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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퍼튜니티 Sep 18. 2022

바람 앞의 촛불

나의 행복이 너라서

어린시절 키우던 강아지가 새끼를 낳는걸 본적이 있습니다. 어두운 구석으로 들어가더니 여러 강아지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미개는 새끼개를 핥아주고 새끼들은 알아서 젖을 물었습니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강아지에게서 삶의 의지와 생명력의 강인함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막연히 모든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제 앞길을 헤쳐 나간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 많은 게 다르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람의 아이는 생명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숨소리는 얇고 약했습니다. 우유나 모유를 스스로 먹지도 못합니다. 온몸에 힘이 없어 잘못 안으면 목이 푹하고 땅으로 떨어집니다.


딸의 숨소리를 들을 때마다 바람 앞의 촛불이 생각났습니다. 태어난 첫 시기에는 4시간마다 분유를 먹습니다. 아이는 제대로 먹는 법도 모르고 목에 걸려 숨이 안 쉬어질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면회가 허용되지 않은 병실에서 꼼짝없이 딸아이를 바라보며 4시간 간격으로 분유를 주고 트림시켜줘야 했습니다.


깊은 밤 딸이 울어 분유를 타서 먹이고 잠을 재우자 새벽을 알리는 햇볕이 병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때 나는 딸에게 어떤 사람이 되면 좋을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동시에 내가 태어난 시점 나의 부모님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궁금했습니다.


몇십년전 막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의 감정이 느껴지면서도 부모의 각오도 흐릿하게 기억날 것도 같은. 마치 윤회의 굴레가 눈앞에 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쇼파에 앉아 아이를 안고 설잠을 자면서 꿈이라도 꾼 거 같았습니다.


나는 얼마나 지혜로운가. 어느 정도 부를 가지고 있나. 부모의 자격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전 크게 똑똑하지 않고 큰 부를 모으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딸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대다수 부모의 마음이 이럴 겁니다. 내가 가진 역량을 바탕으로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요. 또 나의 부모님도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해 나를 키워왔다는 사실을 딸아이를 보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부모라고 완벽한 존재는 아니니 최선의 선택이 항상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겠지요. 자식을 위한다고 한 행동이 자식에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거니깐요.


저는 앞으로 내 딸은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인생에 제가 이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습니다. 제가 원했지만 못 누렸던 어린 시절을 딸아이가 경험했으면 하는 기대도 들었습니다.


당장 기저귀도 제대로 못 갈아주고 분유도 잘 주지 못하는 아빠에게 너무 먼 이야기 같았지만 그 새벽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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