 사라지는 환영에 가깝다. 향수와 동경에 상상이 뒤섞이면서 자아내는 감성은 손길이 닿을 수 없지만 손을 뻗게 되는 신기루 같다. 한국도 화려함과 공허함이 감도는 곳으로 변했다.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게 되면서 시티팝이 큰 인기를 얻게 된 것 같다. 불안과 기대가 공존하는 기묘한 버블경제시기와 현재의 한국은 많이 닮았다. 머리로 알던 사실은 가슴으로 받아들이면 진실이 된다. 막연하게 상상했던 감성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서 공감대가 형성됐다.
쇠락하는 것들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시기다. 긴 겨울이 오기 직전의 짧은 만추(晩秋)다. 성장을 향해 날아오르던 시절은 과거가 됐다. 사람들은 기대보다 경향에 의지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추억을 소비하고 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찬연한 봄은 이미 지나갔다. 흩날리는 꽃잎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물든 낙엽이었다. 저무는 가을이 찾아왔다. 지는 해와 함께 찾아오는 고운 노을이 떠오른다. 힙플레이스가 된 을지로와 성수 그리고 장충동 일대의 오래된 골목마다 시티팝이 흘러나온다. 서순라길을 걷다가 ANRI의 <good bye boogie dance>를 들었다. 좋으면서도 아련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