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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퍼튜니티 Sep 25. 2022

나는 그게 가난인지 몰랐다

나의 행복이 너라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어떤 연유로 우리 가족은 ㄷ형 한옥에 세입자로 들어가 살아야 했다.


제법 큰 한옥이었으니 그중 방 하나에 들어가 지냈다. 단칸방 생활이다. 방 하나에 나와 동생 엄마 아빠 4가족이 살았고 방문을 열고 나오면 작은 주방이 있었다. 그곳은 전구도 없었고 창문도 작아서 한낮이 아니면 어두웠다. 화장실은 공용 화장실을 사용했고 한옥 가운데 마당에 수도시설이 있어서 그곳에서 등목하기도 하고 가끔 설거지도 했다.


세입자는 우리만이 아녔다. 방마다 각자의 식구들이 살고 있었고 비밀이나 보안이라는 건 없었다. 밤이면 귀뚜라미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고 어떤 날 밤은 개구리가 방에 들어와 뛰어다녀서 놀라서 일어난 적도 있다. 또 목이 말라 잠이 깨 주방에서 물인 줄 마셨다가 이상한 액체를 마시고 바로 뱉은 기억도 난다.


이 한옥에서 초등학교에 가려면 작은 산을 넘어가야 했는데 시간이 없을 땐 마을버스를 탔다. 이곳에서 시내로 나가기 위해서는 마을버스밖에 교통수단이 없어서 항상 승객으로 가득 찼다.


덩치가 작았던 난 상대적으로 커다란 가방을 메고 한 손엔 보온 도시락통을 들고 마을버스에 올라 초등학교까지 갔다. 그때는 버스카드도 없어서 일주일권 버스승차권을 사면 기사 아저씨가 펀치로 구멍을 뚫어주는 식이었다. 승차권을 내밀고 버스 위에 오르고 중심을 잡고 초등학교 앞에서 내리는 일은 내게 버거웠다. 그래서 별일 없을 땐 산을 넘어 학교에 다녔다.


푸른 나무와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산을 걸어가던 어느 날 수풀 사이로 쑥이 보였다.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쑥을 한 아름 뽑아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에게 선물이라고 줬다. 낡은 브라운관 텔레비전으로 쑥이 여성에게 좋다는 방송을 봤던 기억 때문이다.

그때는 갑자기 쑥 열풍이 불던 때다. 쑥을 한 아름안았을 땐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좁은 방에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 밥을 먹을때는 우리만의 비밀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집은 허름한 주거공간이 분명했다. 그런데 나는 그게 가난인지 몰랐다. 거기가 그렇게 좁은 곳이라 생각 못했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남루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조금 특이하고 이상했지만 재미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건 아마도 내가 더 좋은걸 보지 못하고 누리지 못해서 들었던 어리숙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때 나는 어렸고 우리 부모님은 젊었다. 할 수 있는게 더 많았다. 환경을 탓하기에는 우리끼리 행복하게 보낼 시간도 부족했다. 그곳에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을거다.


내가 구식 사람이라 그럴지는 몰라도 단칸방에서 가족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면 더 따듯한 온기가 느껴질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 당시 빈곤하면서도 풍요로웠다. 아빠는 가끔 온 가족이 한상에서 저녁을 먹는게 얼마나 좋은 일이냐면서 이야기 했다. 풀만 있는 밥상을 보고선 귀한 것들이 있다고 말도 했다.


점점 온 가족이 한상에서 저녁을 먹는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가슴 깊이 알게된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딸 아이와 함께 단칸방에서 살게되면 어떤 기분일까. 딸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우리는 비밀을 공유하며 더 친해질 수 있을까. 아니면 아이는 가난의 실체를 보고 몸서리 칠까?


나보다 자식은 더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게 부모 마음이다. 그런데 아이의 웃음소리, 젓가락이 밥그릇에 닿는 소리, 하루를 나누는 이야기, 텔레비전 소리, 등이 울려 퍼지는 저녁시간을 보내고 과일을 먹고 설거지하고 온 가족이 숨소리를 들으며 한방에서 잠이 들고 서로 이불을 덮어주고 아침을 맞이하는 날들이 기다란 인생에 며칠 끼여 있다면 인생은 더욱 풍요로울거 같다.


그래서 어린시절 나는 빈곤하면서 풍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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