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킨파크, 새로운 시작을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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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친구들이랑 가끔 노래방을 가면 In the End를 부르는 게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Linkin Park의 Hybrid Theory가 지금에야 클래식 취급을 받지만 2009, 2010년에는 아직 세월의 세례를 덜 맞은 비교적 최근 음반이었던거지. 물론 우리가 체스터의 스크리밍을 따라할 순 없었지만, 입시 스트레스를 푸는데는 이만한 곡도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린킨파크의 지향점은 내가 선호히는 음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근데도 이들의 음악은 꾸준히 들었다.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매개였다고 해야할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한참 시간이 지나고, 그렇게 현생을 살아가던 어느 날, 체스터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충격적이었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그의 절친, 크리스 코넬의 비보를 들었을 때만큼 슬프진 않았다. 그렇게 나도 그들의 이름을 잊고 살았다. 에밀리라는 이름의 새 보컬을 영입해서 린킨파크가 다시 달려나간다는 얘기는 그래서 좀 뜻밖이었다. 동시에 궁금하기도 했다. 상징같은 존재가 비워진 자리를 이들은 어떻게 메꾸려고 그러는 걸까?
11년 만에 새로운 진용을 갖추고 한국을 찾는 린킨 파크를 맞이하는 팬들의 자세는 결연(?)했다. 스탠딩 입장을 앞두곤 In the End같은 노래를 떼창하며,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공연 3주 전에 공지된 소식이지만,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팬들은 인스파이어 아레나를 가득 메우고 락스타의 컴백을 지켜봤다.
오늘 공연에서 린킨파크는 체스터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별다른 이야기 없이 단단한 사운드를 끊임없이 이어나갔다. In the end나 Numb같은 최대 히트곡에서는 새로운 보컬이 크게 기랑을 과시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상당 부분을 관객들의 떼창으로 넘겼다. 아마 과거에 대한 존중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이의 부재를, 에써 가리러고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17년간의 역사는 영광스런 추억으로 남겨두면 되는거다. 새로 발표한 곡들을 연주할 때의 에밀리의 절창, 그리고 ’곧 또 오겠다’고 말하던 시노다의 환한 미소. 떠나간 이를 가장 품격있게 기억하면서도, 앞으로의 새로운 길을 열어젖히겠다는 의지로 해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