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게임 소규모 비판
인디게임은 인디게임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에도 존재했다. 마치 최근에 유행하는 메타버스라는 용어처럼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인디게임을 만드는 사람부터 플레이하는 사람들까지 '인디'라는 단어가 가진 모호함에 물음표를 던진다. 그렇게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불명확성을 통해 오해와 논쟁을 이어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나는 이런 불명확성으로 인한 모호함의 경계에서 철학적 비판을 통하여 느낌표를 던지고자 한다. 우선 기존 인디게임을 정의하던 형이하학적이고 절대적 기준을 버리고 형이상학적이고 상대적인 이념으로 정리하여 인식을 전환하고자 한다.
그럼 우리가 이제까지 인디게임을 규정하기 위해 선봉에 세웠던 단어들을 비판해 볼 시간이다. 그리고 '인디'가 가진 진짜 독립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고민해볼 시간이다.
이제까지 인디게임을 정의하는 조건 접두에는 대부분 '소규모'라는 단어가 따라붙었다. 소규모 개발, 소규모 팀, 소규모 자본 등이 대표적인 단어들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소규모'를 규정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형이상학적이고 상대적인 이념으로 접근을 해볼 차례다.
우선 인디게임에서 이야기되는 소규모를 이야기하려면 '노동'에 대하여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깊은 고민을 먼저 한 선지자가 있었다. 바로 칼 마르크스다.
나는 마르크스의 '소외론'을 통해 인디게임에서 이야기하는 '소규모의 본질'을 찾아보고자 한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노동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실현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자본주의 노동자는 '노동을 통한 자유'를 얻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과연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 소외의 근원은 무엇일까?
마르크스는 자신 소외론에 영향을 준 헤겔이나 포이어바흐와 달리 '소외의 근원'을 심리나 종교가 아닌, 물질의 세계라고 이해했고 통제력 상실, 그중에서도 '노동에 대한 통제력 상실'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통제력 상실의 가장 큰 원인을 자본주의 체제의 '분업화된 노동'이라고 주장했다. ‘분업’은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산업화 팽창의 일등공신이었다. 하지만 '기계 그리고 기술에 종속된 분업화'는 인간이 노동을 통해 실현해왔던 가치들로부터 소외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마르크스는 구체적으로 분업이 만들어낸 소외를 '노동을 통해 생산된 상품'을 통해 설명한다.
"자신이 하나의 상품을 온전히 완성하지 못함으로써, 시장에 나와 있는 상품 속에서 자신의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확인하지 못하고 소외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만든 것이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하고 자본가들의 소유물이 됨으로써 소외된다는 점이다. 결국 인간은 자유를 얻는 노동이 아니라 단지 생존하기 위해 힘겨운 노동을 지속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소외를 극복하고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자본의 증식만을 위한 '잉여가치'에 인간성을 갈아 넣었고, 노동자는 생계유지를 위해 자신의 노동을 자본가에게 팔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노동자는 그렇게 대기업의 부품가 되거나 스스로 도구가 되어 상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분업은 독립적이었던 노동자를 '자본의 규율에 복종시키는 노동'형태이다. 이런 노동형태는 노동자를 특수한 기능만을 담당하게 하여 기형적 불구로 만들고, 자본에 기생할 수밖에 없는 평생을 종속 노동자로 살아가게 만든다.
산업화 이전에는 인간의 모든 노동은 예술과 맞닿아 있었다. 장인들은 자신의 작품을 온전하게 혼자 창작했고, 그 작품 속에서 자신의 '노동의 가치와 인간성'을 확인했다. 게임도 마찬가지로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노동을 통해 예술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디게임의 소규모 비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가치는 궁극적으로 '1인 개발'로 귀결된다. 모든 분업을 허물고 자신만의 온전한 창작활동을 통해 자유를 얻는 것이다. 그리고 1인 개발의 최적화를 위해 다른 소규모 전략들이 뒤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독립된 노동’을 통해 게임을 창작하는 행복을 다시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