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제주도로 왔다. 아예.
1.
체감 상 몇 달은 있었던 것 같은데
겨우 2 달이었다.
서울에서의 생활과 마찬가지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그래도 기쁘다.
제주도에 오고 싶어 했고, 제주도에서 커피와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었다.
덕업일치 중이다. 좋다 그냥. 마냥.
2.
얼마전 이촌역에서 4호선 지하철이 고장 나
출근길 직장인들이 고생했다는 뉴스를 봤다.
내가 제주도에 내려오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출퇴근이었다.
제주도에 내려올까 말까 고민하던 그 시기에도 4호선이 고장 났었다.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출근하다가 제주도행을 결심하게 되었었다.
3.
아직도 적응 중이다.
올해 말 까지는 적응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크게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있다.
제주도에 살면 이것저것 해봐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들.
적응의 시간이 끝나면 하나씩 꺼내어해보려고 한다.
제주도는 바람이 많이 분다고 했다.
진짜 많이 불기는 한다.
가끔씩 휘이잉 하고 기분 나쁜 소리가 날 정도로 세찬 바람이 분다.
제주도는 원래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에 있다고 한다.
어디서 봤는데 지리적으로 섬이고 습도가 높고 편서풍대가 있고 그런 걸 어디서 봤는데
지리적으로 환경적으로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에 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의 10월은 태풍 콩레이에서 시작했다.
회사에서도 태풍의 경로에 많은 신경을 썼다.
태풍이 어떻게 오느냐에 따라서 준비해야 될 것들이 많았다.
특히 집이 걱정이 되었다.
가뜩이나 높은 곳에 위치해있고 날씨 좋을 땐 좋았던 오션뷰도
오션뷰가 아닌 직방으로 태풍을 맞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통하여 대비 방법을 서칭 했다.
결국에는 태풍을 막는 창을 어떻게 대비하냐 였는데
테이프를 유리창에 X자로 붙이는 건 의미가 없고
창이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냐 마냐에 따라서 창이 깨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 굴러다니는 박스를 찢어 창틈에 끼워 넣어
흔들리지 않게 고정했다.
태풍이 상륙한다고 한 그날.
아침부터 비바람이 새차게 불어댔다.
아침 출근길에 쓰고 가던 우산이 뒤집어져 고장 나 내리는 비를 쫄딱 맞으며 출근했다.
사무실 바로 앞이 바다여서 태풍이 다가오는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는데
이번 태풍 콩레이는 딱 퇴근시간에 맞춰서 강력해졌다.
퇴근시간이 돼서도 집에 가길 주저할 정도였다.
우산은 쓰는 게 더 위험할 것 같아 우산 없이 퇴근했다.
태풍에 휘날리는 빗물을 그대로 얼굴에 맞으니 그렇게 따가울 수 없었다.
옷이며 가방이며 신발까지 모두 쫄딱 젖고 서야 집에 올 수 있었다.
다행히 집은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밖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문제는 그날 밤이었다.
박스로 흔들림을 막았지만 태풍에 흔들리는 창은 이상한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방에 있는 창문이 크고 바닷가 쪽이라 유난히 더 바람이 불었었나 보다.
잠들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자 바람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함덕의 바다는 예전의 그 빛깔, 하늘로 되돌아왔다.
제주에서의 첫 태풍.
그런데 이번 태풍은 그렇게 센 태풍이 아녔다고 한다.
정말 태풍이 세게 불면 모든 게 날아갈 정도라고 하니
뭔가 무섭기도 했지만 일단 지나갔다.
그리고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했다.
집에 놔두었던 겨울옷을 택배로 받았다.
옷과 함께 어머니의 간단한 편지도 받았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11월 5일.
아침저녁으로는 정말 쌀쌀해졌다.
그래도 제주도라고 서울은 0도, 1도라고 하는데
아직 제주도는 10도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도 제주도이기 때문에 돌아다니고 있다.
사실 어디에 있는 오름을 간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카페를 다니고 있다.
10월 어느 쉬는 날에는 하빌리스를 다녀왔다.
벚꽃 축제로 유명한 전농로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인테리어와 커피 맛이 좋았다.
뭔가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아늑했다.
그리고 애월.
애월은 예전에 여행으로 스쿠터를 타고 왔었던 그곳에 다시 왔다.
여전히 맛있었던 마레벤또가 있었는데
주변이 공사로 시끌시끌했다.
특히 투썸플레이스가 멋있는 곳에 멋있는 건물을 올렸다.
그리고 잘 먹고살고 있다. (걱정과 달리)
함덕은 관광지이다 보니 모든 물가가 비싸다. (어쩔 때는 어이가 없을 정도)
웬만하게 급한 게 아니라면 시내를 가거나 근처 큰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다.
육지에 있을 때는 꼬박꼬박 과일이며 야채며 일부러 챙겨 먹던 습관이 있어서
퇴근길에 마트에서 두부나 버섯을 사서 먹고 있다.
풍성하지는 않지만 그냥저냥 먹을만하다.
제주에서의 생활, 그것도 도시와 떨어져서 산다 라는 것은
불편한 것을 감수해야 하는 생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불편한 생활만큼 얻는 것도 많다.
참 제주도는 노을이 이쁘다.
바다가 있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가끔씩 멍하니 하늘을 쳐다볼 정도로 이쁜 노을을 보여주곤 한다.
세상에 어느 그러데이션이 이렇게 자연스럽고 아름다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회사-집-회사로 이어지는 루틴함에서 조금만 어긋났더니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 할 수 있었다.
노을 넘치는 조천해안도로를 마주한 다음날부터 집 주변을 다니기 시작했다.
함덕서우봉은 회사 바로 옆에 있는 크지 않은 오름이다.
회사에서 커피 한 잔 받아 마시면서 슬슬 걸어갔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10분 정도면 올라갈 수 있는 함덕서우봉 정상에는
벤치가 2개 있다.
올라갔을 때는 벤치 주변에 잔디를 깎는 소리에 시끄럽기는 했지만
곧 조용해졌고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멋진 풍경이었다.
바다, 그리고 바닷가 마을, 큰 풍차가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주도는 축제가 참 많은 것 같다.
특히 제주도 축제가 좋은 건 예술 관련 축제가 많은 것이다.
지난주에는 제주도 구도심에서만 총 3개의 축제를 볼 수 있었다.
그중에 제주아트페어는 기대했던 축제로 29일 월요일부터였는데
27일에 가서 보려고 했었다. 준비 중이어서 볼 수 없었다.
그냥 살고 있다.
제주도 산다고 특별할 것도 없고 유별날 것도 없다.
그냥 사는 건 똑같다.
일도 서울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출근의 괴로움과 퇴근의 기쁨의 무게는 똑같다.
걷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제주 만한 곳이 없다.
걷다 걷다 마주친 한 서점에서 순간 느낌이 왔다.
제주도에 온 목적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
제주도가 좋아서 왔지만 좋은 것 만으로 끝내기엔 아까웠다.
그래서 계획을 세웠다.
나만의 장소를 만들어 보고 싶어 졌다.
게스트하우스가 될 수도 있고 독립서점이 될 수도 있고
라이브 재즈를 들을 수 있는 와인펍을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하다.
제주도에 오고 싶다는 것을 적었더니 이루어졌던 것처럼
나만의 장소를 만들어 보는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어쩌다보니 제주도에 왔다.